본문 바로가기

전체보기458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1954> 소설에는 세 유형의 성인 여성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애인인 엘자. 아버지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안느. 그리고 이웃 별장의 중산층 주부. 이 세 유형의 여인에 대한 1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쎄실의 감정은 제각각이다. "반은 상스럽고 반은 세속적인 쾌락을 즐기는 그런 여자... 상냥하고 너무 단순했으며 건방지지도 않았다." 먼저 아버지의 애인인 젊고 아름다운 엘자를 쎄실은 안쓰러워 한다. 엘자가 상스럽다고는 하지만 경멸하는 감정은 조금도 없다. 그렇다고 엘자와 쿵짝이 맞아서 친한 것도 아니다. 20대의 젊음을 가졌지만, 그것밖에는 없는 엘자를 안쓰러워하는 것이다. 그 젊음은 곧 종말을 맞이할 테니.. "그녀는 내 머리칼과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이제 그만 져주고 싶은 욕망.. 2017. 1. 30.
프란츠 카프카 <소송, 1914>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게 분명했다.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날 아침 느닷없이 그가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요제프 K는 어느 날 느닷없이 날벼락 같은 기소를 당한다. 무엇 때문에 누구로부터 소송당했는지 알 수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소설이 끝나고 난 후에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막연하고, 애매한 채, 그저 우리의 주인공은 소송을 당했다. 소설 속에서 법원은 도시의 다락방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법과 소송은 그렇게 우리 삶 곳곳에 박혀서 우리를 괴롭히고 옥죄고 있다는 의미다. K는 이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숙부가 소개한 변호사를 만나고, 브로커를 만나고, 법원 공무원을 만나고 다닌다. 법과 소송을 이야기하는데,.. 2017. 1. 28.
이청준 <흰옷, 1993> "이룬 것 없이 헛된 낭비만 일삼아 온 그의 삶이 견딜 수 없이 허망하고 아쉽게 느껴질수록 그 어릴 적 고향 학교 시절에 대한 추억과 집착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과장스런 환영을 지어 부르곤 했다" 아버지 황종선 씨는 전란기 임시 소학교 시절을 소중한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동우는 전쟁통에 그런 학교는 없었다며 아버지를 추궁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과거를 의심하고 부정하려 든다. 아버지는 아들이 "아비의 지난날과 세상살이를 우습게" 본다고 생각한다. 대학까지 나와 교사가 된 아들이 소학교 나온 아비의 과거를 결단 내려하고 있는 것이다. 팔씨름을 겨루는 듯한 기분이다. 아버지 종선 씨 입장에선 답답한 노릇이다. 객관적으로 증거할 자료가 없다 해서 그 과거가 없었던 건 아니건만, 아들의 추궁.. 2017. 1. 25.
에오스와 티토노스 : 사랑은 비극이여라 사랑, 순도 100%의 사랑, 그것은 아름다움을 사랑한 것이다. 육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목소리, 아름다운 체취.. 사랑에는 이해관계도 윤리도 도덕도 신념도 없다. 우리가 아무리 그럴싸한 말들로 포장해도 결국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육감적인 것, 본능적인 것, 동물적인 것이다. 그 사람의 인격이니 능력이니 재력이니 하는 것들에 호감을 가질 순 있어도 넋이 나가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잔인하다. 경제적 이유로,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등등의 이해 관계가 얽혀있다면, 관계는 어떻게든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아무 이해 관계없는 아름다움을 사랑한 것이라면,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마음은 차갑게 돌변한다. 사랑은 정신병이다. 하늘의 별도 따다 주겠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 2017. 1. 22.
캐서린 오플린<사라진 것들, 2007> 1984년, 샤핑센터 그린옥스에서 실종된 10세 소녀 케이트. 그리고 20년의 시간이 흐른 2004년, 그린옥스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커트의 눈에 한 소녀가 보인다. 왜 커트의 눈에만 20년전에 실종된 소녀가 보였을까. 부채의식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부채의식. 1984년 케이트가 실종되던 날 우연히 케이트를 보았지만, 별거 아니겠거니 싶어서, 어쩌다보니, 어영부영하다가 목격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커트에게는 새해 결심이 하나 있었다. ..전부터 품어온 것이었다. 기억하기도 쉬웠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같았으니까. 바로 이 일을 그만두고 그린옥스를 박차고 나가는 것... 결코 이 일을 오래할 생각은 없었건만 십삼년이 훌쩍 흘러버렸다. 도대체 그 세월이 어디로 갔.. 2017. 1. 17.
