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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고전

헌화가 (獻花歌)

by R.H. 2009. 12. 4.


헌화가(獻花歌)


紫布岩乎 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 兮不喩慙 兮伊賜等
花 兮折叱可獻乎理音如


양주동 해독

붉은색(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으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김완진 해독

자주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강릉 태수로 부임을 가는 순정공과 그의 아내 수로 부인. 그녀는 절세 미인이다. 부임 길에 잠시 멈추어 휴식을 취하던 중, 수로 부인은 절벽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누가 이를 꺾어주겠냐고...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절벽이 심하게 위험했던 모양이다. 이때 소를 끌고 가던 한 노인이 절벽에 올라 꽃을 꺾어 그녀에게 바친다. 그리고 이 시도 바친다. 여기까지가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 다음은 본인의 상상이다.

과연 노인이 노인 맞을까? 무슨 말이냐고?? 양이나 소를 치는 사람은 대체로 어린 소년이나 청년이다. 목동이라는 말에도 나타나듯이 말이다. 그리고 견우 직녀의 사랑 이야기에서 견우도 소를 모는 청년이다.

헌화가를 지어 올린 사람은 노인이 아니라 견우와 같은 젊은이 아니었을까? 소를 모는 사람이라는 데서 나타나듯이 그는 가난하고 사회적 신분도 보잘 것 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노인이 어떻게 그 위험한 절벽에 기어오르겠는가? 아무리 꽃이 탐나도 그렇지 위험천만하게 노인이 절벽에 오르는 걸 수로부인이 말리지도 않고 멀뚱히 처다만 본다는 것도 이상하고.. 게다가 수줍고 부끄러워 하는 걸 보면, 젊은이가 맞는 듯 하다. 세상 풍파 겪을 만큼 겪은 노인네가 수줍어 한다는 건 당췌 상상이 안 가는 일이다.
 
그런데 작자가 노인이라고 칭한 것은 그가 노인처럼 지혜롭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멋진 즉흥시를 지어 올릴 수 있는 재능 있는 문학 청년인 것이다. 즉, 소를 몬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나이 어린 청년이라는 의미고, 노인이라는 말은 그의 지혜 혹은 글재주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절벽에 오를 수 있는 젊은 몸과 재기 발랄한 글재주 뿐인 청년. 그런데 수로부인은 사회적 지위가 높다. 무엇보다도 결혼한 여자다. 청년의 젊은 몸은 꽃을 가져오고, 그의 글재주는 시를 만들어 그녀에게 바친다.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꽃과 시를 그녀에게 바치고 소를 다시 몰고 가는 청년... 홀연히 나타났다 시 한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는 수줍은 많은 무명 시인의 뒷모습을 그녀는 찬찬히 지켜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헌화가를 지은 사람을 청년으로 생각해 본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상상이다. 시험 답안지에 "헌화가 : 아름다운 연상의 유부녀에게 청년이 지어 올린 사랑의 시" 라고 쓰면 절대 안 되는 겁니다.
 
그나저나 다가갈 수 없고, 다가가서도 안 되는 아름다운 유부녀를 동경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마르지 않는 이야기 소재인 듯. 근데 여기서 유부녀를 마음에 품는 것은 어린 청년이어야 좀 그림이 된다. 솔직히 학교 다닐 때, 헌화가 읽고는 노인네가 주책맞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에 오르는 노인네를 말리지도 않는 수로 부인도 보기 안 좋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노인을 청년으로 바꾸고 다시 시를 읽으면, 그림이 된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