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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데이비드 게일 (The Life Of David Gale, 2003)

by R.H. 2010. 3. 27.



<주의! 반전 적힌 스포일러>

주장은 선명하고, 어조는 강경하다.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게 이 영화의 주장이다. 그 주장의 근거는 억울한 죽음을 만드는 시스템의 허점이다. 세상 모든 시스템은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적어도 억울함을 풀 기회는 가질 수 있다. 사형제의 문제는 바로 억울함을 풀 기회 자체를 아예 박탈한다는 것이다.

사형제 폐지 운동을 벌이는 데이비드 게일과 그의 동료들은 극단의 예를 통해, 사형제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극단의 예는 자신들이 만든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남게 되는 것은 왜일까? 영화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 무엇보다 핀트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한 번 보자.

사형제는 계산된 살인으로 법이 생명을 끊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콘스탄스는 계산된 자살을 하고, 그녀의 동료들은 이를 돕는다.(데이비드 게일 역시 자살한 거나 마찬가지다. 고의적으로 사형이 집행되도록 꾸민 것이니까.) 자살은 스스로를 살해하는 행위다. 사형이나 자살이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매한지다.
 
게다가 데이비드 게일과 콘스탄스가 순수한 신념만을 위해 목숨을 버린 것도 아니다. 그들은 각기 개인적인 절망 상태에 있었다. 콘스탄스는 불치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고, 데이비드는 억울한 성추행건으로 교수직을 잃고, 지역사회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아내에게는 이혼 당했다. 그들의 자살이 순수한 신념을 위한 희생이었다고 말하기도 곤란한 것이다.
 
게다가 콘스탄스의 자살을 돕는 더스틴과 데이비드 게일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자. 그녀의 죽음을 조용히 지켜만 보는 그들의 모습을.. 눈 앞에서 한 사람이 벌거벗고 수갑에 채워진 채 질식해 죽고 있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소름이 끼친다. 이들의 계획 자살에는 절망과 잔인의 냄새가 풍기고 있다.

영화가 찜찜했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에 동의는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방식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P.S. 콘스탄스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어지간한 관객은 이미 반전을 예상해 버렸을 것이다. 반전을 미리 알아버리는 건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