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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이청준 <흰옷, 1993>

by R.H. 2017. 1. 25.

 

 

 

"이룬 것 없이 헛된 낭비만 일삼아 온 그의 삶이 견딜 수 없이 허망하고 아쉽게 느껴질수록 그 어릴 적 고향 학교 시절에 대한 추억과 집착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과장스런 환영을 지어 부르곤 했다"

 

 

아버지 황종선 씨는 전란기 임시 소학교 시절을 소중한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동우는 전쟁통에 그런 학교는 없었다며 아버지를 추궁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과거를 의심하고 부정하려 든다. 아버지는 아들이 "아비의 지난날과 세상살이를 우습게" 본다고 생각한다. 대학까지 나와 교사가 된 아들이 소학교 나온 아비의 과거를 결단 내려하고 있는 것이다. 팔씨름을 겨루는 듯한 기분이다. 

 

 

아버지 종선 씨 입장에선 답답한 노릇이다. 객관적으로 증거할 자료가 없다 해서 그 과거가 없었던 건 아니건만, 아들의 추궁은 아버지 삶 전체에 대한 도전이다. 아버지의 과거는 거짓이라고, 그 과거는 상상이 만들어낸 판타지라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이 "허망스런 빈 껍데기 꼴로 전락" 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역정을 내든 변명을 하든 증거를 대든 해야 한다. 아버지가 추억하는 아름다운 과거... 과연 그 과거는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아름다운 시절이었을까. 아니다. 그 시절은 좌익과 우익이 서로를 고발하고, 죽이는 시절이었다. 이제 그 과거의 들춰냄이 시작된다.

 

 

"그 노인네의 거칠고 고집스런 생애는 세월이 흐를수록 별 거둠이 없이 살아온 종선 씨의 삶 앞에 비할 바 없이 힘차고 확고한 모습으로 그를 압도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노인과 노인의 바람기에 부러움과 시샘기를 참으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생애의 아쉬움 속에, 아직은 어떤 거둠이나 잃음의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좋았던 그 유년의 한 시절을 우정 더 소중스레 그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황종선 씨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할 뿐만 아니라, 자기 아버지의 삶을 부러워한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거친 바다 사나이였다. 술 먹으면 인사불성이고 마누라는 진즉에 도망갔으며 기행과 파행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전쟁이 나서 세상이 뒤집어졌을 땐 맨앞에 섰다. 거친 피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어질러진 세상이 신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런 신명은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들 사이에 벌어지는 추악함과 잔인함에 질려버린 그는 아들을 데리고 그 동네를 떠나버린다. 거칠게 산 그답게 그의 죽음 역시 드라마틱하다. 절벽에서 낙상하여 숨을 거둔다. 

 

 

역사의 순간에 적극 참여하고, 자신의 삶을 거칠게 내몰아 본 사람. 어딘가 강하게 풍기는 바람 같은 싸나이적 삶.. 종선 씨는 자신의 삶이 거둔 것도 이룬 것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자기 아버지의 "거칠고 고집스런 생애"를 부러워하게 된다. 한자리에 머물며 그럭저럭 삶을 살아온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어릴 적 소학교 시절을 점점 더 과장해서 아름답게 추억하고, 거친 삶을 산 자기 아버지의 삶을 흠모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의 추억담을 의심하고 추궁하던 아들 동우는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아버지의 임시 소학교는 진짜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와 아들은 과거를 확인하는 여행길에 오른다. 임시 소학교 시절 교사였던 방선생이 고향 마을에 살고 있다는 소식에 아버지와 아들은 방 선생을 찾아 나선다. 

 

 

방 선생은 시간 속에 갇힌 자다. 스스로를 섬에 유폐한 채 살아온 그는 여전히 옛 세월의 꿈속에 갇혀있는 자다. 그리고 방 선생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는 알게 된다. 거둔 것도 이룬 것도 없는 자신의 삶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는 걸. 삶이란 흔적이 있고, 그림자가 있어야 한다. 실패만을 거듭해온 종선 씨의 밭에는 어찌 되었든 종선 씨 삶의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방 선생에게는 삶의 흔적도 그림자도 없었다. 사람은 늙었으나 그 간절한 과거의 꿈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이다. 

 

 

삶의 흔적이 없는 자, 오늘을 살지 않는 자, 그것은 유령이다. 지나가버린 시절에 붙들려 그 시절의 꿈에 사로잡혀 사는 것.. 그 꿈은 더이상 꿈이 아니라 악령이다. 

 

 

자신의 상상 속에 부풀려졌던 고향 마을의 초라함을 직시하고, 동창생의 추레한 모습에서 자신을 보고, 과거 속에 박혀사는 방 선생의 모습에서 현재 자기 삶의 가치를 새삼 깨달은 종선 씨는 더 이상 과거를 미화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를 비하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자기 아버지 삶을 흠모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자기 몫의 삶을 견뎌낼 것이다. 더 이상  과거의 꿈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제 세월을 흘려보낼 것이다. 그의 아들 동우가 주최한 씻김굿은 이 흘려보냄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아들과 함께 겪으면서 이들 부자간(세대간) 대결 의식은 해소된다. 아비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아비를 추궁하기도 하고 아비의 과거를 추앙하기도 했던 아들 동우는 아비를 이해한다. 그리고 미래는 이제 다음 세대의 것임을 아버지는 덤덤히 고백한다.

 

 

"언젠가는 아비가 지식에게 지는 날이 오게 마련이다. 그것을 겁내서는 안 된다. 아비가 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비가 할 일이다... 헌다고 힘이 있으면서 지레 져줄 것도 없는 일, 힘이 있을 땐 힘대로 밀어붙여야 한다. 그게 서로 간의 믿음의 담금질이다. 믿음이 있고서야 이해도 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