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화고전

에로스와 프시케 - 사랑은 부활이라

by R.H. 2016. 7. 16.


Psyche and Amor, also known as Psyche Receiving Cupid's First Kiss (1798), by François Gérard: a symbolic butterfly hovers over Psyche in a moment of innocence poised before sexual awakening.[1] 




에로스와 프시케 풀스토리는 링크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32885&cid=41869&categoryId=41869




사랑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뜻하지 않은 순간, 뜻하지 않는 곳에서.. 하지만 사랑을 지키는 건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우연히 찾아온 사랑을 잃어 버린 후, 사랑을 되찾기 위해 고난의 여정을 거쳐, 마침내 사랑을 이뤄내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프시케는 에로스를 맨 처음 어둠 속에서 맞이한다. 에로스의 맨 얼굴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고, 에로스를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다. 단지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처음 사랑할 때의 감정과 똑같다.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알 수 없는 사랑이 내 맘 어딘가로 파고들어와 어둠 속에서 날 희롱하고 뒤흔드는 그 상태. 


우리는 이 감정을 숨기고 싶어하면서, 동시에 강렬하게 표현하고 싶어한다. 말로, 노래로, 그림으로, 시로, 일기로.. 프시케 역시 자신의 언니들에게 자신의 에로스, 즉 사랑을 표현한다. 혹은 그 감정을 들켰거나.. 


그러자 언니들은 득달같이 프시케의 마음에 의심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을 심어준다. 이에 프시케는 놀라고 겁에 질려 에로스를 죽이려 들고, 에로스를 잃게 된다. 


우리에게 처음 찾아온 에로스, 사랑, 욕망.. 우리는 이 놀라운 감정에 기뻐하면서도 얼마나 불안해하고, 두려워했던가.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을 의심하고, 사랑을 제 마음 속에서 몰아내려고 얼마나 부던히도 노력했던가.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흔한 말은 우리의 두려움이 벌린 끔찍한 실수들을 낭만적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프시케와 우리들은 사랑과 욕망을 두려워했던 걸까. 프시케의 질투 어린 언니들 때문이다. 이처럼 언니들이 심어준 사랑을 방해하는 말들은 현실에서 부모, 특히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말들과 동일하며, 딸을 질투하는 엄마의 모습이기도 하다. 


엄동설한에 계모가 딸에게 산딸기를 따오라고 시키는 한국 전래동화에도 동일한 상징이 담겨있다. 멋진 도령이 나타나 딸을 도와주고 사랑하는 모습을 목격한 계모는 이들을 질투하고 훼방하는데, 이는 엄마가 딸이 사랑과 성적 욕망에 눈뜨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 대한 은유다. (부모자식간에 마땅히 있어야 하는 감정이 아니기에 차마 친엄마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계모로 치환한 것)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프시케는 사랑을 잃고, 후회한다. 그리고 다시 사랑을 찾기 위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로스 엄마)가 주는 모욕과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암, 사랑을 얻으려면 사랑의 여신이 주는 고통을 받아들여야지. 


그런데 사랑의 여신의 마지막 요구는 가혹하다. 죽은 자들이 사는 곳에 가서 상자에 뭘 좀 담아오라는 것이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해야한다는 말.. 그리하여 프시케는 탑에서 떨어져 자살하려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지하 명부로 가는 방법, 살아 돌아오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자에 뭐가 들었나 궁금해서는 또 일을 망치는데, 이때 에로스가 짜잔하고 나타나서, 다 해결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잘 사는 걸로 끝난다.



P.S. 프시케는 나비라는 의미와 영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비, 이는 다시 태어남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아마도 사랑을 한다는 건 내 영혼을 걸어야 하는 것, 모든 의심과 두려움 불안을 떨쳐내는 것, 그리고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과정인 것이란 의미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