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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고전

소크라테스 (1) : 악법도 법이다???

by R.H. 2010. 4. 14.

흔히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 라며 독배를 받았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몰상식한 소리다. 소크라테스는 저 말을 하지도 않았다. 저 말의 원문이라고 알려진 "Dura lex, sed lex" 는 그리스어도 아니다. 라틴어다. 여기서부터 뭔가 어긋난 게 느껴지지 않는가. 게다가 영어로는 "Law is harsh, but [it is] law." 이다. 직역하면, "법은 엄하지만, 법이다.", 라는 뜻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 윤리 교과서에도 저 말이 버젓이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면, 교과서도 100% 믿을 건 못 된다. 어쩌면, 내가 주입식으로 교육받은 것 중에 상당히 많은 것들이 이처럼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다가 “엄하다” 는 단어가 어떻게 “악하다” 는 뜻으로 왜곡 번역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몰상식함이 상식으로 변하고, 대단한 권위까지 얻게 되었지는 <번역의 빈곤이 낳은 비극적 헤프닝, 김주일> 라는 글을 참고 하시라.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순순히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직접 변론한 <소크라테스의 변명> 과 탈옥을 권유하는 친구의 요청을 거부하는 장면이 묘사된 <크리톤> 을 통해 한 번 살펴보자. (<소크라테스의 변명> 과 <크리톤> 의 저자는 플라톤이다. 소크라테스는 본인이 직접 쓴 책을 남기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법률은 다음과 같이 말할 걸세,
'...당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양육하고 교육시켰으며 당신과 다른 모든 시민에게 우리가 당연히 주어야 할 재산권을 주었을 뿐 아니라, 우리는 모든 아테네 시민에게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 국정을 알게 되고 법률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싫어진다면 그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재산을 갖고 가도 좋다고 선언했고, 그런한 자유를 아테네 시민에게 부여했네. 어떠한 법률도 그들을 금지시키거나 방해하지는 않네. 우리들이나 도시를 떠나 식민지나 다른 도시로 이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그가 좋아하는 곳으로 그의 재산을 갖고 갈 수 잇네. 그러나 우리가 재판을 하고, 국가를 다스리는 방식을 경험한 자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는 우리가 그에게 명령하는 바를 행하겠다는 사실상의 계약을 맺은 것과 같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사람이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은 경우 삼중의 불의를 저지르게 된다고 주장하네. 첫째는 우리를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그의 어버이에게 복종하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이며, 둘째는 우리는 그에게 교육을 베푼 자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그는 우리의 명령에 마땅히 따르겠다고 우리와 약속했기 때문이네. 그런데 그는 우리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명령이 정다하지 못함을 우리들에게 설득하지도 않았네. 곧 우리는 무조건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거나 우리를 설득하는 이자택일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톤 中>>   *여기서 "우리" 라 함은 "법" 을 의미함.

 
혹자는 <크리톤> 에 나와 있는 위 문단에서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억지로 유추하기도 한다.

국가로부터 얻은 혜택이 많으니 국가의 명령이 설령 불의한 것일지라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크리톤> 의 앞뒤 정황은 무시한 해석이다. 저 말 이전에 소크라테스는 악은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전제로 한다. 또한, 약속과 동의를 파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국가의 부당한 명령을 단호히 거부한 적이 있음을 법정에서 당당하게 밝혔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과두제 (30명이 공포정치를 하던 독재 정부 시대) 밑에서 그들은 나와 다른 네 사람을 원형건물로 소환하여 살라미스 사람 레온을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사형에 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그들의 죄에 연루시키기 위한 음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때에 나는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나는 죽음을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내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유일한 일은 부정과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저 압제적인 정권의 강력한 힘도 나를 위협해서 의롭지 않은 일을 시키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원형건물에서 나왔을 때 다른 네 사람은 살라미스로 가서 레온을 데리고 왔지만, 나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직후에 정권이 붕괴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일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中>>  *여기서 "나" 는 소크라테스 자신을 말함.


즉,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명령이라 해서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되려 그 명령이 의롭지 않다면, 죽음을 무릎쓰고라도 거부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소크라테스 자신은 독배를 마시라는 국가의 부당한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일까? 이는 다음 포스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