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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아멜리 노통브 <머큐리, 1998>

by R.H. 2018. 7. 1.

 

 

 

Front Cover

 

 

 

외부와 차단된 외딴섬의 거울 없는 저택. 늙은 남자는 젊은 여자에게 말한다. 너의 얼굴은 추하게 일그러졌다고, 나는 너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호해준다고. 너의 추함과 못남을 알지만, 너의 영혼을 사랑한다고... 이 거대한 속임수와 억압의 목격자인 프랑수와즈는 젊은 여자를 섬에서 탈출시키려 하지만 늙은 남자에게 계획이 발각되어 섬에 감금되고 만다.

 

 

“그는 제 아버지예요”

 

 

이 섬에 감금된 첫날 밤,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이 첫날밤에 프랑수아즈는 이상하게도 스르륵 잠이 들어버리고는, 이 섬에선 끊임없이 졸리다고 불평한다. 이것은 이 섬이 이야기로 만들어진 집이기 때문이다. 상징으로 지어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섬은 늙은 남자(선장)가 만든 에덴동산이고, 선장은 이 섬의 주인이자, 신이다. 그는 젊고 아름다운 하젤의 구원자이고 보호자이며 일용할 양식과 이야기 그리고 책을 제공하는 하나님 아버지인 것이다. 하여, 선장을 향한 하젤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하젤은 선장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숭배하면서, 동시에 그 늙은이를 혐오한다. 그래서 프랑수아즈의 생각과 달리, 하젤을 이 섬에 가두는 것은 선장의 물리적인 힘이 아니다. 하젤이 이곳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언제든 걸어 나갈 수 있다. 그녀를 가두는 것은 바로 선장의 기만이다. 

 

 

"그것은 당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서게 해요. 그리고 당신은 그 위치를 너무나 좋아하고..."

 

 

그러나 기만 당하는 젊은 여자를 이 섬에 가두는 것은 늙은 남자의 속임수 만은 아니다. 하젤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이고, 그 기만 속에서 안락을 누린다. 자기 해방을 원치 않는 감금인... 오히려 피해자의 위치를 안락하게 여기는 피해자.. 자기 해방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거울을 직시하고, 자신을 직시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치료자인 프랑수와즈는 하젤에게 그 용기를 불어넣는 전령이고, 구원자다. 그러나 프랑수아즈가 하젤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하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때문 만은 아니다. 

 

 

하젤을 이 섬에 붙들어 놓는 것은 기만 말고도 다른 이유가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야기다. 하젤이 선장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가 풍요로운 물질을 제공해서가 아니라, 풍요로운 이야기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젤은 분명 선장이 들려주는 수많은 모험 이야기를 즐거워했다. (선장은 이야기만이 아니라 수 백 권의 책도 지니고 있었는데, 하젤은 그의 서재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즉, 선장은 그 자체가 이야기 덩어리다.) 

 

 

"말은 사람을 해방시켜요"

 

 

하여, 늙은 이야기 꾼에게서 하젤을 벗어나게 하려면, 도전자는 그 늙은 이야기 꾼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 매력적이어야 한다. 늙은 이야기 꾼보다 젊다는 것, 아름답다는 것 만으론 부족하다. 어떤 소설은 무려 60번 넘게 읽었을 정도로 하젤은 이야기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 중독자 하젤을 빼앗기 위해선 더 멋지고, 더 유혹적이고, 더 중독적인 이야기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하젤 스스로 하는 이야기, 스스로 창조하는 글이다. 하젤은 프랑수아즈와의 대화를 통해 이 새로운 중독에 빠진다. 선장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자극이고, 유혹이다. 늙은 이야기 꾼에 도전하는 젊은 이야기 꾼인 프랑수아즈는 하젤에게서 이야기(말)를 끌어내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하젤이 새로운 이야기 꾼(프랑수아즈)을 선택할 가산 포인트가 생겼다. 하여 하젤은 프랑수아즈의 손을 잡고 선장을 벗어난다. 이 에덴동산을 벗어난다.

 


"그녀는 내 이브에게 말을 건네는 뱀이야. 왜 언어 같은 쓸데없는 것에 에덴동산을 무너뜨릴 힘이 있는 거지?"

 

 

선장의 라이벌인 프랑수아즈는 선장이 만든 이 에덴 동산에 침입한 뱀이다. 그녀가 선장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힘도, 용기도, 정의감도 아닌 ‘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야기(말)로 만들어진 이 섬은 이야기(말)로 무너진다. 

 

 

섬이 에덴 동산이라는 말은 선장이 직접 한 말이다. 그렇다. 그는 섬의 창조자다. 이야기의 신이다. 그리고 하젤은 그가 만든 자식이고, 이야기 속의 캐릭터다. 그래서 선장은 하젤 이전의 여인인 아델이 하젤과 동인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젤은 아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개정판에서 보완된 캐릭터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두 가지 결말을 독자에게 주었다. 프랑수아주가 하젤의 구원자 역할을 하는 연대의 이야기가 그 하나이고, 프랑수아주가 선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욕망의 이야기가 다른 하나다. 연대의 이야기로는 탈출이 결말이고, 욕망의 이야기로는 탈취가 결말이다. 첫 번째 결말은 이브(아젤)가 신(선장)의 기만을 파악하고, 뱀 지팡이(말과 지혜)를 가진 머큐리(프랑수아즈)와 함께 탈출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결말은 이브(아젤)가 신의 기만을 파악하지만, 다른 기만(프랑수아즈) 속에 안주하고, 뱀 지팡이를 가진 머큐리(프랑수아즈)는 에덴동산의 탈취자가 된다. 

 

 

성경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고 눈을 뜬다. 기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하지 못했다. 두려워했다. 서로가 서로를 탓하기만 하면서, 책임지는 인물이 되는 것을 회피했다. 이 소설 속의 그녀들과 달리, 신에게 맞서지 못했다... 하여 그들은 추방 당했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것일까, 탈출한 것일까... 아니면 에덴동산을 탈취할 기회를 노리며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복잡하고 뻑뻑할 수도 있는 상징의 뭉텅이들을 쉽고, 간단하며, 유쾌하고, 발랄하게 풀어놓은 소설.

 

 

추가///

 

"문학에는 해방의 힘 이상의 것, 구원의 힘이 있어요. 문학이 절 구해 주었어요. 책이 없었다면 전 이미 오래전에 죽고 말았을 거예요. 문학은 <천일야화>에서 셰이라자드의 목숨도 구했죠. 언젠가 당신에게도 구원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문학은 당신도 구해 줄 거예요"

 

 

거울은 우리의 육체를 비추고, 문학은 우리의 영혼을 비춘다. 프랑수아주가 거울을 만들기 위해 섬으로 몰래 들여온 것은 수은(머큐리)만이 아니다. 그녀는 말(메세지)을 가지고 들어갔다. 하젤은 이미 문학을 읽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영혼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준비가 된 것이었다. 준비가 된 순간 프랑수아주가 나타나, 거울과 말을 하젤 앞에 들이민 것뿐이다. 그리고... 선장(신)은 그들이 성장하기를, 그들이 자신에게 저항하기를, 그들이 자신을 파멸시키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장면을 마침내 눈앞에 둔 듯 극도의 희열을 느끼며 그들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