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보기458

메이 디셈버 (May December, 2023) : 졸업 “It's the complexity. It's the moral gray areas that are interesting.” (복잡성이죠. 그것은 도덕적으로 모호한 영역이에요. 흥미롭죠.) 이것이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가 그레이스(줄리안 무어) 역할을 맡기로 한 이유다. 우리 역시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이 영화를 따라간다. 세상에 무 자르듯 딱 갈리는 게 어디 있나... 선도 악도 아닌 모호한 영역은 너무 많다. 어쩌면 저들은 진짜로 서로 사랑한 것 아닐까. 그러니 그 험한 비난과 손가락질 속에서도 20년간 서로의 곁에 머무르는 것이겠지.. 사실 그레이스가 도가 넘는 비난을 받은 게 사실이다. 성별이 바뀐 셀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은 단발성 뉴스로 지나치고 마는 것을... 여자가 가해자가 되었기에, .. 2024. 3. 15.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1862> 선택하는 인간은 흔들린다... "그는 이제 막 자기 운명의 엄숙한 순간을 지나왔다는 것을, 이미 그에게는 중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앞으로 훌륭한 인간이 되지 않는다면 가장 악한 인간이 되고 말 거라는 것을, 이제 그는 주교보다 더 높이 오르거나 죄수보다 더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빵 한 조각을 훔친 죄, 탈옥을 한 죄에 대해 사회는 지독한 형벌을 장발장에게 내렸다. 형기를 마친 그에게는 이제 전과자라는 딱지가 붙어 있어, 세상은 그에게 하룻밤 묵는 것조차 허락치 않는다. 이에 장발장은 법과 질서, 사회와 인간을 증오한다. 거칠어지고 차가워진 그의 마음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다. 이런 그에게 편견 없이 묵을 곳을 허락한 주교.. 그런데 장발장은 이런 주교의 따뜻한 .. 2019. 12. 26.
도스또예프스끼 <악몽 같은 이야기, 1862> 장소 1 : 집들이 쓰쩨빤 니끼포로비치 니끼포로프는 평생의 숙원이던 저택을 얼마 전 구매해서 호젓한 노후를 즐기기 시작한 65세의 3등 문관인데, 오늘 집들이 겸 생일잔치를 벌이고 있다. 뭐 손님이라고 해봐야 2명의 4등 문관이 전부다. 쓰쩨빤은 본래 자기 생일잔치 같은 것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돈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약간 쩨쩨한 스타일인가 보다. 이 저택도 40년 간의 근검절약으로 얻은 것이기도 하고.. 오늘의 집들이 겸 생일잔치도 초대 손님 중에 하나인 세묜 이바노비치 쉬뿔렌꼬한테 아래층을 세 놓으려는 속내가 있어서다. 그렇다면 세묜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4등 문관으로 젊은 축에 속하는 고위 관료다. 지금의 자리까지 자기 힘으로 올라온 사람인데, 자기가 올라갈 수 있는 선은 한.. 2019. 2. 20.
도스또예프스끼 <상처 받은 사람들, 1861> "이것은 우울한 이야기다. 아주 빈번히, 눈에 띄지 않게, 거의 비밀스럽게 뻬제르부르그의 무거운 하늘 아래에, 거대한 도시의 어둡고 감추어진 골목길에서,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삶, 둔중한 이기주의,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 음울한 방종, 비밀스러운 범죄의 한가운데서, 이 모든 무의미하고 비정상적인 삶으로 가득 찬 끔찍한 지옥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음울하고 괴로운 이야기 중의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계속된다." 두 이야기 이 소설은 서로 다른 별개의 두 이야기가 꼭지점 먼 끝에서 시작해서, 결국에는 하나의 지점에 이르는 구성 방식을 하고 있다. 두 이야기 모두 가족 간의 화해와 사랑에 대한 것인데, 하나는 파멸적인 결말이고, 다른 하나는 부분적 해피엔딩이다. 그리고 이 부분적 해피엔딩의 이.. 2019. 2. 16.
도스또예프스끼, <스째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1859> 단순한 스토리, 단순한 결말, 단순한 캐릭터. 이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다. 도스또예프스끼 소설답지 않게 말이다. 스토리랄 것도 없다. 주인 나리 상투 잡고 깝죽대는 광대 놈과 주변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에피소드 몇 개가 전부다. 결말은 단순하다 못해 동화적이다. 착한 주인 나리는 젊은 아가씨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거다. 또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는 어떠한 복잡성도 없다. 다층적인 성격도 없다. 한 인물에 한 성격만이 부여되었다. 예고르 아저씨에게는 '착함'이, 예고르의 엄마에게는 '이기심'이. 포마에게는 '일그러진 자존심'이 부여되었다. 바흐체예프는 투덜이 캐릭터고, 따찌야나는 "한 걸음만 더 가면 정신 병원" 행인 과대망상증 여자이며, 팔랄레이는 정직과 바보 사이에 있는 .. 2019. 2. 1.
