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175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8) : 객관의 눈을 가장한 왜곡된 시선 펄럭이는 거대한 성조기가 스크린을 꽉 채우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미국이 참전한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이런 첫 장면이 문제될 건 전혀 없다. 제 3자의 눈에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영화 내용은 소박하다. 세 아들을 전장에서 잃어버린 어머니의 슬픔, 그리고 이 어머니에게 남은 마지막 아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기 위한 임무수행을 그린 영화다. 전쟁의 정당성이나 사상, 이념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휴머니즘의 시각으로 전쟁을 그려내겠다고 확실히 한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독일군은 천하에 비열한 놈이다. 목숨을 구걸하며 애걸하는 추잡한 독일군.. 이를 불쌍히 여겨 살려 보냈더니, 탱크 끌고 나타났다. 게다가 미군 가슴에 단검을 지그시 찔러 넣는 모습이란.. 뭐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거의 .. 2010. 4. 5.
콘트롤 (Control, 2004) : 인간은 변할 수 있는가 눈에 독기가 하나 가득 담긴 한 남자가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있다. 마지막 남길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욕설을 퍼붓는 이 자. 그는 죽는 순간에도 뉘우칠 줄 모르는 흉악범이다. 그런데 눈을 뜨니 지옥이 아니라, 시체보관실 옆이다. 인간의 폭력성을 잠재우는 신약 임상 실험에 피실험자로 참여할 것을 제안 받은 것이다.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다. 그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실험실을 탈출하려 인질극을 벌이고, 시도 때도 없이 눈 부라리며, 툭하면 물건을 부수기 일쑤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는 갑자기 불면증에 시달린다. 한 남자의 얼굴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그가 죽인 사람 모두는 갱이었다. 이권 다툼과 관련해서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였다. 그는 갱들을 죽인 것이 일종의 자기방어였다고 주장한다. 그.. 2010. 4. 1.
데이비드 게일 (The Life Of David Gale, 2003) 주장은 선명하고, 어조는 강경하다.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게 이 영화의 주장이다. 그 주장의 근거는 억울한 죽음을 만드는 시스템의 허점이다. 세상 모든 시스템은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적어도 억울함을 풀 기회는 가질 수 있다. 사형제의 문제는 바로 억울함을 풀 기회 자체를 아예 박탈한다는 것이다. 사형제 폐지 운동을 벌이는 데이비드 게일과 그의 동료들은 극단의 예를 통해, 사형제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극단의 예는 자신들이 만든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남게 되는 것은 왜일까? 영화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 무엇보다 핀트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한 번 보자. 사형제는 계산된 살인으.. 2010. 3. 27.
데드 맨 워킹 (Dead Man Walking, 1995) 사형제 폐지와 관련해 언제나 거론되는 "데드 맨 워킹".. 어쩐지 손이 잘 가지 않는 영화였다. 이런 류의 영화가 보여주는 뻔한 설정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로 인해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거나, 누명을 쓴 거다, 라는 식. 혹은 "우셔야 합니다. 동정심을 보여 줘야 합니다." 라는 식의 감정의 강요. 하지만 잘못 짚었다.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매튜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끝까지 매튜를 사랑한다. 매튜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도 않는다. 불우한 어린 시절이라는 설정은 없는 거나 다름없다. 더더욱 맘에 드는 것은 만든 이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정심을 일으키는 억지 설정도 집어넣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사형수의 가엾고 여린 모습, 어딘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 2010. 3. 25.
세븐 (Seven,1995) : ...그리고 분노 무관심이 미덕인 사회 '"Did the kid see it?" "Who gives a fuck? He's dead. His wife killed him. Anything else, it has nothing to do with us." 영화의 첫 장면. 살인 사건 현장에 도착한 서머셋 형사는 대뜸 묻는다. 이 끔찍한 광경을 이 집 아이들이 목격했는지.. 이에 동료 형사는 어이없어 한다. 짜증과 신경질을 내며 욕지거리를 섞어 말한다. 아내가 남편을 죽였고, 그 외에는 상관할 봐 아니라고.. 이 도시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미덕이 되어버린 곳이다. 서머셋 형사의 말처럼, 강도가 들면, '도와달라' 는 말 대신, '불이야' 를 외쳐야 하는 곳이다. 산책하는 사람의 지갑과 시계를 빼앗고는 느닷없이 눈을 찔러대는.. 2010. 3. 21.
