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드 모파상 <비계 덩어리, 1880>
프로이센이 점령한 지역에서, 간신히 통행 허가증을 받은 마차 한 대가 눈 속을 헤치며 빠져나간다.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10명의 승객을 태운 이 마차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상인 부부, 부르주아 부부, 유서 깊은 가문의 백작 부부, 2명의 수녀, 혁명가, 그리고 불 드 쉬프(비계 덩어리)라 불리는 한 명의 매춘부.. 모파상이 그린 설국 열차다. 여튼,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소상공인 부인, 부르주아 부인, 백작 부인은 마지막 승객의 신분, 즉 매춘부를 알아보자마자 자기들끼리 급하게 친해진다. 마치 건전한 "가정 주부의 위엄" 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다른 승객들 역시 그녀를 외면한다. 어디 감히 천한 것이.. 이런 느낌. 그런데 점심을 먹기로 한 중간 기착지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더디 달려가는 마차. 미처 음식..
2017. 2. 4.
한강 <붉은 꽃 이야기, 2003>
"옛날에, 중국의 한 스님이 멀리 있는 다른 스님을 찾아갔어.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날이 저물었지. '저쪽 방에 가서 주무시지요.' 객 스님이 인사를 하고 나갔다가, 도로 문을 열고 들어왔어. 이 객 스님 하는 말이, 밖이 어둡습니다, 스님. 한데 이 방에 있던 스님이 촛을을 건네주었다가, 객 스님이 받자마자 후욱, 불어 꺼버렸어. 바로 그때, 초를 들고 섰던 객스님의 눈에서, 깨달음의 눈물이 흘러내린 거라." 오빠에게 뺨맞고, 손에 짐승 같은 털이 더부룩한 수학 선생에게 뺨맞은 소녀. 부당한 폭력. 노려보는 눈, 저항의 눈. 더 강하게 조여오는 폭력. 코피가 터지고, 그날 첫 생리를 한다. 붉음.. 그것은 피의 색깔이고 폭력의 색깔이다. 동시에 아름다움과 욕망의 색깔이기도 하다. "짤막한 머리에 화..
2017.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