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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올드보이(2003) - 오늘도 무사히, 그게 니 죄니라

by R.H. 2013. 9. 24.




<스포일러 주의>


기억의 고통


"그냥 잊어버린거야. 왜. 남의 일이니까."


이우진이(유지태) 기억하는 것을 오대수는(최민식) 기억하지 못한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고통. 당한 사람은 평생을 간직하는 기억. 그런데 가해자는 기억조차 못한다. 되려 반문한다. "그게 그렇게 큰 죄야?" 가해자는 피해자를 향해 말한다. 과거 속에 갇혀 질척대는 사람이라고, 피해의식에 쩌든 사람이라고.. 어거지를 쓰기도 한다. 분명 그렇게 말해놓고도 그런 적 없다,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 이게 너의 첫번째 죄니라.



대충 사는 당신들에게 이르노니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 라고 하여 오대수란다. 그가 사는 방식이다. 우리 대부분이 사는 방식이다. 안일하게 오늘만 무사히 넘기고, 되는 대로 살고, 별 생각없이 '그냥' 남의 인생을 씨부리면서 사는 삶. 



하지만 이런 삶의 댓가 치고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무려 15년 동안이나 이유도 모른채 감금 당하고, 무시무시한 함정에 빠져 농락당하고, 자기 딸인지도 모르고 관계를 맺고.. 대충 산 게 이렇게 큰 벌을 받을 정도로 큰 죄인가?



큰 죄 맞다. 성경 기준으로 보면 말이다.






성경의 마태복음에는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주인은 종들에게 달란트를 나눠주고 떠났다가 돌아오는데, 달란트를 불려놓은 종들은 칭찬하지만, 달란트를 '무사히'  간직만 했던 종은 벌을 받는다.



"이 무익한 종을 어두운데로 내쫓으라.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태복음 25장 30절)



성경에서는 달란트(재능)를 살리지 못한 종은 어둠 속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대수가 당한 꼴이 바로 이 상황이다. 그렇다면 오대수의 재능은 무엇이었던가. 그는 타고난 말재간이 있었던 듯 하다. 영화 후반부의 기억을 더듬는 장면에서 수아는 오대수에게 '말을 그렇게 재미게 잘 한다며' 라고 하는데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대수는 이런 자신의 재능을 여자들 꼬시는데만 써먹으며 낭비해 버린다.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고, 되는대로 대충 산 죄, 이게 너의 두번째 죄니라.



게임판을 짜는 사람과 그 판에 말려드는 사람



"누나하고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좋다. 오대수가 입을 함부로 놀리고 기억도 못하고, 무사안일주의로 대충 산 죄가 있다 치자. 그렇다면 이우진이 누나와 저지른 행동은 무죄인가? 무죄다. 이번에도 성경기준으로 보면 말이다. 성경에서 근친간 섹스는 문제시 되지 않는다. 근친간 결혼은 하등 이상할 것 없고, 심지어 딸하고 근친상간한 롯조차도 '의인'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할 점은 이우진은 '다 알고도' 했다는 것이다. 오대수는 모르고 했다. 이우진은 계획하는 자다. 오대수는 계획없이 사는 자다. 그래서 이우진은 어마어마한 거부가 되었고, 오대수는 그저그런 월급쟁이로 살았다. 이우진의 삶에서 대충, 되는대로 라는 말은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게임판을 짜는 사람과 그 판에 말려드는 사람. 세상은 계획하는 자들의 것이다. 그리고 무계획적으로, 되는 대로 사는 오대수 같은 자들은 언제나 세상이라는 거대한 게임판에서 사냥꾼의 손과 덫에 걸려들 만반의 준비가 된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승자는 판을 짜는 사람이다.



하여 그런 줄 몰랐다, 일이 그렇게까지 커질거라 생각도 못했다. 그게 내 딸인지 몰랐다..는 식의 변명은 이 게임판에서 통하질 않는 것이다.



이 세상의 게임룰을 모르는 죄, 이게 너의 세번째 죄니라.



그리고 이 게임룰에 익숙해질때까지 그 고통은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