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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박완서 단편 <그 가을 사흘 동안>

by R.H. 2016. 9. 15.

 

 

 

"사람을 질병에서 해방시키는 게 인술의 꿈이라면, 여자를 그런 질병 이상의 고독한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건 나의 꿈이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산부인과 의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낙태만 하는 의사다. 그녀 자신이 강간 피해자였고, 원치 않는 아기를 낙태한 경험이 있다. 하여 그녀는 스스로를 다른 여성들을 고통에서 구원하는 해방자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해방되어야 할 사람은 그녀 자신이었다. 사흘 후면 그녀의 낙태 전문 병원은 문을 닫는다. 세월이 흐르고, 동네도 변하고, 그녀도 이젠 은퇴할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런데 뭔가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무언가 해야할 것만 같다. 낙태가 아니라, 살아있는 태아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녀에게 솟구쳐 오른 것이다. 그 가을 사흘 동안 그녀는 이 소망이 이루어지길 은근히 기대한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그녀의 마지막 환자 역시 낙태를 원하는 여자다. 그것도 이미 7개월이 넘은 태아.. 그녀는 이 시술을 감행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그녀의 무의식은 그녀를 쥐고 흔든다. 그 태아를 살려둔 것이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 아기를 살리기 위해 아기를 들고 큰 병원으로 미친듯이 달려간다. 하지만 아기는 그녀의 품에서 죽는다. 사흘째 되는 날 그녀는 살아있는 아기를 받고, 나흘째 되는 날 그 아기는 죽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일까, 아닌 걸까..

 

 

어쨌든 그녀는 그동안 스스로를 속이며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밀쳐두었던 눈물을 정리한다. 그녀가 30년간 삼키고 있던 울음을 말이다. 

 

 

"내 속의 통곡은 이제 한 방울의 눈물도 못 짜낼 것 같이 굳은 게 아니었다. 다만 크게 터져서 마음대로 범람할 수 있는 장소까지 갈 동안을 주리참듯 참고 있을 뿐이었다."

 

 

 

P.S.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10년 전이다. 당시 소설을 읽은 후의 느낌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내용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도 뭔 내용인지 잘 모르겠고.. 작가들은 원래 한번씩 잔인하게 불편한 이야기를 해보려는 건가, 하는 삐딱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는 이 소설을 기억에서 삭제해버렸다. 불편하기만하고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소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2016년 이 소설집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책이란 자기가 이해할 만한 수준이 되었을 때 읽어야 하는 거구나. 내가 수준이 안 된 상태에서 읽으면 공연히 삐딱한 소리만 하게 되는구나. 지극히 단순하다 못해 직설적인 내용인데, 10년 전에는 왜 이해를 못했을까?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아니, 이해를 안 하려 했던 것이다.

 

 

"원치 않는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의 고통이 어떻다는 건 그걸 가져본 여자만이 안다. 모든 질병의 고통은 동정자를 끌어 모으지만 그 고통만은 비난과 조소를 면치 못한다."

 

 

불편의 포인트 바로 저 지점이었다. 세상의 모든 고통에는 동정의 눈길이, 혹은 숭고함과 비장함의 눈길이 덧붙여진다. 그로 인해 그 고통의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정신적 쿠션을 준다. 그런데 강간으로 인한 임신과 낙태라는 고통에는 비난과 조소, 모욕과 수치가 덧붙여진다. 고통의 당사자만이 아니라,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한치의 감정적 여유도 허락치 않는 것이다. 이러니 당연히 피하고 싶다. 보고 싶지 않다. 멀리 치워버리고 싶다. 이해하고 싶지 않다.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아예 언급조차하지 않고, 언급도 하지말라하며, 덮어버리고, 밀어버린 그 수많은 고통의 이야기들.. 인간이란 얼마나 이기적인지..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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