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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사무엘하 21장 : 비극. 비극. 비극

by R.H. 2017. 2. 13.




3년 기근


이스라엘에 3년 기근이 들었을 때다. 다윗은 뜬금없이 기근의 원인이 죽은 사울 탓이란다. 기근이 든다는 건, 요즘으로 치면 경제 불황 시기다. 자기 치세에 이 사단이 났는데, 다윗은 전임자를 탓한다. 이게 다 사울 탓이란다. 도대체 언제적 사울인데.. 기브온 사람들과 사울 사이에 있었던 피의 원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이 복수심에 불타 사울 자손 일곱을 내줄 것을 요구하는데, 이를 들어준다. 일타 이피다. 자기 손에 피 안 묻히고 남의 손으로 잔여 세력을 없애고, 기근 상황에서 민심이 거칠어진 것을 다른 쪽으로 눈돌리게 하고..



그리하여 사울의 첩 리스바에게서 난 두 아들과 사울의 장녀 메랍의 아들 다섯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준다. 그들은 언덕 위에서 목매달린다. 이 얼마나 억울한 죽음이며, 원통한 죽음인가. 황량한 언덕 위, 무르익은 보리밭이 앞에 보이고..  바람이 분다. 보리가 흔들린다. 바람이 분다. 목매달린 시체들이 흔들린다.



리스바


사울이 죽었다. 그 아들 요나단이 죽었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파멸이다. 도망쳐야한다. 달아나야한다. 어서 빨리. 한시라도 빨리. 정신이 나간다. 얼이 빠진다.



그런데 여기 한 여인이 있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허둥대는 이 급박한 사태 앞에서, 아무 두려움 없이 성큼성큼 자기 걸음을 걷는 한 여인이 있다. 사울의 첩 라스바는 모욕 당한 채 내던져진 사울과 요나단의 시체를 수습한다. 바위 위에 시체를 놓는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시체를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 햇빛이 내리쬔다.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풀어헤쳐진 머리, 초췌한 얼굴, 부르튼 입술, 그러나 그 눈빛에는 살기가 어려있다. 원한이 어려있다. 



감정이 그 끝까지 간 이 순간,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비극. 비극. 비극. 황량한 들판 위에 펼쳐지는 처절한 침묵. 이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시체를 거두어 예를 갖춰 장사지내게 한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헐벗은 감정을, 상처입은 감정을 드러낸 채 침묵의 요구를 한 여인에 대한 응답이다.



P.S. 사무엘하 21장은 시간 순으로 엮인 글이 아니다. 사무엘하를 마무리 하기 바로 직전에 추가로 삽입한 느낌이다. 이 장면들을 나중에서야 덧붙인 이유는 뭘까. 기록자의 의도는 뭘까. 나는 삼국지를 읽는 이유는 삼국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삼국지를 읽어야한다면, 그 이유는 이것 하나라고 단언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는가..에 대한 나관중의 최종 답변이라고 생각한다.(매우 허무주의적인 답변임. 아무도 그걸 이야기하지 않지만..) 사무엘하의 마지막에 추가 삽인된 저 황량한 장면들 역시 마찬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