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1

인셉션(Inception, 2010) -자기 원칙

by R.H. 2016. 6. 3.






1. 토템 - 자기 정체성


여행자들에게 북극성이 필요하듯, 꿈과 현실을 오가는 이들에게는 자기만의 토템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꿈이라는 위험한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나를 미로 속에서 끄집어내 줄 기준점.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규정하는 나'가 나를 구원한다. 



아서의 토템인 주사위는 그가 스스로를 확률과 통계에 능한 리서치형 인간으로 규정했다는 의미다. 임스의 토템인 카지노 칩은 그가 자신을 밑장빼기에 능한 타짜형 인간으로 규정했다는 의미다. 아리아드니의 토템은 비숍이다. 비숍은 킹과 퀸 바로 옆에서 움직이는 말로, 그녀는 이 판의 핵심 플레이어인 코브의 최대 조력자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코브의 토템인 팽이는 무슨 의미일까.. 코브가 순환론적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혼자만이 이 꿈을 반복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혹은 팀원 중에 그만이 림보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어쨌든 코브는 반복의 인간이다. 반복을 통해 자기 자신을 완성한다는 의미일까.. 아드리아나를 테스트하는 장면에서도 코브의 성향이 나타난다. 아드리아나가 미로를 사각형으로 설계하자 퇴짜를 놓지만, 원 형태의 미로를 설계하자 흡족해 한다.



여튼 토템은 자기 정체성이고, 자신을 붙잡고 있는 자기만의 확고부동한 원칙이다. 그래서 코브가 자신의 토템이자 아내의 토템인 팽이를 림보에서 함부로 건드렸기에 길을 잃고 방황했던 것이다. 림보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자, 그는 손쉬운 길을 택했던 것이다.



현실의 우리가 흔히 하는 짓이다. 설득이 힘들어질 때면,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면, 우리는 손쉬운 방법을 꺼내든다. 바로 현실과의 타협이라는 미명하에 자기 원칙,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는 짓 말이다. 이 손쉬운 해결책의 파장은 어마어마하다. 코브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더이상 가족을 만날 수가 없다. 그는 림보라는 구덩이에서는 빠져나오지만, 그의 인생 자체가 림보가 되버린다.



2. 꿈이라는 구덩이 속에서...



자신의 꿈을 가능에서 현실로 만드는 것.. 그것은 너무도 어렵고 힘들다. 해서 우리는 손쉽게 꿈을 포기한다. 그런데 포기했다고 생각했던 꿈은 바이러스처럼 우리 안에 몰래 자리잡는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그 웅크린 꿈을 꺼내보고 들여다보고 한숨쉬고 다시 한 번 꿈꿔보길 소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꿈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 라는 회의감...그리고 우울함



자기 꿈의 최대 방해자, 최대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 의심하면 흔들리고, 흔들리면 자기 중심을 놓쳐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우울과 좌절 속에 길을 잃는다. 꿈을 소망하고, 후회하고, 의심하고, 길을 잃고., 우울의 구덩이에 빠지고..무한 반복이다. 


그러다 급기야 제 힘으로 꿈꿀 수 조차 없는 지경에 이른다. 유서프의 지하실에서 약물에 의지해 꿈꾸는 자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꿈이 좌절된 자들의 상징이다. 내가 꿈꾸는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져버릴 때, 그 두 간격 사이에 생기는 거대한 어둠의 구멍 속에 빨려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태.. 이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악몽같은 사이클을 벗어날 것인가. 용기다. 자신의 꿈, 소망, 목표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 말이다. 후회 속에 죽기만을 기다리는 자가 될 것인가.. 자기 믿음 속으로 뛰어들 것인가. 물론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기 위해서는 토템이라는 흔들림없는 자기 정체성이 꼭 필요하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Do you want to take a leap of faith or become an old man filled with regret waiting to die 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