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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75

인셉션(Inception, 2010) -자기 원칙 1. 토템 - 자기 정체성 여행자들에게 북극성이 필요하듯, 꿈과 현실을 오가는 이들에게는 자기만의 토템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꿈이라는 위험한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나를 미로 속에서 끄집어내 줄 기준점.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규정하는 나'가 나를 구원한다. 아서의 토템인 주사위는 그가 스스로를 확률과 통계에 능한 리서치형 인간으로 규정했다는 의미다. 임스의 토템인 카지노 칩은 그가 자신을 밑장빼기에 능한 타짜형 인간으로 규정했다는 의미다. 아리아드니의 토템은 비숍이다. 비숍은 킹과 퀸 바로 옆에서 움직이는 말로, 그녀는 이 판의 핵심 플레이어인 코브의 최대 조력자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코브의 토템인 팽이는 무슨 의미일까.. 코브가 순환론적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일 수.. 2016. 6. 3.
화차(2012)-자기 탈출의 욕망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삶, 더 나은 나를 꿈꾼다. 우리 삶 자체는 끝없는 자기갱신의 과정이고, 그 과정은 고역이다. 그래서 삶이 쉽지 않을때면,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하곤 한다. 다음 생에는 어떻게 어떻게 태어나고 싶다는 흔한 넋두리를 늘어놓곤 한다. 때론 과거로 돌아가는 망상도 한다. 이는 내 과거의 얼룩을 지우고 싶은 욕망이다. 환생, 부활, 시간여행, 자기혁명..이는 더 나은 나를 꿈꾸는 우리의 욕망을 집약해 놓은 단어들이다. 차경선(김민희)은 과거의 나를 지우고 싶다는 욕망과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비정상적으로 극대화되어 나타난 인물이다. 그리고 이 두 욕망은 극에 치달아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픈 욕망' 으로까지 튀틀려져 버렸다. 삶이 코너에 몰려본 사람이라면, 한.. 2016. 5. 26.
악마를 보았다(2010) 수현(이병헌)이 그 놈(최민식)을 계속 풀어주는 이유는 그 놈에게 처절한 고통을 주기 위해서란다. 근데 굳이 놓아줄 이유가 있나? 고통을 주고 싶다면 그냥 지하 감옥 비스꾸리한 데다 가둬놓고 중세식 고문을 해대면 되는데. 수현이 그 놈을 놓아주는 것은 사냥의 쾌감 때문이라고 다른 놈의 입을 통해 알려준다. 하지만 그것도 뭔가 부족한 설명이다. 수현이 사냥을 즐긴다면, 아주 잠깐 스치듯이라도 수현의 엷은 미소 한번쯤은 나와주어야 한다.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여기서 또 비약들어간다. 수현이 진짜 원하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 아닐까. 그래서 그는 그 놈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다. 회개할 시간, 참회할 시간. 역지사지할 시간. 우리 인간은 공감 능력이 있다. 인간과 인.. 2016. 5. 5.
그래비티 (Gravity, 2013) : 허무의 심연 속에서 많은 부분이 생략된 영화다.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이 우주인이 된 이유와 사명감에 대해 설명이 없다. 그녀가 의사였다는 것, 의료용으로 제작된 스캐닝 시스템을 설치하러 왔다는 것 같은 간단한 사실만을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칠 뿐이다. 그런데 우주 전문 인력이 아닌 그녀가 패널 하나 설치하기 위해, 그 엄청난 우주인 훈련 과정을 굳이 거쳐서 우주까지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 그녀가 하는 작업을 보면, 드라이버질만(?) 잘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이제부터는 감상자의 상상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지극히 단조롭고, 지루하다. 지상에서의 그녀 삶이 그랬을 것이다. 지극히 단조롭고 지루한 삶. 평온해 보이는 일상.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 내부는 슬픔과 고통으로 시끄럽게 아우성쳤을 것이다... 2016. 4. 25.
아이 엠 러브 (I Am Love, 2009) - 나는 사랑이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은 질서이고 도시이고 문명이다. 문명의 도시 밀라노 그 한가운데 자리잡은 질서 가득한 재벌 가족. 그들은 가족 모임에서조차 누가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정확한 위치를 정한다. 그 집 한 가운데 엠마(틸다 스위튼) 가 있다. 그녀는 남편이 러시아에 미술품 수집을 위해 방문했을 때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남편은 그녀에게 엠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렇다. 그녀는 남편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수집품이다. 하지만 엠마가 자기 생활에 별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흔해빠진 부잣집 마나님의 권태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 틀에 박힌 듯한 삶이지만, 그것에 숨막혀하거나 진저리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녀는 질서 속에서 탈출하고자 했을까. 간간히 드러나는 남편의 러시아적인 것에 대한 경멸.. 2016. 4. 20.
