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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Lost 3시즌 : 줄리엣, 조용한 카리스마

by R.H. 2010. 1. 12.

 
<주의, 스포일러>
 
섬 밖에서 제약회사 연구직원이었던 줄리엣. 늦은 밤 약 좀 가져오려 들른 연구소에서 이 회사 사장인 전남편을 민망한 모습으로 만난다. 전남편이 연구실에 들른 이유는 여직원과 즐기기 위해서다. 여기서 안절부절 못해야 하는 사람은 전남편이다. 그런데 되려 줄리엣이 쩔쩔맨다. 당찬 여자라면, 한 마디 쏴 주고 나가겠지만, 줄리엣은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그것도 나갈 때 불 꺼달라는 전남편의 뻔뻔한 요구도 들어주면서...


이처럼 소심한 그녀에게 어느 날 찾아 온 리쳐드 알퍼트는 줄리엣에게 연구팀장을 이끌어 달라고 한다. 그런데 줄리엣은 전남편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라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당찬 여자라면, 전남편(회사 사장) 앞에서 담판 짓겠지만, 줄리엣은 전남편이 차에라도 치여 죽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는 푸념의 말만 한다. 못된 놈이 죽기를 바라지만, 말만 그럴 뿐 실제로는 그 사람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안절부절 못 사람들 있다. 줄리엣이 딱 그 짝이다. 줄리엣은 스스로 결단 내리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할 줄 아는 유형의 인간이다. 단호하게 맺고 끝는 것도 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 당당히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니다. 섬 밖에서의 그녀는 확실히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 역시 자신은 리더의 자질이 없다고 말한다.


이에 알퍼트는 전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내 버린다. 그것도 줄리엣이 원했던 방식으로.. 그리고 줄리엣을 다시 설득한다. 줄리엣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줄리엣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비범하고 특별한 권한을 가진 듯한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고,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일단은 호기심이 들 것이다. 이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고, 그 일이라는 게 뭔지도 궁금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특별함을 발휘해 보고 싶을 것이다. 줄리엣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그녀는 몇 달 뒤에 돌려 보내 주겠다는 그들의 말을 믿고 따라 나선다.


하지만 벤자민의 농간은 그녀를 섬에 묶어둔다. 그리고 이 교활한 인간을 상대하고 연구팀을 이끌면서, 줄리엣은 변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듯이, 그녀는 섬에서 냉정함과 과감함을 배운다. 섬 밖에서 지은 죄도 없으면서, 항상 조마조마해 하던 새가슴 줄리엣은 섬에서 총을 쏴야 할 땐 쏘고, 뒤통수 후려쳐야 할 때는 과감히 후려치는 대범한 사람으로 변한다. 로스트 캐릭터들은 섬에 들어와 무언가를 배우거나 깨닫는데, 줄리엣은 리더십을 배운 것이다.

그런데 줄리엣은 리더의 기본 자질인 결단력과 대범함에 더해 특유의 공감과 설득의 능력도 가지고 있다. 아나루시아의 리더십이 치켜 뜬 눈으로 명령하는 독재형이라면, 줄리엣은 마치 상대를 이해한다는 듯한 눈빛으로 '내 말을 들어주세요' 하는 듯이 말하는 설득형 리더십을 발휘한다. 게다가 줄리엣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상대를 다독이듯 말한다. 그러나 그 나긋나긋함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거부할 수 없는 단호함이 깃들여 있다. 그녀의 말을 꼭 들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줄리엣의 조용한 카리스마는 상당히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