마데이누사 (Madeinusa, 2006) : 마음 속 감시 카메라마저 사라진 후.. 페루의 한 시골 마을. 집 주위에 쥐약을 뿌리는 한 소녀. 죽은 쥐를 발견한 그녀는 쥐새끼를 멀리 내동댕이친다. 이런 그녀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움이 하나 가득이다. 이것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 부분인 이 장면은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복선이다. 마음 속의 감시 카메라마저 사리진 다면.. 예수가 죽은 후 부활하기 전 3일 동안, 인간이 무슨 짓을 하든 신이 볼 수 없다고 믿는 이 마을 사람들은 이 기간에 축제를 벌인다. 영화는 바로 신마저 사라져 버린 시간에 고립된 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비도덕적인 행동을 자제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법이 규제하기 때문이고, 이차적으로는 종교가 규제하기 때문이다. 법은 거리에 CC카메라를 설치하고, 종교는 우리의 마.. 2010. 3. 8.
엘리 파커 (Ellie Parker, 2005) : 초보자의 눈물 호주 출신 연기자 지망생인 엘리 파커의 할리우드 바닥에서 살아남기.. 아니, 할리우드 진입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다큐 형식으로 풀어낸 영화. 연기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할리우드 주변을 서성거리는 그녀. 오디션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지만, 성과는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하고자 하는 일은 제대로 풀리지 않고, 망나니 같은 남자 친구는 골치 덩어리일 뿐이다. 그녀가 이 망나니 같은 남자 친구와 함께 하는 건 단지 혼자 있기 싫어서다. 그녀는 이 먼 나라의 낯선 도시에서 지독하게 외로운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환상에 취해 미국으로 향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처지 역시 그녀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니 그녀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녀는 주류 백인에 속하고, 영어가 모국어니.. 2009. 10. 31.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2008) : 피의 제물 이게 이 영화의 원제다. 뭐, 이런 식으로 한글 제목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무래도 meat과 meet가 비슷한 발음이어서.. 여하튼 제목처럼 이 영화는 잔인하다. 피범벅과 시체 난도질이 난무하므로 비위 약한 사람이 음식 먹으면서 보기는 좀 곤란한 영화. 레온은 도시의 “진짜” 모습을 찍고자 하는 사진 작가다. 알 수 없는 살인자의 뒤를 쫓으면서 그는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본다. 그렇다면 그가 본 도시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이 도시 지하에는 인류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존재해 온 괴물들이 살고 있는데, 새벽의 기차는 이 괴물들에게 인육을 던져 주어서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이처럼 괴물에게 소수의 인간을 제물로 던져 주는 이야기는 고대 전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 2009. 10. 28.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 2001) : 상상이라는 몰핀 상상(꿈) 이라는 허가된 몰핀 우리 모두는 상상을 한다. 수면 속 꿈 일수도 있고, 눈 뜬 채 하는 공상일 수도 있다. 혹은 남이 만들어 준 상상(소설, 영화와 같은 이야기)에 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상상하는가?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질서 속에서 대부분 우리는 수동적인 피지배자다. 그래서 우리는 상상 속에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질서의 지배자다. 계모에게 핍박 받는 신데렐라 이야기.. 현실의 신데렐라는 이 가혹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마술의 도움을 받고 왕자와 결혼한다. 왕자와 결혼했다는 말은 권력을 잡았다는 말이다. 현실의 신데렐라들은 핍박받는 피지배자지만, 허구 속의 신데렐라는 종국에 승리자, 지배자가 된다. 슈퍼.. 2009. 10. 24.
막달레나 시스터즈 (The Magdalene Sisters, 2002) : 악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닫힌 세계. 그곳에는 질서가 있다. 이 질서는 경건한 기독교 논리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다지 경건하지도, 거룩하지도 않다. 곳곳에 폭력과 착취, 그리고 인간의 추함이 가득할 뿐이다. 이는 이곳 질서가 개인의 자율을 박탈하고, 복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막달레나 수녀원이 운영하는 보호 시설에 3명의 여인들이 수용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가렛은 사촌에게 성폭행 당한 뒤, 가족에 의해 쫓기듯 이곳으로 보내졌다. 미혼모 로즈 역시 가족에 의해 이곳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버네뎃이 이곳에 수용된 이유는 그녀가 남자들에게 음탕한 웃음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녀들의 죄다. “음란함” ..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죄와 벌은 법에 규정된 것을 말하는 것이지, 결단코 특정인이나.. 2009.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