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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고전

모죽지랑가 (慕竹旨郞歌)

by R.H. 2009. 12. 9.

去隱春皆林米
毛冬居叱哭屋尸以憂音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貌史年數就音墮支行齊
目煙廻於尸七史伊衣
逢烏支惡知作乎下是
郞也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삼국유사>-

<양주동 역>

간 봄을 그리워함에
모든 것이 서러워 시름하는구나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 지으려고 하는구나
눈 깜박할 사이에
만나 뵈올 기회를 지으리이다.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에,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인들 있으리이까.

<김완진 역>

지나간 봄 돌아오지 못하니
살아 계시지 못하여 우올 이 시름.
전각(殿閣)을 밝히오신
모습이 해가 갈수록 헐어 가도다.
눈의 돌음 없이 저를
만나보기 어찌 이루리.
郞 그리는 마음의 모습이 가는 길
다복 굴헝에서 잘 밤 있으리.



<주의, 본인의 상상이 제멋대로 덧붙여진 글임>

"득오" 라는 낭도가 "죽지" 라는 화랑이 죽은 뒤 그를 추모하는 노래.

득오는 신라 관등 9급에 해당하는 급간이라는 지위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오늘날 9급 공무원으로 생각하면 안 되고, 중간 관리 정도로 봐야 한다. 신라가 17관등제를 하고 있었다는 걸 봤을 때 말이다. 그리고 유명한 화랑 관창 역시 사후 급간의 지위를 얻었다고 하니, 말단 관등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또한 진성골과 6두품 이상인 자만이 오를 수 있는 관직이었으므로 10급 관직과의 격차 역시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화랑은 청소년 단체로 오늘날 보이스카웃이 이와 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요즘도 스카웃은 "있는 집" 애들이 주로 하니까, 뭐 여러모로 비슷한 듯. 그리고 화랑은 보이스카웃 대장 정도이고 낭도는 보이스카웃 대원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듯. 그러니까 죽지와 득오는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 이 정도의 관계라 보면 될 듯하다.

전해오는 이야기를 한 번 보자. 화랑도에 명부를 두고 있던 득오는 갑자기 열흘 동안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죽지는 득오의 어머니에게 득오의 안부를 묻는다. 근데 알고 보니 득오가 부산의 창고지기로 임명되어 갔다는 것이다. 이를 임몀한 사람은 익선이라는 6급 관리(아간) 라고 한다. 이에 죽지는 득오를 찾아가 위로한다. 그리고 익선에게 휴가를 좀 내줄 것을 요청하지만, 익선은 이를 거부한다. 그 때 간진이라는 사람이 조 30석을 익선에게 보내 휴가를 내 줄 것을 요청했는데, 익선은 이마저 거절하자 말 안장을 추가로 보내니 득오의 휴가를 허락했다고 한다. 이를 들은 조정에서는 익선을 잡아 족치려 했지만, 그가 도망가버려서 그의 아들을 데려다 얼려 죽였다고 한다.

득오는 오늘날로 말하면, 중간 공무원 급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수도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그것도 창고지기로 발령이 난다. 그런데 자신이 매일 나가던 화랑도의 대장인 죽지에게 알리지도 않고 떠났다. 이것은 단순한 발령이 아니라, 좌천이라고 봐야 할 듯하며, 생각보다 복잡한 상황이었던 듯 하다. 아마도 죽지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떠난 걸 보니, 죽지가 행여라도 자신을 염려할까 걱정하고, 그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 한 것 아닌가 한다.

그런데 득오를 발령 낸 익선이라는 아간(6급 관리)은 참 지저분한 인물인 듯하다. 위 이야기에서도 나오듯이 부하를 잠시 휴가 내주는데 벼 30석에 말 안장까지 받고서야 한 것을 보니 말이다. 게다가 득오를 좌천시킨 것을 보아하니 권력에 얽히고 섥힌 뭔가가 있는 듯 하다.

헌데 삼국통일 전쟁에서 장수로 활약하고, 파진찬(4급 관리)을 거쳐 신라 최고 행정관청인 집사부의 장관인 중시에 이른 인물인 죽지의 소소한 요청을 6급 관리 익선이 거부한다. 죽지를 위시한 화랑 세력들이 실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익선은 공공연하게 죽지를 무시한 것이다. 죽지는 자신의 측근(혹은 부하)의 며칠간의 휴가조차 마련해 주지 못하는 권력에서 멀어진 처지인 것이다. 아마 득오도 이것을 알기에 갑작스럽고도 모욕적인 좌천을 당하고도 죽지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떠났던 것이다.

"간 봄(지나간 봄)" 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쓸쓸하기 그지없다. 젊은날의 위풍당당함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말을 타고 벌판을 달리며, 세상을 바꾸고자 하던 패기 있던 죽지의 모습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이제는 어려움에 처한 부하를 위해 휴가조차 마련해주지 못하는 죽지.. 자신의 이상을 다 이루지 못하고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 내려 온 죽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득오는 노래한다. 그 쓸쓸함에 대해...
 

P.S. 모죽지랑가를 우정과 사랑 사이라는 자극적인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건 좀 아니라고 본다. 해석이야 개인의 자유기는 하지만, 저렇게 모욕적인 좌천을 당하는 부하를 지켜주지도 못하는 서글픈 상황을 봤을 때, 그런 해석은 핵심에서 벗어나도 너무 벗어난 듯.

P.S. 미국 영화 중에 로버트 레드포드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스파이 게임" 이란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모죽지랑가와 약간 비슷하다. 주인공이 CIA 를 은퇴하는 마지막 날, 사지 구렁텅이에 빠진 부하를 구해내는 이야기. 그 부하는 주인공이 발탁해서 키운 거고... 근데 할리웃 영화답게 쿨하게 끝남. 모죽지랑가와 같은 처연함은 없고 말이다. 애잔한 느낌은 확실히 동양적인 게 더 풍부한 듯. 뭐 그렇다는 거다. 그나저나 모죽지랑가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하나 안 나오나? 잘 만들면 재미있을 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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