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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도스또예프스끼 <악몽 같은 이야기, 1862>

by R.H. 2019.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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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1 : 집들이

 

 

쓰쩨빤 니끼포로비치 니끼포로프는 평생의 숙원이던 저택을 얼마 전 구매해서 호젓한 노후를 즐기기 시작한 65세의 3등 문관인데, 오늘 집들이 겸 생일잔치를 벌이고 있다. 뭐 손님이라고 해봐야 2명의 4등 문관이 전부다. 쓰쩨빤은 본래 자기 생일잔치 같은 것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돈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약간 쩨쩨한 스타일인가 보다. 이 저택도 40년 간의 근검절약으로 얻은 것이기도 하고.. 오늘의 집들이 겸 생일잔치도 초대 손님 중에 하나인 세묜 이바노비치 쉬뿔렌꼬한테 아래층을 세 놓으려는 속내가 있어서다. 

 

 

그렇다면 세묜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4등 문관으로 젊은 축에 속하는 고위 관료다. 지금의 자리까지 자기 힘으로 올라온 사람인데, 자기가 올라갈 수 있는 선은 한계가 있고, 그 자리도 안정적으로 유지하긴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신경질적이면서도 자기 주관이 확실한 남자다. 자수성가의 한계를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또 다른 손님은 이반 일리치 쁘랄린스끼인데, 그는 젊고 세련된 4등 문관으로, 바로 몇 달 전에 고위 관직에 올라온 사람이다.

 

 

"제 견해로는 휴머니즘이 으뜸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아랫사람들에게도 그들 역시 인간이라는 걸 되새기면서 휴머니즘적인 태도로 대해야지요"

 

 

이야기는 이 세 남자가 토론을 하면서 시작된다. 토론의 주제는 개혁, 새로운 러시아, 진보, 휴머니즘이다. 집주인인 쓰쩨빤과 세묜은 복고주의자(보수주의)고, 이반은 진보주의를 표방한다. 그런데 약간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이... 위에서도 말한 바 쓰쩨빤은 65세가 넘어서야 자기 소유의 저택을 구매할 정도로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고, 세묜은 자수성가한 관료다. 그러니까 좋은 가문의 출신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진보주의자 이반은 이 두 사람과 달리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고관의 자제"로 귀족 학교를 다녔고, 집안도 부유하다. 즉, 귀족으로 태어나 귀족으로 살았고, 지금도 귀족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앞의 두 사람은 보수주의를, 이반은 진보주의를 주장한다. 뭐, 어떤 집안 출신이냐로 사상을 고정시켜 보는 건 촌시런 거니까, 일단 그냥 넘어가자.

 

 

"악마에게나 떨어져라! 뜨리폰 녀석은 내 마차를 어디에 둔 거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런 주제의 토론이 결론이 날리는 없고, 늦은 밤이 되어 이제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현관을 나선 우리의 진보주의자 휴머니스트 이반은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다. 자신의 마부 뜨리폰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뜨리폰은 자기 대모의 결혼식에 방문하고자 했는데, 이반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부는 임의로 친척의 결혼식장에 간 듯하다. 이에 이반은 온갖 욕설을 퍼붓는다. 불한당 녀석, 사기꾼, 더러운 놈, 염병할 놈, 나가 뒈져라... 다시 말하지만, 이반은 아랫사람들에게도 휴머니즘적인 태도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던 진보주의자시다...

 

 

이에 세묜이 이반을 데려다주겠다고 하지만 이반은 거절한다. 기분 나쁜 상판대기를 가진 세묜하고 동행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주인 나리가 이 고생을 했다는 걸 마부 놈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휴머니스트 이반은 도대체 누굴 사랑하시는지.. 스쩨빤은 "늙어 빠진 멍청이" 고, 세묜은 기분 나쁜 "상판대기"를 가진 놈이고, 뜨리폰은 염병할 놈이고.. 뭐, 여튼 그래서 그는 대로변까지 걷는데... 걷다가 보니 어느 집에서 흥겹게 파티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장소 2 : 결혼식 피로연

 

 

