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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카니발

Carnivale 2-12 New Canaan,CA : 마지막회

by R.H. 2009. 8. 14.
 
<주의, 결말 포함된 강력 스포일러 포함>

 


 








  
 
뒤엉킨 선과 악
 
카니발의 기본 구도는 선과 악의 대결이다. 그리고 이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다. 선과 악이라는 흑백 논리는 매우 단순하기에 가장 인기있는 구도라는 말이다. 하지만, 카니발이 이러한 단순함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 드라마에서 선과 악은 서로 뒤엉켜 있으며, 누가 진짜 '선' 인지 누가 진짜 '악' 인지 모호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벤자민에게 능력을 전수하는 이는 저스틴의 아버지이고, 저스틴에게 능력을 넘겨주는 인물은 벤자민의 아버지라는 점만 봐도 그러하다. 즉, 벤은 선이지만 그의 아버지와 조상은 악이었고, 저스틴은 악이지만 그의 아버지(매니져)는 선이었다.

역사의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자기 조상의 피에 얽매여 왔다. 즉, 내 아비가 귀족이면 나는 자연스레 귀족이 되는 것이고, 내 아비가 노예이면 나는 자연스레 노예가 되는 구조였다. 때문에, 역사에서 수많은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얼마나 위대하였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수가 어느 가문 출신이었는지를 마태복음 첫 장에서 지루하게 설명되어 있는 것 역시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우리가 학창시절 배운 용비어천가에는 듣도 보도 못한 태조 이성계의 조상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카니발에서는 이처럼 대대손손 내려오는 피의 전수가 없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들에게 사고의 전환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상하 질서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우리는 지도자의 출신과 배경을 보고자 하는 악습관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또한, 겉으로 음란하고 퇴폐적인 유랑극단 카니발과 보잘 것 없는 소년 벤자민이 선의 세력이고, 겉으로 보기에 경건한 교회와 저스틴이 실제로는 음란한 악의 세력이라는 설정 역시도 선과 악이 뒤엉켜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는 악의 세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교회 역시 저스틴에게 속아 이용당한 것이다. 실제로 저스틴에게 가장 분노한 이는 진실한 성직자인 노만 목사였다. 사실 성경에서도 저스틴 같은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가 누누이 언급된다. 우리 주위에도 널려 있는 저스틴과 같은 자들.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두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신의 이름을 팔아 제 이익을 챙기는데 여념 없는 탐욕스러운 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 종교의 경건함과 신성함을 제 멋대로 훔쳐 쓰는 교활한 이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
 
여하튼, 조상 대대로 그 '피' 의 성격을 물려받는 이야기 (아버지의 이름으로, 가문의 영광을 위해, 신화 속의 영웅들이 신들의 사생아라는 식의 설정 등등) 그리고, 겉모습으로 판단되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등의 이야기는 그 주제가 단순 명료하다.(동화 속에서 착한 신데렐라와 콩쥐는 미녀이고, 못된 계모와 팥쥐는 추녀인 것이 대표적인 예)
 
그런데, 카니발에서는 이런 식의 태생(피)으로 얻는 정당성이라는 이야기 구조와 겉모습으로 명확하게 구분 되는 선과 악이라는 단순 논리를 탈피하고 있다. 한마디로 카니발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보편적 이야기를 큰 뼈대로 삼고 있으면서도 이야기를 단순하게 끌고 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승전결

 
여하튼, 이 상반된 두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세력들의 이야기가 각각 교체되면서 진행되는데, 이야기가 진행돼감에 따라 이 두 인물간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종국에는 한 지점으로 모이는 구성 방식이다.
 
기 : 길을 나서다. (상실과 좌절) 
 
드라마 도입부에서 이 두 인물은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 버리는 상실의 경험을 각각 한다. 벤은 어머니의 죽음을, 저스틴은 자신의 교회가 불타 사라지는 경험을 한 것. 이러한 거대한 상실은 그들 인생의 변곡점이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안주하던 일상의 장소를 벗어나 길 위를 걷기 시작한다.
 
승 : 길 위를 걷다. (방황과 고립)
 
길 위의 방황은 바로 그들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 시기이자, 그 내면의 열기를 외적으로 분출하기 위한 응축의 시간이다. 그들이 정처 없이 길 위를 터벅터벅 걷는 시간은 자신을 들여다 보는 집중의 시간인 것이다. 상실과 좌절, 방황과 고립,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자각과 성장. 이는 세상의 리더가 될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에 반드시 가져야 하는 시간이다.
 
전 : 길 위에서 깨닫다. (자각과 성장)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저스틴과 벤자민은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저스틴은 자신 안의 악에 굴복하고, 스스로를 '악' 이라고 규정한다. 반면에, 벤자민은 자신 안의 '선' 을 발현한다. 이전의 그는 자신이 가진 치유의 능력을 두려워하여 이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벤자민은 길 위를 걷는 과정 속에서 올바른 자각과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결 : 길의 끝에서 충돌하다. (대결)
 
드라마의 후반부는 이처럼 먼 대척점에서 출발한 저스틴과 벤자민은 드디어 한 지점으로 모이는 것인데, 그곳은 바로 이번 에피의 제목인 뉴가나안이다. 그리고 드라마의 시작에서 벤자민이 반복적으로 꾸던 이상한 꿈은 이 곳 뉴가나안에서 결국 현실이 된다. 즉, 알 수 없는 이상한 꿈이 무엇이었지, 벤자민의 꿈 속에 나타난 남자가 누구였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리고 벤자민과 저스틴이 각각 걸었던 길이 끝나는 이 곳에서 선과 악은 거대한 충돌을 맞이하게 된다.
 
이처럼 드라마 초반에 흩어져 있던 이야기의 조각들은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 윤곽을 드러내고, 마지막 에피에서 이야기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면서 이야기가 완성되는 완벽한 구성이다.
 
이로써 카니발 2시즌은 종결이다. (당초 6시즌을 계획한 드라마인데, 두 시즌을 한 쌍으로  한 권 완성본이라고 한다. 즉, 책으로 말하면 1,2시즌=상권, 3,4시즌=중권, 5,6시즌=하권 으로 구성. 따라서 드라마가 조기종영이어서 스토리는 완결이 나지 안았지만, 1,2시즌을 묶는 구성상으로는 매듭을 지어준 것.)
 
소피는 왜?
 
벤자민의 단검에 숨을 거둔 저스틴. 그런데 그의 딸 소피가 그를 소생시킨다. 좀 의아하다. 왜 소피는 저스틴을 살려냈을까? 소피는 누누이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면 죽여버리겠노라고 공언 할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뼈 속 깊이 사무쳐 있는데 말이다.
 
이전 리뷰에서도 밝혔듯이, 카니발에서 완전한 능력을 전수받기 위해서는 자식 세대가  아버지 세대를 죽여야 한다. 즉, 소피가 다음 세대 악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녀 손으로 아버지 저스틴을 죽이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회에서 그녀가 저스틴을 소생시킨 이유는 저스틴으로부터 완전한 능력을 전수받기 위해 일시적으로 살려준 것 아닌가 추측해 본다. (뭐, 드라마가 조기 종결되어 이런 추측이 무의미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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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빠져있던 드라마인데, 이렇게 리뷰를 종결하니 시원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