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1

악마를 보았다(2010)

by R.H. 2016. 5. 5.




<스포일러 주의!>



수현(이병헌)이 그 놈(최민식)을 계속 풀어주는 이유는 그 놈에게 처절한 고통을 주기 위해서란다. 근데 굳이 놓아줄 이유가 있나? 고통을 주고 싶다면 그냥 지하 감옥 비스꾸리한 데다 가둬놓고 중세식 고문을 해대면 되는데. 



수현이 그 놈을 놓아주는 것은 사냥의 쾌감 때문이라고 다른 놈의 입을 통해 알려준다. 하지만 그것도 뭔가 부족한 설명이다. 수현이 사냥을 즐긴다면, 아주 잠깐 스치듯이라도 수현의 엷은 미소 한번쯤은 나와주어야 한다.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여기서 또 비약들어간다.



수현이 진짜 원하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 아닐까. 그래서 그는 그 놈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다. 회개할 시간, 참회할 시간. 역지사지할 시간. 



우리 인간은 공감 능력이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케이블선이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한 공감은 이 선을 타고 흐른다. 그래서 수현은 그 경험의 시간을 주고 있다. 피해자가 느꼈을 고통의 경험, 공포의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의 시간을 통해 참회와 사과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수현(인간)의 실수다. 범인은 악마다. 지금 수현은 악마에게서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하다. 더 큰 고통이 인간에게 주어질 뿐이다.



현실의 우리 역시 그러하다.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돈도 보상도 아닌 진실규명과 진정성 어린 사과 한마디...라는 흔하고도 가슴 아픈 말... 이 단순한 것을 그들은 왜 해주지 않는 것인가. 그들은 악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슬프게도 악마로부터 얻을 수 없는 것을 애타게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들(악마)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내 손에 묻은 악마의 피 뿐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