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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카니발

Carnivale 1-8 Lonnigan, Texas : 낮은 길

by R.H. 2009. 8. 13.

 

벤 호킨스가 길 위에서 만나는 가난한 자들

 

돈 몇 푼에 자신의 딸을 유랑극단에 파는 아버지
자신 역시 괴물(freak) 같이 생겼으면서 다른 이를 괴물 같다고 경멸하는 인간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음에도 고마움은 커녕 현상금을 받기 위해 고발하는 인간

 

극심한 가난과 빈곤은 인간의 노골적인 추잡함을 드러내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친 딸을 파는 아버지, 그가 조금만 여유가 있었다 해도 그런 무자비한 선택을 죄의식 없이 자행했을까? 사회제도(복지)로 이 아버지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면 어떠했을까? 그래도 이 아버지가 아무 표정 없이 친 딸을 낯선 유랑극단에 팔아버렸을까?

 

백색증을 앓고 있는 정비소의 저 남자, 그는 평생 주변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괴상하다는 경멸과 모욕을 들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열등감으로 가득차 있고, 열등감은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며, 무기력한 감정은 인간을 분노케 한다. 그는 자신이 겪은 차별과 이에 따른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표출하고 있다. 자신 역시 기괴하게 생겼으면서, 다른 기괴하게 생긴 자를 똑같은 방식으로 경멸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평소에 사회가 저 남자처럼 소외 받는 이를 감싸는 노력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최소한 법률로라도 차별을 금지하게 하는 조항이라도 있어, 기댈 곳이 있다는, 마지막으로 호소할 곳이라도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면 어떠했을까?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려고 드는 마음까지는 완전히 없앨 수 없지만, 적어도 거기서 파생하는 부정적 감정의 정도를 누그러뜨릴 수 있지는 않았을까?

 

자동차 타이어 하나 살 돈이 없어, 구걸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저 남자, 그리고 그에 딸린 수많은 식구들. 그에게 새 타이어를 사고, 식구들을 부양할 최소한의 돈만이라도 있었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자신에게 도움과 자비를 베푼 자를 그 자리에서 배신하는 행동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했을까?

 

인간에게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어야 예의와 염치를 아는 법이다. 장애인, 남다른 병을 앓는 사람, 극빈자에 대한 최소한의 복지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 누가 과연 저 가난한 민중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들이 사회에서 받은 것은 차별과 모욕, 멸시뿐인 것을... 그들은 사회에서 인간답게 행동하는 법을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사회가 준 것이 없으니 저들은 아무런 죄의식도 염치도 없이 인간답지 못한 비천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최대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 복지예산은 대폭 줄이는 2009년이 답답하기 그지없다.)

 

 

"높은 길" 과 "낮은 길" 의 갈림길에서

 

벤자민 호킨스는 갈림길에서의 HI LANE(높은 길) 과  LO LANE(낮은 길) 이라는 표지판을 마주한다.

 

우리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항상 "높은 곳" 을 향하여 나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다. "높은 곳" 에 이르기 위해 공부하고, 일을 한다. 하지만 과연 어느 길이 옳은 길인가?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답은 "낮은 길" 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에 들어서는 것을 망설이고 주저한다. 그리고 들어섰다가도 흠칫 놀라 나와버린다. "낮은 길" 은 척박할 뿐만 아니라 진저리 나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혹은 확신이 서질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낮은 곳" 에 있는 가난한 자들의 모습은 위와 같다. 자신의 딸을 돈 몇 푼에 팔고, 자신 역시 차별 받는 입장이면서,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차별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 "낮은 곳" 으로의 길은 척박한 것만이 아니라, 몸서리치게 혐오스러운 인간의 천한 본성을 확인하면서 걸어야 하는 길이다.

 

하지만 "높은 길" 은 교활한 놈이 파놓은 함정이다. 그 길로 들어서면 오히려 수고스럽게 길을 더 돌아야 한다. 근데 이를 어찌한다. "높은 길" 이 함정이라는 것은 그 길에 한참 들어선 뒤에나 알 수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