이반은 지나가는 순경을 붙잡고 묻는다. 저 집에서 무슨 파티가 벌어지고 있냐고. 아, 순경에게 묻기 전에 자신의 외투를 살짝 제껴서 자신의 훈장을 드러내는 센스는 기본.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의 이반은 자칭 진보주의자시고, 자칭 휴머니스트이시다. 여튼, 이 유별난 물건을 본 순경은 바짝 긴장해서 이반에게 친절하고도 공손하게 대답한다. 쁘셀도니모프라는 하급 공무원의 결혼식 피로연이란다. 쁘셀도니모프..쁘셀도니모프.. 아, 자기 관청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그의 성이 특이해서 기억이 난다. 그럼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으면 되었을 것을.. 이반은 그 집을 방문하기로 한다.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관청의 최고위직이 최하위직 부하의 가족 모임에 불쑥 끼어들다니.. 민폐 민폐 민폐. 말해 뭐하겠는가. 이 결혼식 피로연은 세상 불편한 자리가 된다. 그렇다면, 이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집에 발을 들여놓았을까. 

 

 

"그들에게 모든 걸 다 터 놓고, 모든 것, 모든 걸, 즉 자기가 얼마나 선량하고 멋진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인가를 얘기하고 싶었다. 자신은 조국에 유익한 인물이 될 것이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진보주의자이고 휴머니즘 정신으로 모두를 더욱이 가장 낮은 사람에게까지도 너그러이 대한다는 것..."

 

 

허영심이다. 명예욕이다. "그는 국장님으로서는 엄격하지만 인간미로 보면 천사야!"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막말로 관종 시장님 같은 분이다. 개혁에 대해, 위대한 러시아에 대해, 진보에 대해, 휴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을 전시하고 싶은 욕망이었던 것이다. 인기를 얻고 싶은 욕심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등장으로 결혼식 피로연은 엉망진창이 된다. 곤드레만드레 되어서 신혼 침실을 엉망으로 만들고, 돈이 없는 신랑은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니고, 처가 식구들에게는 면이 서질 않고... 난장판이 되어버린 피로연.. 그리고 아침이 된다. 이반은 눈을 뜨면서 자신이 지난밤에 저지른 일을 깨닫고 세상 부끄러워하며, 도망치듯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는 8일간 두문불출하며 관청에도 출근하지 않는다.

 

 

장소 3 : 관청

 

 

관청에 자기가 저지른 일이 쫘악 퍼졌겠지. 다들 수근덕 거리겠지, 다들 비웃겠지.. 이를 어쩌나. 수도원으로 들어가 버릴까... 빨리 은퇴해서 멀리 떠나 완전히 다른 곳에서 다르게 시작을 해 볼까.. 이반은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집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8일째 되는 날 어쨌든 관청에 출근하기로 결심한다. 근데 어라. 관청에 출근해 보니, 세상 아무 일 없었던 듯, 직원들 모두가 그에게 공손하고 정중하다. 별 일 아니었네.. 괜히 과민 반응했었나 보다,라고 이반은 생각하는데...

 

 

그런데 8일 전 그 엉망진창 피로연장에 있던 다른 하급 관리인 아낌 뻬뜨로비치가 이반의 집무실에 서류 더미를 가지고 들어온다. 피로연 얘기는 일절 없고, 관청의 일만 보고 하고, 또 이반은 명확하게 지시하고, 정확하게 일 처리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낌은 자리를 뜨기 전 쁘셀도니모프가 자진해서 부서 이동을 원한다는 보고를 하면서, 너그러이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오, 그래. 거 참 잘 됐네 싶고.. 관청의 분위기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이반은 갑자기 스스로 그 피로연 이야기를 꺼낸다. 이 사람아...이 사람아...

 

 

"그에게 전해 주시오...난 나쁜 감정을 품고 있지 않다고..나는 모든 지난 일을 잊을 용의까지 있으며, 모든, 모든 일을 잊겠다고..."

 

 

이 말을 들은 아낌은 갑자기 허둥대면서 뒷걸음치기 시작한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의 속내가 그의 행동과 표정에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니, 세상에나.. 부하 직원들이 자기 앞에서 그 민망한 사건을 말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그 일을 모른다고, 잊었다고 생각하다니.. 우리의 진보주의자 휴머니스트, 낮은 자들에게 손수 자신을 낮추시는 이반 일리치 나으리가 이렇게 눈치가 없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제 깨달으셨나요, 나으리? 댁은 꼰대 부장님, 시장님이시고, 자신이 욕하던 바로 그 수꼴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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