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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5시즌 마지막회 (1) : 네 안의 신을 죽여라

by R.H. 2009. 9. 7.


<결말 적힌 강력 스포! 과다한 해석일 가능성 있음>


 

벤 : Why do you want me to kill Jacob, John?
로크 : Because... Despite your loyal service to this island, you got cancer. You had to watch your own daughter gunned down right in front of you. And your reward for those sacrifices? You were banished. And you did all this In the name of a man you'd never even met. So the question is, Ben, why the hell wouldn't you wanna kill Jacob?

벤 : 왜 나더러 제이콥을 죽이라고 하는 겁니까?
로크 : 왜냐면  당신의 섬에 대한 지극한 충성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암에 걸렸죠. 당신 눈 앞에서 딸이 총에 맞아 죽는 것도 봐야만 했고요. 헌데 이런 희생의 대가가 뭐였죠? 당신은 추방당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만나 본 적조차 없는 한 남자의 이름으로, 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왜 제이콥을 죽이길 원치 않겠습니까?

섬의 리더였던 벤은 그 동안 끔찍한 일을 벌여왔고, 본인 역시도 끔찍한 일을 당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에 대한 시청자의 감정은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행동들이 맘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 가능했다. 그는 섬의 리더였고, 그의 무자비한 행동들은 벤 자신만의 탐욕과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섬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무자비한 행동들을 합리화시킨 것이 바로, '섬을 위해서' 혹은 '제이콥이 원하는 것' 이라는 대의 명분이었다.


헌데, 그는  제이콥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제이콥의 실체를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제이콥이 원하는 것이라는 대의 명분 하나로 사람들을 부려먹었다. 신의 이름 하에, 국가를 위한다는 대의 명분하에, 역사에서 지도자들이 국민들을 호도해 온 것과 너무도 비슷하다. 그리고 벤처럼 과연 그 지도자들 역시 신을 본 적이나 있을까?


벤, 드디어 제이콥을 만나다.


제이콥은 섬에서 엄청난 존재다. 앞뒤 정황으로 볼 때, 섬의 태초부터 존재한 영생불사의 존재이며, 치유의 능력이 있는 신같은 존재다. 더군다나 섬 사람들은 제이콥이라는 단어조차 입 밖에 내는 것을 두려워 할 정도로, 섬에서 제이콥은 절대자다.


그런데, 인간에 불과한 벤이 신과 같은 제이콥을 죽였다. 딸랑 단검 하나로. 그것도 치유의 능력이 있는 제이콥이 칼에 두어 번 찔리고는 사망. 이게 말이 되냐는... 잘 만들어진 드라마에서 말이 안되는 장면은 상징을 포함한 것이다.

 

이번 5시즌에서 벤이 제이콥에게 칼을 들이미는 장면은 3시즌 19에피(The Brig) 에서 아버지 죽이기 장면의 확장판이다. 3-19에피에서는 벤이 로크의 손에 단검을 쥐어주고, '아버지를 죽이라' 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로크가 벤의 손에 단검을 쥐어주고는 '제이콥(하나님 아버지) 을 죽여라' 고 말한다. 상당히 도발적이고, 반종교적이다. 


[3-19 에서는 벤이 로크를 자극한다. 헌데, 이번에는 반대로 로크가 벤에게 칼을 쥐어주고 그를 자극한다.]

 

신이 있다면,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당신은 현재 아버지일 수도 있고, 미래에 아버지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들이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는가? 그저 아버지 말에만 복종하고, 순종하는 아들을 원하는가?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쪼르록 아버지 앞에 달려와 엎드려 울며 '아버지, 도와주세요. 제가 너무 힘들어서 못살겠습니다.' 라고 징징대는 나약한 아들을 원하는가? 아니면, 아버지에게 때론 바락바락 대들지언정, 주체적인 힘으로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꿰차 나가는 당당한 아들을 원하는가?

 

진정 제대로 된 아버지라면, 아버지와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아니 아버지를 뛰어넘는 강인한 아들을 원할 것이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기를 바라듯, 진정한 아버지라면 자식이 자신을 뛰어 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역사에서 얼마나 수많은 지도자들이 신의 이름으로 악행을 저질렀던가. 그리고 수많은 인간들은 본 적도 없는 신 앞에 엎드려 울며, 얼마나 노예처럼 비굴하게 굴었던가. 과연, 신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라면, 엎드린 자세로 굽신굽신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종(노예) 이 되길 바랄까? 아니면, 신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주체적인 아들이 되길 바랄까? 더 이상 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속여 노예가 될 것을 강요하지 말라. 더이상 당신들의 추함을 감추기 위해, 나라를 위한다는 혹은, 사회 안정을 위한다는 논리를 악용하지 말라.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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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이콥이 진정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현시점에선 판단 보류다. 제이콥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로스트 시작 이래 5년만인데, 그나마도 마지막 회에 나타났다. 지금 상황에서 제이콥의 진짜 의도에 대해 확정해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추후에 제이콥과 로크의 실체가 확실하게 드러나면, 포스트의 내용을 수정, 혹은 재 작성 하기로 하겠다.

 

더불어, 로크의 현존재가 무엇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벤이 제이콥의 가슴에 칼을 꼽는 장면에 대한 해석은 수십 가지로 다르게 해석 될 수도 있다. 성경에서 뱀의 꼬임에 넘어간 아담과 이브의 신 배반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마지막 시험으로 해석 할 수도 있다. 혹은, 인간의 자율적 선택의 가능성에 대한 시험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You have a choice. You can do what he asked, or you can go"

[넌 선택권이 있어. 그(로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갈 수도 있어.]

 

벤자민 : What about me?

제이콥 : What about you?

 

추가로, 위의 장면에서 제이콥은 벤자민의 존재를 상당히 무시하는데, 이는 성경에서 제이콥의 막내 아들 벤자민이 존재감 없이 묘사되는 것과 유사하다. 심심하신 분은 벤자민 : 2인자의 비애 읽어보시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