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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이청준 단편 소설 <침몰선, 1968>

by R.H. 2016. 8. 25.

 

 

 

"빌어먹을! 전쟁이라도 났으면!" 그들은 가끔 씨부려대었다...

"그때는 오히려 좋았겠어요! 이건 뭡니까"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진짜 싸움 이야기는 알지 못했고, 게다가 그 우스운 군대 놀이의 이야기들에는 자신들도 입이 닳아 맥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에겐 정말로 신나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문 발췌)

 

 

진짜 전쟁이 뭔지 모르는 풋내기 군인들은 꼬맹이들을 모아놓고 가짜 전쟁 무용담을 신나게 지껄여댄다. 하지만 진짜 전쟁을 겪은 후, 그들은 더이상 전쟁을 말하지 않는다. 험상궂은 얼굴고 신경질내며 침묵할 뿐.... 진짜 전쟁의 참혹한 민낯을 알지 못하는 자는 전쟁을 숭배하고, 전쟁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끔찍한 말들을 씨부려대고, 진짜 삶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 자기만의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은 그저 과거만을 추억한다. 그때는 오히려 좋았었다는 있지도 않은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전쟁을 모르는 자, 전쟁을 떠들어대고, 삶을 모르는 자, 삶을 떠들어댄다. 

 

 

갯벌에 박혀 있는 집채만한 침몰선. 그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또 떠들어댄다. "수송함이다, 전함이다, 구축함이다. 경비정이다, 조그만 상륙용 주정일 뿐이다...." 그런데 마을의 제방 건설에서 잇달아 사고나고 전쟁에 나간 젊은이들의 계속된 사망 소식에 사람들은 마을에 액운이 끼었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동안 찬란한 이름으로 불리던 저 침몰선은 마을에 액운을 몰고온 물건으로 둔갑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흐르자 사람들은 더이상 저 배의 영광에 대해서도, 저 배의 액운에 대해서도 떠들어대지 않는다.

 

 

저 배의 정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소년은 저 배의 찬란함을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 배는 갯벌에서 번쩍 일어나 바다로 나갈거라는 환상..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고물장수는 알려준다. 이 배의 정체는 "10년 묵은 도깨비집" 일 뿐이라는 것을... 고철은 커녕 쓸모있는 목재조차 남아있지 않은 쓰레기 덩어리라는 것을...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