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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도희야(2014)-나하고 갈래?

by R.H. 2016. 2. 14.




  




<스포일러 주의>  



"이름이 뭐니?"


영화 속 그 누구도 도희를 도희라 부르지 않는다. 썅년, 씨x년, 썩을 년.. 이것이 이 소녀를 부르는 호칭이다. 헌데 새로 부임한 파출소 소장 영남은(배두나) 일진에게 얻어맞고 있는 도희를 구해주고, 소녀의 이름을 묻는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말했듯이,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소녀는 영남이 이름을 불러주자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된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된 것, 이들의 얽힘. 이렇게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 제목 역시 도희가 아닌 도희야 라고 이름을 불러주고 있다.)



"도희가 불쌍하면서도 말입니다. 뭔가 좀 느낌이 좋지 않은 것 같단 말입니다...꼭 어린 괴물같단 생각이 들때가 있단 말입니다."



계부와 할머니는 물론이고 경찰, 마을 사람 누구도 소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소녀를 도희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영남과 순박한 말단 순경 총각. 이렇게 단 두 사람 뿐인데,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도희의 핸드폰 단축번호 1번이 되어준 사람이라는 점이다. 적극적으로 도희를 도울 의지를 보여준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도희라고 이름을 불러준 순박한 순경 총각조차도 도희에게서 풍기는 기묘한 느낌을 불편해한다. 사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 역시 도희같은 애하고 얽히면 분명 말썽이 생길거라는 생각부터 떠올랐었다. 그런데 순간 아차 싶었다. 이것이 바로 마을 사람들이 보인 방관자적 태도였던 것이다.



경찰과 마을 사람 중에 도희가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데 그들은 용하(송새벽)의 폭력과 난동에 눈쌀 찌푸리면서도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나서지는 않았다. 술이 원수라느니, 작작 하고 그만 돌아가라느니.. 눈쌀 찌푸리는 것, 이것으로 그들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고, 용하의 폭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를 충분히 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도덕적으로 할 도리를 했다고 자위하는 것이다. 마치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의 박해 앞에서 손을 씻으며 내 양심과 도덕은 깨끗하다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하고 갈래?"



영남은 도희가 광적인 집착을 가진 위험한 아이라는 걸 안다. 도희가 계부를 덫에 걸리게 한 것 뿐만 아니라 할머니를 죽였다는 끔직한 사실도 안다. 할머니를 죽였나고 추궁하는 영남의 말에 도희는 눈물은 흘리면서도 부정하지 않았다. 이 무시무시한 현실. 세상은 동화에 나오는 이분법적 캐릭터가 있는 곳이 아니다. 피해자가 피해자이기만 한 것이 아닌 것이다. 



이 잔인한 진실 앞에 우리는 혐오감에 치를 떨며 체념해버리곤 한다. 남의 집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된통 당한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면 보따리 내놓으라한다는 오래된 속담은 진리에 가깝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이 "현실은 동화가 아니에요. 징글징글한 곳입니다. 포기하세요." 라는 메세지를 현실주의라는 이름하에 던져놓곤 한다.



그러나 영남은 도희의 손을 잡는다. 함께 나가자고 제안한다. 영남의 마지막 대사 "나하고 갈래?" 는 이 영화가 우리 모두에게 하는 제안이자 격려이다. 피해자에게는 일어나 나가자고, 방관자에게는 함께 손을 내밀자고.. 같이 가자고. 체념하지 말자고.




영화 OST


꿈결인가 네 목소리가 들린다

꿈결인가 바람엔가

물기가 묻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잠기고

찬 바다의 한기에 옷을 여미듯

파도에 달빛에 울음을 토하듯

외면 불가한 이끌림으로 

나는 기다렸는지 모른다. 너를


말을 잃은 네 목소리가 들린다

비명같은 외침이 모두 물러가게 한다

흩어진 목소리 바람의 몸짓으로 나를 휘감고

바다처럼 차가운 손은 내게 닿는다

물기기 묻어내려다 이내 잠긴다

빗나가기를 바라는 예감으로

나는 기다렸는지 모른다. 너를


바다에 잠긴 네 목소리가 들린다

파도에 묻힌 울음은 내 배를 파고들어 무너져라 내가슴을 울리고

내 입김과 붉은 입술의 숨결은 뜨겁게 나를 채운다


캄캄한 틈새마다 그 뜨거운 것이 흘러 나를 녹인다

내내 여기 서서 나는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