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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Lost : 소이어, 독서와 생각

by R.H. 2010. 1. 15.
 

 

소이어의 과거를 압축해서 표현하는 문장은 "Every man for himself." 다. 각자 알아서 산다는 식의 사고를 가진 소이어.. 그는 이기주의자다. 남의 등 쳐먹고 사는 이기주의자 소이어는 이타심을 발휘해야 하는 리더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섬에 추락한 후 비행기 잔해 속에서 쓸 만한 물건들을 독차지하는 그는 자신 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그리고 틈만 나면, 독서다. 섬에서 살기 위해서는 사냥, 낚시, 과일 채취 등을 해야 한다. 이게 섬에서의 실용이다. 다른 사람들은 생존을 위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몸 움직일 생각은 안 하고, 한가로이 독서라니... 심지어 섬을 빠져나가는 뗏목을 만들 때도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옆에서 책이나 읽고 앉아있다.


그런데 사기꾼 밑바닥 인생인 소이어와 독서는 그닥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본인 입으로도 고등학교도 못 나온 놈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렇다면, 왜 이런 소이어에게 독서광의 이미지를 부여했을까?


사실 사기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남을 사기 치려면, 남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타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욕망을 찾아서 건드릴 줄도 알아야 한다. 게다가 거짓말을 하려면, 기억력도 좋아야 한다.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생각하는 능력과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남 등 쳐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능력들은 리더가 지녀야 하는 덕목이기도 하다. 리더나 사기꾼이나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한 뒤에 행동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사기꾼과 리더는 그 속성상 비슷하다. 저 훌륭한 자질들을 이타심을 가지고 발휘하면 리더가 되는 거고, 이기심을 가지고 사용하면 소이어처럼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물건이 책이다. 사기꾼 소이어에게 독서는 필수 과목인 것이다.


하지만 소이어가 뼈 속까지 악랄한 인간은 아니다. 단지 어린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진짜 소이어(로크 아버지)를 섬에서 죽임으로써, 자신 안의 찌끄러기를 씻어낸다. (3-19 에피) 케이트를 통해서는 "Live together, die alone." 이라는 공동체 의식도 배운다. (3-4 에피) 그리고 리더십과는 상관없지만, 5시즌에서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법도 배운다.
 

로스트 캐릭터들은 섬에 와서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거나, 무언가를 배우면서 성장한다. 소이어는 로스트 캐릭터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성장한 인물이다. 사기꾼이 리더로 변한 것이다.


그렇다면 섬에서 왜 독서하는 자의 리더쉽이 필요한 걸까? 위에서 말한 대로, 섬에서 독서는 먹고 사는 생존과는 별 상관 없는 비실용인데 말이다. 5시즌을 보면 안다. 잭의 밀어붙이기 식 리더십이 어떤 파국을 가져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그래서 소이어는 생각 없이 삽질한 잭을 비난한다. (5-9 에피)

리더는 생각없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 밀어 붙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리더의 생각 없는 행동은 얼마나 위험한가... 그래서 이 섬에서는 사냥을 하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실용적인 사람도 필요하지만, 책을 들고 있는 비실용적인 사람도 필요한 것이다. 차가운 머리로 생각하고, 작전을 계획하는 소이어의 리더십은 적을 코 앞에 둔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