도희야(2014)-나하고 갈래? "이름이 뭐니?" 영화 속 그 누구도 도희를 도희라 부르지 않는다. 썅년, 씨x년, 썩을 년.. 이것이 이 소녀를 부르는 호칭이다. 헌데 새로 부임한 파출소 소장 영남은(배두나) 일진에게 얻어맞고 있는 도희를 구해주고, 소녀의 이름을 묻는다. 김춘수의 시 에서 말했듯이,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소녀는 영남이 이름을 불러주자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된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된 것, 이들의 얽힘. 이렇게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 제목 역시 도희가 아닌 도희야 라고 이름을 불러주고 있다.) "도희가 불쌍하면서도 말입니다. 뭔가 좀 느낌이 좋지 않은 것 같단 말입니다...꼭 어린 괴물같단 생각이 들때가 있단 말입니다." 계부와 할머니는 물론이고 경찰, 마을 사람 누구도 소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2016. 2. 14.
올드보이(2003) - 오늘도 무사히, 그게 니 죄니라 기억의 고통 "그냥 잊어버린거야. 왜. 남의 일이니까." 이우진이(유지태) 기억하는 것을 오대수는(최민식) 기억하지 못한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고통. 당한 사람은 평생을 간직하는 기억. 그런데 가해자는 기억조차 못한다. 되려 반문한다. "그게 그렇게 큰 죄야?" 가해자는 피해자를 향해 말한다. 과거 속에 갇혀 질척대는 사람이라고, 피해의식에 쩌든 사람이라고.. 어거지를 쓰기도 한다. 분명 그렇게 말해놓고도 그런 적 없다,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 이게 너의 첫번째 죄니라. 대충 사는 당신들에게 이르노니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 라고 하여 오대수란다. 그가 사는 방식이다. 우리 대부분이 사는 방식이다. 안일하게 오늘만 무사히 넘기고, 되는 대로 .. 2013. 9. 24.
테이큰 (Taken, 2008) 전직 특수요원 밀즈(리암 니슨) 는 국가에 봉사하느라 순탄한 결혼생활을 못했던 모양이다. 지금 그는 아내와는 이혼했고, 은퇴한 홀아비다. 그런데 어느날 파리 여행을 간 딸이 납치된다. 이제 그는 딸을 구하기 위해 직접 뛰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천하무적에다 일당백으로 맥가이버 + 람보 쯤 된다. 많은 영화에서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뻔하디 뻔한 스토리에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소시민적 영웅 설정이다. 총질이나 액션에도 특별한 점은 없다. 헐리웃 영화에서 많이 본 흔하디 흔한 장면들이다. 영화 초반부에는 '이걸 계속 봐, 말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하다. 그런데 딸이 납치되는 순간부터 영화는 휘몰아친다. 스토리 진행은 거의 예상되고, 결말 역시도 어느 정도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다음 장면이 계속해서 .. 2011. 1. 28.
더 재킷 (The Jacket, 2005) 인간은 누구나 시간여행을 상상한다. 과거로 돌아가 삐긋한 부분을 수정하고 싶고, 미래로 날아가 대박 정보를 빼오고 싶다. 이렇게 우리가 시간여행을 꿈꾸는 것은 더 나은, 더 안락한, 더 행복한 '현재' 를 원한다는 뜻이다. '시간여행' 이라는 단언의 뒷면에는 인간의 '이기심' 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면서 '이타심', 즉 누군가의 더 나은 '미래' 를 이야기한다. 시간여행을 통해 자신이 3일 뒤에 죽을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까.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어디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한 어린이의 미래를 염려하겠는가. 어떻게든 살아볼려고, 죽음을 막아보려고 발버둥칠 것이다. 헌데, 잭 스탁스는 시간여행이라는 엄청난 찬스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2011. 1. 27.
데이브레이커스 (Daybreakers, 2009) : 인간성 회복에의 믿음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뱀파이어는 어느 먼나라 고성에 숨어사는 전설 속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있다. 제 이익만을 위해 남의 눈에서 피눈물 흐르게 하는 자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해 타인을 끌어내리고, 무너뜨리고, 짓밟고 뭉개뜨리는 자들. 흔한말로 고혈을 짜내는 자들. 그들이 바로 우리 속에 숨어지내는 뱀파이어다. 그런데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도 뱀파이어의 야만이 숨어있다. 죄없는 사슴의 목구멍에 빨대 꽂아 피를 쪽쪽 빨아먹는 야만스런 인간의 모습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인간은 누구나 불로장생이라는 헛된 욕심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영생을 보장받는다면, 사슴피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인간의 피를 기꺼이 빨아먹는 야만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영.. 2011.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