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드리뷰/로스트

Lost : 디아더스 vs 달마 이니시어티브

by R.H. 2010. 1. 18.
 
<주의, 스포일러>

로스트 시청자 가운데 상당수가 디아더스와 달마 이니시어티브를 같은 그룹으로 오해하곤 하는데, 이는 벤이 원래 달마 일원이었다가 배신하고 디아더스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달마가 만든 스테이션과 각종 시설을 디아더스가 사용하면서 이런 오해가 생긴 듯. 하지만 달마는 디아더스를 끔찍이도 싫어해서 Hostile 라고 부를 정도다.


디아더스

디아더스와 언제나 함께하는 리챠드의 나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점을 볼 때, 디아더스는 섬의 태초부터 터를 잡고 사는 원주민인 듯 하다. 그들은 치유 능력이 있는 제이콥을 절대자로 여기고, 제이콥이 지명한 리더가 사람들을 통솔한다. 신에게 왕권을 부여 받았다고 주장하는 왕정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리더의 명령에 반발할 때, 제이콥의 명령 이라는 한 마디면, 소란 끝이다. 사람들은 제이콥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워 할 정도다. 섬에서 제이콥은 신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신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로스트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걸 꺼리는 느낌이다.)


텐트를 치고 섬을 돌아다니며 사는 디아더스는 정착촌을 일구지 않았다. 나중에 달마가 만들어 놓은 마을을 접수하면서, 그 마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들 스스로 정착촌을 만들지는 않았다. 말을 타고 다니고, 너저분한 의상을 걸치며, 오징어를 말려 놓는 모습 등등. 디아더스는 어딘지 모르게 원시적이다.


달마 이니시어티브

이 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2000년대에는 오세아닉 815, 70~80년대에는 달마, 50년대에는 미군, 그 전에는 블랙락호... 그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그룹들이 이 섬에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그룹 하나 평화로이 공존을 이루지는 못한다. 싸우고, 죽이고... 그나마 협정을 맺어 마을을 건설한 것이 달마다.

달마는 알바 한소라는 기업인이 후원하는 과학 연구 단체다. 이들은 디아더스와 달리 정착촌을 만들고, 과학 시설들 (달마 스테이션) 과 전자 방어벽을 건설했다. 디아더스가 원시적인 느낌이라면, 달마는 현대 문명 사회 느낌이다.

공동체 운용 체제도 디아더스와 다르다. 디아더스가 리더 말에 절대 복종하는 시스템인데 반해, 달마는 나름 민주적이다. 섬에서 달마 리더는 호레이스인데, 섬에서 일이 발생할 때면 중간급 리더들을 모아 토론하고, 토론으로 결론이 나지 않으면,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 호레이스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명령하는 것은 위기 상황이 아닌 이상 없다.

그런데 달마는 좀 특이하다. 달마 공동체는 리더, 과학자, 보안 담당, 정비공, 잡역부 등등으로 맡은 역할이 세분화 되어 있는데, 이들 모두 베이지색(혹은 남색) 작업복을 입는다. 리더라고 해서 더 좋은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요, 더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아니다. 리더나 잡역부나 입고, 먹고, 사는 게 똑같다. (단 과학자 닥터 쳉만 양복 바지를 입는다. 과학자 우대 정책인 듯.)

게다가 모든 물건에는 달마 마크가 찍혀있다. 즉, 달마 공동체에서 그 누구도 더 나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다. 모두가 평등하게 똑같은 물품을 지원 받는다. 그렇다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거나, 모든 직업군이 평등한 것은 아니다. 직업은 적성검사를 통해 일방적으로 배정받고, 각자 맡은 역할 이외에는 타영역에 관여하지 못하는 듯 하다.  

여튼 이들은 소규모 사회민주주의 체제 비슷한 것을 실현하고 있다. 그래서 신에게서 권력을 부여 받아 독단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디아더스와 그렇게도 으르렁거렸는지도 모른다. 이 두 그룹은 성격상 절대 타협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달마는 몰살 당한다.
 

섬, 사회의 축소판

남자 : Why'd we even bring this yahoo?
이레나 : Because we might need him.
남자 : For what? He didn't know the answer to the question.
이레나 : That doesn't mean He's not important.
남자 : What, you think he's a candidate?       -5시즌 마지막 에피 中-

아지라 비행기 추락 후 비행기 조종사 래피더스를 데리고 다니는 이레나 일행. 그 중 한 남자가 래피더스를 데리고 다니는 걸 불평하자, 이레나는 그가 필요하다고 한다. 저 남자는 래피더스가 후보라도 되냐고 묻는다. 이에 이레나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섬에서 선거라도 할 건가? 갑자기 웬 후보?

영화, 드라마, 소설 같은 이야기에서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은 현실 사회의 미니어쳐다. (우주선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SF도 마찬가지다.) 디아더스는 종교 색채가 강한 제정일치 사회의 미니어쳐고, 달마는 과학 색채가 강한 사회민주주의 공동체 미니어쳐다.

달마 몰살 이후 새로 등장한 오세아닉과 아지라 항공 추락자들.. 이들은 이 섬에 정착할 것인가? 정착한다면, 어떤 시스템을 가진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섬, 누군가의 뇌 확장 판

디아더스    달마
종교         과학
믿음         논리
운명         자유의지
감성         이성
....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섬이 누군가의 꿈 속 공간이라고..
 
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이루어져 있다. 디아더스와 달마처럼... 한쪽 뇌는 감성을 다른 한쪽 뇌는 논리를 담당한다. 인간 자체가 우주의 축소 모형이라 하니, 섬 자체가 인간의 뇌의 확장 판이라고 한들 이상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게 누군가의 꿈 속 아니냐, 하는 논란은 로스트 시작부터 있어왔다. 로스트에서 반복되는 눈 뜨는 장면이 단순히 꿈에서 깨어나라는 말일 수도 있고, 인간의 각성을 이야기하는 걸 수도 있다.

여튼, 이제 결말을 내 줄 마지막 6시즌만이 남았다.
 
섬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도 있고, 섬이라는 꿈 속에서 깨어날 수도 있다.(혹은 각성) 또는, 이 모든 게 섬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실험(혹은 정신병원) 이었을 수도 있고, 주인공들이 시간을 되돌려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결말 옵션은 수십가지도 더 될 듯.

그런데 사실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이미 다 한 듯 하다. 어차피 이야기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거니까, 결말이 어떤 식으로 나든, 할 말은 다 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