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1

텔미썸씽 (1999) - 나를 욕망하느냐

by R.H. 2016. 6. 11.

   


<주의, 범인 적혀있는 강력 스포일러!!>


욕망.. 그 악을 처단하러 왔노라


욕망은 집착이고, 폭력이다. 욕망과 폭력은 육체의 것이요, 피의 색깔이다. 사랑이라는 미명하게 벌어지는 갖가지 폭력들. 수연의 아버지는 수연을 욕망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탐하고, 집착하고, 폭력을 서슴치 않는다. 수연은(심은하) 경험으로 배웠다. 욕망은 폭력이오, 곧 악이라는 것을. 하여 그녀는 자신을 욕망하는 모든 자들 앞에 나타나 묻는다. '나를 욕망하느냐(너는 악인가)' .. 그들은 답했다. '너를 욕망한다.(나는 악이다)' .. 스스로 악이라고 고백한 그들이 죽어마땅한 이유다.


승민은(염정아) 수연을 악몽 속에서 구원해주고 싶다. 하지만 힘없는 소녀는 다른 힘없는 소녀를 구해주고 싶어도 구할 수 없다. 이런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수연이 아버지를 심판하려 했을 때, 승민은 주저없이 도왔을 것이다. 이 가여운 소녀를 악몽에서 구해줄 수 있다면, 그녀의 구원자가 될 수만 있다면..


"넌 자살할 애가 아냐"


하지만 승민은 깨달았다. 수연은 심판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수연이 단순히 복수만을 원했다면, 제 아비를 살해하는데서 끝냈어야 했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남자들을 죽인 후에 보인 행동 역시 단순한 복수, 혹은 그들로부터의 도망감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수연은 "욕망과 폭력" 이라는 주제로 피와 육체 덩어리라는 "작품" 을 세상에 전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메세지를 세상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단추와 702호 키를 보란듯이 남겨놓은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스스로의 행위를 단순한 복수가 아닌 예술가의 퍼포먼스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행위들이 발견되길 원하는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행위 예술가, 비디오 아티스트로 규정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승민은 알아버렸다. 자신은 그녀의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수연을 멈추게 할 수 없음을. 수연의 행위는 복수가 아닌 예술임을.. 하여 승민은 이 모든 상황을 종료하고 싶다. 단순히 수연의 비정상적인 예술행위를 막으려고만 했다면 경찰을 찾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승민은 끝까지 수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내려놓지는 못한다.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 쓰기 위해 피를 욕실에 뿌리고, 지문 범벅을 해놓는다. 침실에는 보란듯이 살인 도구들을 남겨둔다. 


그렇다면 수연은 왜 승민을 죽였을까. 승민은 이미 자기가 죄를 뒤집어 쓸 작정을 했고, 수연은 오랜 시간 그녀를 지켜보면서 승민이 수연을 위해서라면 누명을 쓰는 것 쯤은 얼마든지 할 것이란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는 승민의 마지막 흰 원피스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이 급박한 와중에 승민은 고급 옷가게에 들러 웨딩드레스 같은 흰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다. 마치 청혼 같다. 


수연을 향한 승민의 감정이 동정과 연민, 우정만은 아니란 걸 그녀들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승민은 수연을 향한 육체적 욕망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만약 승민이 그 욕망을 내보였다면, 수연은 진즉에 승민을 토막 살인해서 시체를 세상에 널어놨을 것이다. 수연은 자신과 사귄 순서대로 살인을 한다 했으니.. 승민이 육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은 건 확실하다.


그런데 이 마지막 순간 승민은 자신의 욕망을 내비쳤던 것이다. 그리고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 폭력(칼)이 승민의 손에 쥐어진 것이고..


<영화에서 수연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데, 승민을 향한 미소가 그나마 영화에서 수연이 보여준 가장 큰 미소이고, 가장 따뜻한 미소다. 또한 수연이 타인을 위해 눈물 흘리는 것은 오직 승민의 죽음에서 뿐이다.>


"다음 희생자는..."


김기연의 머리를 전달받은 조형사는(한석규) 수연의 다음 타겟이었다. 안전이라는 핑계로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 지내고, 그 남자(조형사) 에게 자기 상처를 내보이고,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키고...심지어 마지막 순간 프랑스로 같이 떠나자고 제안까지 하는데..누가 봐도 이건 유혹질이다. 이 어마어마한 미인이 이런 어마어마한 유혹질을 하는데, 넘어가지 않는 조형사. 어떻게 이럴수 있는가. 이는 그가 욕망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에서 조형사는 개인사로 곤경에 처했있었다. 의식없는 어머니. 무의미한 연명치료. 마침내 조형사는 제 손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결정했다. 어머니를 자신 곁에 붙들어두고 싶은 욕망은 과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인가. 아니다. 욕망이고, 집착일 뿐이다. 고아가 되고 싶지 않은 그의 이기적인 욕망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떠나 보냈다. 


영화의 마지막.. 탈상하여 상장까지 떼어낸 조형사의 차분한 모습은 그가 욕망과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걸 보여준다. 하여 조형사는 '나를 욕망하느냐' 는 심판자의 질문에 '아니다' 라고 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우리 앞에 나타날 그녀. 그녀의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은 과연 무엇일까.

"나를 욕망하느냐, 나에게 답을 해보라."(Tell me something)


P.S. 

1. 마지막 반전이 제일 중요한데, 무려 18년 동안 스포당하지 않았다니..

2. 영화가 설명을 좀 안 해준 부분들이 꽤 있는데, 런닝타임 때문인 듯. 15분 정도만 더 되었어도 좋았을 듯

3. 이 영화 평이 그저 그랬었는데, 시대를 너무 앞서간 영화이지 싶음. 나한텐 완전 명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