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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2010) : 내가 나를 속인다

by R.H. 2016. 9. 24.


<스포일러 주의>


우리 뇌의 제1 목표는 서바이벌이다. 살아남은 다음에야 정의든 윤리든 뭐가 되었든, 더 높은 단계의 욕망을 추구할 수 있다.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뇌는 우리를 속인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왜곡하거나 지워버리고, 행복한 기억은 부풀려 놓는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작동이 안 되는 급박한 경우도 있다. 이땐 미쳐버린다. 미친다는 건 비상 착륙 장치 혹은 사이드 브레이크 같은 것이다. 제어가 안 되는 상황에서 박살나지 않고, 일단 살아남는 데 필요한 장치 말이다. 


테디가 미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가진 그가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선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신병원 의사는 이 기억을 악착같이 되돌려 놓으려 한다. 정신병을 치료하고 정상인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기억을 가지곤 도대체가 살 수가 없는 것인데. .결국 마지막에 테디가 미침을 선택한 이유다. 


우리 역시 자신을 끊임없이 속인다. 과거의 그 수많은 고통을 일일이 기억한다면 살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완벽하게 그 기억들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 뇌는 컴퓨터와 같아서 지운다 해도 흔적이 남고, 영화에서처럼 정신과 의사같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면, 지워진 데이터(기억)도 복구가 되는 것이다. 해서 우리는 그 기억들을 차곡차곡 끌어안고 산다.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들, 잘못된 선택, 어긋난 결정.. 두고두고 후회할 그 모든 순간들. 이 쓰레기 같은 기억과 감정들을 질질 끌고 가면서 삶을 버틴다. 성공이고 뭐고 간에 일단 여기서 살아남고 버티는 것도 힘겹다. 이 하찮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 면전에서 날아오는 공격, 보이지 않는데서 날아오는 공격들을 견뎌낸다. 이건 그냥 무의미한 자기 고문일 뿐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를 맴돌고, 정신은 너덜너덜해진다. 그래도 여튼 버틴다. 이 삶을.. 


일단 살아남는 다는 것,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을 끌어안은 채 아둥바둥 삶을 버틴다는 것., 그것도 미치지 않고 제정신 붙들고 삶을 버티는 것.. 전에는 몰랐다. 버티기만 해도 엄청난 것이 삶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