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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카니발

Carnivale 2-3 Ingram, TX (2) 길 위의 가난한 자들

by R.H. 2009. 8. 14.

 

저스틴 크로우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거침없이 앞으로 내달리는 것과 달리, 벤자민 호킨스는 아직도 길 위를 헤매고 있다. 벤자민은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보이는 작은 힌트들을 따라 걷는다. 뉴멕시코의 템플 기사단 교회에서 들은 "케리건 신부" 라는 이름, 그리고 케리건 신부에게서 들은 "노파(Crone) ". 이제 벤자민은 노파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길 위에서 만난 노파
 
벤자민이 길 위를 헤맬 때면, 언제나 '낮은 곳' 에 있는 절박한 자들을 만난다. 길 위를 달리는 그의 트럭을 가로 막은 한 노인. 벤은 그에게 '노파' 가 사는 집을 묻는다. 그리고 길을 다시 재촉하려는 벤자민을 붙들고 늘어지는 이 노인. 그런데,
 
She's abnormal. A retard. But she don't complain. Won't tell nobody. Back of your truck for $2. She's tight.
저 애는 정신 지체아입니다. 하지만, 불평하지 않아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2달러를 내고, 트럭 뒤에서 하면 됩니다.
 
 


 
저 늙은이는 자신의 어린 딸, 그것도 정신 지체아인 아이를 단 몇 푼에 매춘시키려 한다.
놀란 벤자민은 뒷걸음 치고, 노파의 멱살을 잡는다. 그러나,
 
노파의 굽은 등과 듬성듬성 윤기 없는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은 그가 그 동안 살아온 세월의 고통이 아로새겨 있다. 언제 세수하였는지도 모를 만큼 더러운 노파의 얼굴. 그의 떨리는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이고, 그 눈물에는 노인의 슬픔이 고인다. 이것이 과연 누구의 죄이런가, 이 비참한 광경이... 벤자민은 노파의 주머니에 1달러 지폐를 쑤셔 넣어준다.
 
길 위에서 만난 거지패
 
노파(Crone) 가 산다는 곳에 다다른 벤자민 호킨스. 이 곳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음산함이 가득 찬 이 곳, 더러움과 기괴함이 뒤섞인 이 기분 나쁜 장소는 거지들의 소굴이다.
 
그리고, 갑자기 들이닥친 이 더러운 장소의 주인들은 벤자민의 옷을 벗기고, 채찍질을 하며, 그가 가진 소유물을 강탈한 뒤, 벤자민을 산 채로 땅에 묻으려 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간 벤자민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은 아버지의 이니셜인 H.S. 가 새겨진 장식품이다.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드라마 카니발은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이다. 동화, 소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가난한 자들의 모습은 대부분 소박하고, 선량하기 그지없다. 이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인 환타지다. 카니발에서 그려지는 노파와 거지패들 처럼, 현실의 그들은 그악스럽고, 잔인하며, 비윤리적이다. 하지만, 벤자민이 구원해야 하는 자들은 바로 이들이다. '낮은 곳' 에 있는 이 견디기 힘든 인간들을 이해하고, 구원하는 것이 그의 숙명이다. 절대 악을 상대하는 것보다 100만 배 더 어려운 이것.
 
얼마나 많은 현자들이 이들의 본성에 절망하였던가. 얼마나 많은 선인들이 이들의 어리석음을 보며, 가려던 길의 방향을 바꾸어 버렸던가. 구세주 예수를 발가벗겨,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은 바로 예수가 구원하고자 했던 '낮은 곳' 에 있던 자들이었으니, 드라마 속의 구원자 벤자민이 걸어야 하는 길은 바로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