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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편혜영 <선의 법칙, 2015>

by R.H. 2016. 8. 19.

 

 

 

양복입는 일에 현혹되어 제3금융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이수호...일확천금이라는 부풀려진 환상에 현혹되어 다단계에 빠진 윤세오, 신하정, 부이..

 

수많은 사람들이 양복입고 하는 일에 환상을 갖지만, 그 일들은 사실 하찮고 지저분하며 모욕적인 일이다. 남보기 그럴싸해보이는 일, 다양한 종류의 그럴듯한 사업과 투자 따위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미끼를 던지고, 우리는 말려들어간다. 그 뿐인가. 해외로 이민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냥, 가면 바로 선진국 중산층 시민으로 편입될 수 있는 냥, 선전하는 문구들. 환상들..

 

우리 모두는 20대 언저리에서 어딘가로 빨려들어갔다. 그들은 우리를 유혹한다. 멋진 일, 멋진 곳이라고, 황금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모두 함정이다. 그야말로 "시스템이 부풀려놓은 환상" 이다.

 

부유하는 가벼운 인간 부이, 무거운 인간 신하정

 

이 함정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온 사람은 부이다. 이는 부이의 태도 때문이었다. 부이는 자신의 욕망을 제일 우선으로 하는 인간이다. 단 음식이 먹고 싶으면 혼자 몰래 나와 사먹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악랄하게 이기적인 건 또 아니다. 비틀거리는 타인에게 조심하라고는 말은 하지만, 손을 내밀어 잡아주지 않는 묘한 무심함.. 

 

그래서 그는 실패를 툭 털고는 홀로 택시 타고 유유히 떠나버릴 수 있었고, 실패에 대해 어깨 한번 으쓱해버리고 만다. 그는 부유하는 인간이다. 가벼운 인간이다. 삶을 심각하게 바라보지도 않고, 타인을 진지하게 대하지도 않는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매정하다. 이렇게 가볍기 때문에 그는 절망의 심연에 가라앉지 않을 수 있었고, 함정에서 쉽게 떠올라 부유할 수 있었다.

 

반면에 신하정은 과묵하고, 진중한 인간이었다. "몸이 아픈 동료가 있으면 약을 챙길 정도로 다정한 사람" 이었다. 타인을 배려하고 염려하는 무거운 인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를 붙잡아주는 인간은 없었다. 무심한 이복 언니, 냉정한 계모, 홀로 떠나버린 부이.. 그래서 함정에 빠졌을 때, 떠오를 수 없었다. 되려 자기 무게가 그녀를 더 깊이 가라앉히고 말았다. 그녀는 너무 진지하고, 너무 무거운 인간이었고, 밖으로 빠져나와야 할 이유도, 구원의 밧줄 하나도 찾을 수 없었으니까.

 

멈출 줄 모른 인간, 이수호

 

"이수호의 문제는 그것이었다. 알고 있음에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자신이 너무 멀리 와버린 게 실감났다. 이왕 왔으므로 계속 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본문 중>

 

이수호는 함정에 빠져 가라앉다 못해 파멸로 치닫는다. 왜? 다른 인물들이 함정에 빠져 정체되기라도 한 반면, 이수호는 계속 내달렸기 때문이다. 멈출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복입는 일에 대한 집착이 가져온 파멸이다. 경제적 파국 상황에서 자신은 양복을 벗어버리고, 숙식이 제공되는 공장이라도 들어가고, 노모는 단칸방에라도 모셔두면, 제3 금융권의 돈을 빌려쓸 이유도 없다. 사업이 망한 것도 아니고, 집안에 위급한 수술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파멸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이수호가 본질적으로 악한 인간은 아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망하듯 그저 양복입고 9시 출근하는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청년이었다. 그 역시 "그럴 리 없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왜 그는 남을 협박하고, 궁지로 몰고, 모욕하는 악랄한 직업을 벗어던지지 못한 걸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채었을 때, 멈추지 않으면, 삶은 부지불식간에 "어쩌다 그렇게 됐네." 가 되어버리고 만다.

 

일상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목표다, 윤세오 

 

우리 모두는 내 욕망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준 욕망을 내 욕망이라 착각해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세상이 확대해 놓은 휘황찬란한 환상이라는 덫에 걸려 함정에 빠진다. 그런데 그 구덩이에는 밧줄이 하나 달려 있다. 그 밧줄을 잡고 구덩이를 기어나오면 된다. 그런데 이 간단한 걸 못한다. 그 밧줄을 잡는다는 행위가 내가 환상에 속아넘어갔다는 것을, 내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은 밧줄을 잡고 낑낑대며 나오는 것보다 그냥 그 함정 속에 퍼질러 있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일단은 몸이 덜 힘들기 때문이다. 혹은 무서워서이기도 하다. 이 구덩이 밖에 더 무서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래, 그냥 이 실패라는 구덩이 속에 웅크리고 있자. 이게 안전한 거 같아." 라고 자기 합리화 하기까지 한다. 바로 윤세오의 삶이 이것이었다. 그녀는 다단계라는 구덩이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고, 몸이 빠져 나온 뒤에도 자신의 집에서 빠져 나오질 못했다. 자신의 집에 웅크리고 앉아 모든 일상을 포기한 삶을 살았다.

 

"악의는 윤세오에게 할 일을 주었다. 슬픔을 떨치고 일어나게 했다. 기운 차려 움직이게 했다. 밥을 먹게 했고 누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다니게 했다." <본문 중>

 

윤세오를 집 밖으로 끄집어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무한 사랑과 무한 보호를 주었던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계속 움직이게 한 것은 복수심이었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를 죽이고 말겠다는 복수심. 아버지를 궁지로 몰아, 자살하게 만든 자에 대한 복수심. 즉 악이 그녀를 삶으로 끌어냈던 것이다. 선과 악은 이렇게 뒤엉켜있다. 이게 선과 악의 법칙이다.

 

그러나 복수심이 구렁텅이에 빠진 그녀를 건져올리는 발판이 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녀를 일상으로 복귀 할 수 있게 하는 건 아니다. 그녀는 생활비를 벌기위해 슈퍼마켓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곳은 바로 생을 회복하는 공간이다. 슈퍼마켓...지극히 일상적인 물건들을 사고파는 곳. 즉 일상이 교환되는 곳에서 그녀는 일상으로의 회복을 연습할 수 있었다.

 

"그저 예의로 안부를 확인하고 얼굴을 알아보며 인사를 나눌 정도로만 친교를 나누는 것, 그런 식으로 사람을 아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본문 중>

 

허물어져 가던 작고 낡은 집에 웅크려 있던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새옷을 가지고 이제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삶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20대를 통과했고, 살아남았다. 이제 그녀는 일상을 회복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