이청준 단편 소설 <행복원의 예수, 1967> ‘행복원'이라는 고아원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나'는 어느 날 밤 잠을 자다가 몹시 오줌이 마려워 뒷간을 가다가, 고아원의 ‘엄마'가 (’나'에게는 누나뻘인) 우물가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본다. 보려 해서 본 건 아니지만, 어영부영하다가, 오도 가도 못하고, 숨어서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누가 자신을 몰래 지켜보는 줄도 모른 채 목욕하고 있는 저 여자가 ‘나'는 안타깝다. 이건 또 무슨 도덕관념인지.. 그래서 인기척을 일부러 내버리게 되고, 그 순간 이후로 나는 엄마의 눈 밖에 난다. 고아원의 엄마는 매주 일요일이면, 원생 아이 중에 하나를 말끔하게 차려 입혀 교회에 손잡고 가는데, 뭐. 원생 아이들은 딱히 따라가고 싶어하지 않는 일이다. 그래도 뭔가 돋보이는 일, 엄마의 특별한 관심을 받는 일인 건 확실.. 2018. 9. 3.
이청준 중단편 소설집 <별을 보여드립니다> <별을 기르는 아이> “꿈은 이루어진다!”는 흔한 표어에서 "꿈"이라는 단어는 종종 별 모양으로 대체될 정도로, 꿈과 별은 동일시되는 단어다. 별은 이곳이 아닌 저곳,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꿈 역시 그러하다. 현실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것.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 그렇다면, 꿈을 꾸면 우리는 행복할까. 희망을 품으면 과연 즐거울까? 아니다. 꿈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우리는 괴롭다. 척박한 현실을 끊임없이 곱씹어야 하고,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비난해야 한다. 소설 속의 "그" 역시 그러하다. 천체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말 그대로 별을 보는 사람이다. 동시에 그는 꿈을 바라본다. 현실이 아닌 꿈과 희망을 바라본다. 하지만, 별을 보면 볼 수록, 구질구질한 현실이 오히려 돋보일 뿐이다. 그는 힘겨운 .. 2018. 9. 2.
박완서 단편집 2권 <겨울 나들이 외,1975~1978> 간단 감상평 남편으로부터 소외된 여자, 아들을 잃은 여자, 그리고 남편을 잃은 여자.. 상실과 고통, 헛헛함의 시간들을 견뎌온 이 세 여자가 손을 맞잡은 순간, 서로를 위로하는 순간, 함께 동행 하기로 한 그 순간...그 아름다운 순간.. 모성애, 부성애, 효심, 부부애 등등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허상, 물거품.그 물거품으로 만들어진 집.. ‘법'이라는 말만 들어도 쪼그라드는 서민들에 대한 스케치. 가난하고 천박하고 억척스러우며 뻔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가슴 깊이 사랑한다. ‘빨갱이'라는 마법의 단어. 타인의 삶 산업화 시대의 심청이, 그 강인함에 대하여. 전쟁과 여자 비굴의 시대, 모멸의 시대, 능멸의 시대를 “쌍노메 베치'”라는 욕지기로 돌파하던 그녀... 무식하고 천박하며,.. 2018. 8. 9.
박완서 단편 <배반의 여름,1976> 어린 여동생의 익사를 경험한 '나'는 물이 무섭다. 이 사고 이후 부모님은 ‘나'에게 수영을 가르치려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나'는 물을 거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풀장에 집어넣는다. 나는 허우적거린다. 버둥거린다. 그러다 순간 알아챈다. 발이 땅에 닿고, 물은 가슴팍밖에 오지 않는다는 걸... 물이 나를 배반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물이 무섭지 않다. 아버지는 ‘낄낄낄' 웃는다. 초등학생이 된 나에게 아버지는 태산 같은 존재다. 화려한 술 장식과 황금빛 단추가 달린 멋진 제복을 입고 출근하는 아버지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크고,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가장 단단한 사람이고, 가장 근사한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자신의 직장에 데리고 간다. 그리고 알게 된다. .. 2018. 8. 8.
박완서 단편 소설 <저렇게나 많이!,1975> 대학 졸업 후 부잣집에 장가가길 바라는 남자와 부잣집에 시집가길 바라는 여자.. 애인 사이였던 이 둘은 서로의 욕망을 잘 이해했기에 쿨하게 헤어진다. 그리고 어느덧 7년의 시간이 흘러 흘러, 우연히 길에서 만난 이들.. 남자는 ‘다방에나' 가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남자는 코 앞에 있는 다방을 놔두고 먼 길 돌아 돌아 초라한 다방으로 들어서는데...다방 마담과 아가씨는 이 남자를 보자 반색 하며, 말 끝마다 ‘사장님, 사장님'하며 아양을 떤다. 남자가 자신을 과시할 만한 장소로 일부로 이 곳까지 끌고 온 것이다. 졸업 후 만난 대학 동기, 그것도 한 때 연인이였던 사이.. '질 수 없다'가 기본 감정인 건 당연하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이 원했던 부잣집 귀부인이 되질 못 했다. 어디 그게 말처럼 .. 2018.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