블랙 스완(2010) : 점프! 점프! "어젯밤 꿈을 꾸었어요" 니나는 자기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잘하는 게 다가 아니다. 그 이상이어야 한다. 그 이상이길 꿈꾼다. 그녀 안에서 자라나는 꿈. 무대의 주인공, 독보적인 존재.. 그 꿈이 그녀를 터치했다. 마법을 걸었다. 아니, 저주를 걸었다. 꿈은 실현될 때까지 인간을 들볶고 괴롭히는 저주다. 빼앗아라 니나가 원하는 자리는 단원 모두가 원하는 자리다. 동료들과의 경쟁, 질투, 시기심, 미움.. 이런 피곤한 감정들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의 스완퀸 베쓰를 밀어내야 한다. 그렇게해서 저 자리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니나 역시 베쓰처럼 비참하게 밀려나야 한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그 미래를 생각하면, 공포스럽다. 두렵다. 하지만 꿈을 꾸기 시작한 이상, .. 2017. 1. 11.
춘몽(2016) : 액자 속의 그녀, 거울 속의 그녀 영화를 보면서 막심 고리키의 소설 가 떠올랐다. 뭐 비슷한 걸 말하지 싶었다. 회색빛 공장에서 회색빛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한 소녀를 사랑한다. 그 소녀가 특출나서도, 좋은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그 자리에, 그 순간에, 그녀 아닌 다른 여자가 있었다면, 그들은 그 다른 여자를 사랑했을 것이다. 눅눅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사랑을 받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아닌, 사랑을 "주고" 싶다. 그저 사랑을 주고 싶다. 그 누가 되었든.. 누군가에게 사랑을 준다는 것. 그들의 회색빛 인생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 삶을 견딜 수 있으니까. 춘몽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거니하고 맥놓고 보고 있었다. 근데 뭔가. 이 자다가 봉창뚜드리는 결말은?? 화면이 칼라로 바뀌면서 휠체어를 탄.. 2016. 12. 17.
비밀은 없다(2016) - 21세기에 다시 쓰는 아가멤논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군대는 여신의 분노로 인해 바람이 불지 않아 트로이로의 출정을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전염병까지 번지면서 진영은 어수선해지고, 아가멤논의 리더쉽은 의심받는다. 하여 아가멤논은 딸과 아내를 속여 진영으로 데려와 딸을 희생 제물로 삼아, 여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부하들의 신임을 얻어 출항한다. 이에 왕비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치를 떨며 분노하고,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힌다. 근데 자기 딸을 희생삼아서까지 트로이로 전쟁을 하러가야만 하는 걸까? 그놈의 대의라는 건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트로이와의 전쟁 명분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헬레나를 납치했다는 것이다. 이건 어거지다. 모두가 안다. 납치가 아니라, 헬레나와 파리스가 눈이 맞아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까 .. 2016. 10. 29.
박완서 단편 <환각의 나비> 어머니는 아들네 집에 가고 싶다. 옛날 사람에겐 아들만이 자식이다. 제아무리 딸과 사위가 정성을 들여도, 외손주들이 살갑게 대해도 그녀에게 딸네 집은 남의 집이다. 어머니에게 있어, 딸네 집에 산다는 건 남의 집에 얹혀사는 천덕꾸러기라는 의미다. 어머니는 하여 자기 집, 즉 아들네 집으로 가고 싶다. 그러나 치매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를 며느리가 달가워할 리 없다. 치를 떠는 며느리와 귀찮아하는 아들.. 이들의 냉정한 태도에 맏딸은 어머니를 모셔오지만, 결국 어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쩌겠는가.. 옛날 어머니에겐 아들만이 자식인걸.. 교묘한 형태로 어머니는 자식에게 버림받았다. "그 집에는 느낌이 있었다." -본문 중- 위성 도시의 재개발 지역, 도시 속에 섬처럼 떠 있는 동네에 버려진 집이 하나 있다.. 2016. 10. 23.
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 2010)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 이것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자신을 주장하는 것이다. 해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즉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된 사람이다. 스스로를 확신하는 사람이다. 근데 이게 심각하게 지나친 사람도 있다. 자아 비대증에 걸린 미치광이 히틀러 같은 사람 말이다. 버트는 자신이 미치광이 말더듬이 왕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괴로워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미치광이는 절대 말을 더듬지 않으니까. 그러니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약간 미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기 안의 흥과 합일하든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휩싸이든 어쨌든 뭔가 정상적인 것을 좀 넘어서서 미친 듯이 떠들고 난 뒤, 정신을 차려보면, 어 내가 말을 이렇게 잘했나 싶은 경험들.. 2016.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