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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차이나타운(2014) : 흔들리는 딸들에게

by R.H. 2016. 7. 9.


<스포일러 주의!>


"곱배기"


일영이는 보통 여자 애와 다르다. 성인 남자에게 붙잡힌 여자 아이라면 살려달라고 놓아달라고 울고불고 사정사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영이는 탁이가 가방에 집어넣어와야 할 정도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반항하고, 저항하고, 물어뜯는 아이다. 버려졌을 때도 일영이는 울지 않는다.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있는 쏭이는 보통 여자 아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일영이는 이런 쏭이를 찾아서 데려가기까지 한다. 마가흥업까지 돌아가는 길에 얼마나 쏭이가 속을 썩였을지는 안봐도 훤하다. 배고프다, 목 마르다, 다리 아프다, 하면서 얼마나 징징대고 주저앉으려 했을까. 일영이는 이런 애를 끌고 돌아왔다. 누군가를 이끌어 갈 자질을 타고난 아이인 것이다. 


마가흥업에 도착한 직후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다. 자기를 버린 사람들에게 돌아가면, 자기를 다시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 눈치 봐야한다. 애원하고 매달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등의 구구절절한 비굴의 말을 늘어놓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일영이는 그런거 없다. 곱배기를 외칠 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할 줄 아는 인간이란 뜻이다. 강자 앞에서 눈치보고 쩔쩔매고 자신의 요구를 밝히지 못해 어물거리는 보통 여자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이 아이의 DNA에는 자신의 욕망을 관철하려는 의지와 투쟁의 유전자가 천성적으로 박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라해서 지치지 않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고 싶고, 누군가의 삶 속에 부드럽게 안주하고 싶어지는 피곤의 순간이 있다. 일영이가 석현에게 끌리면서 치마도 입어보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르는 그 순간이 바로 그 지점이다. 


이 순간은 사회생활에 지친 대다수 여성들이 갈림길에서 느끼는 감정과 일치한다. 사회생활이라는 이 피튀기는 생존경쟁에서 물러나, 나도 남들처럼 남편 그늘 밑에서 애키우고 살림하면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런 삶이 맞는 여자는 이렇게 살면 행복할 것이다. 어떤 삶이 더 낫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일영이 같은 애들은 삶의 결이 보통 여자들과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 그녀가 흔들리고 현혹되어 멈추어 '다른 여자들'과 같은 삶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면, 후회와 우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본성에 맞질 않는 삶인 것이다. 그래서 마우희는 이 순간, 일영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 순간 현실의 엄마들이 딸들을 결혼으로 내몰아 사회적 성장을 멈추게 하는 것과 달리, 마우희는 일영을 궁지로 내몰면서 성장을 독려한다. 마우희는 처음부터 일영이 어떤 DNA의 소유자인지 단박에 알아봤기 때문이다. 


"내가 널 왜 계속 데리고 있는거 같니? 너는 자라질 않거든. 자랄 생각도 없고."


<영화에서 일영이는 "알" 과 같은 공간에 두번 갇히는데, 한번은 캐리어 가방이고, 다른 한번은 자동차 트렁크다. 이때 그녀를 가두는 사람은 '탁' 이다. 이름도 일부러 이렇게 지은건가. 탁(을)깨고 나오라고.. 여튼. 어린 일영이 가방 속에서 빠져 나오는 건 일영이 혼자 힘으론 불가능했다. 이때는 아이의 나오고자 하는 의지와 엄마의 도움이 합쳐져야 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 차 트렁크에서 빠져 나오는 건 일영이 혼자 힘으로 해야 한다. 이때 일영이는 자신을 가둔 자(탁)를 죽인다.>


"할 거야, 말 거야" 라는 엄마의 질문에 "해보겠다" 고 일영이 답하자, 엄마는 그런 건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확실한 선택을 하고 그것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불순해지는 것, 거역하는 것, 피를 보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감당하는 것이다. 일영은 엄마의 말을 거역했기에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영이 겪은 이 모든 과정은 사실 처음부터 설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를 죽이는 것이 일영의 마지막 미션이었던 것이다. 일영은 엄마를 죽인 뒤에야 이 모든 걸 깨닫는다.


"이제는 니가 결정하는 거야."



P.S

창세기에서 신은 선악과를 절대 먹지 말라면서, 떡하니 에덴동산에 보이는 곳, 손이 닿는 곳에 두었다. 왜 그랬을까. 절대 먹으면 안되는 것이면, 아예 만들어 놓지 않으면 되는 건데.. 굳이 만들어야 한다면, 땅 속 보이지 않는 곳이나, 하늘 높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면 되었을텐데.. 


그런데 신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는 사건이 처음부터 신의 설계에 들어있었던 건 아닐까. 신을 거역하고, 신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아버지(신)가 원했던 창조의 마침표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들은 아버지(신)의 말을 거역한 뒤,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자유의지에 화들짝 놀라 숨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결정한 게 아니라며, 서로를 탓하고 책임지려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신을 거역한 뒤 스스로의 결정을 감내하는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것이 신의 설계였는지 아닌지는 일영이처럼 모든 것을 끝장내 버린뒤에나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마지막 미션을 완수할 때까지 이 지구라는 지옥에서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