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1

할머니의 먼 집(2015) : 내 영혼의 휴식처

by R.H. 2017. 2. 15.




영화가 시작된지 5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울컥한다. 딱봐도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연기파 배우들이 그려내는 감동 스토리도 아니다. 보나마나 지루한 다큐영화일 것이다. 그런데 감정이 크게 동한다.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은 나를 읽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것은 나를 보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감정이 코너에 몰리고, 스트레스 수치가 감당 못할 수준이 될 때면,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곤 했다. 서로 용돈 주려하고, 서로 안 받으려하고, 몰래 가방에 숨겨 넣어주고.. 어릴적 잠든 내 손등을 쓰다듬던 까슬까슬한 할머니의 손. 자고 있지 않았으나, 그 느낌이 좋아 자는 척 했던 기억...



할머니와 손주 사이의 감정은 대체로 단순하다. 책임과 의무가 별로 얽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고 내 강아지, 할매 할매. 하는 단순한 감정이다. 단순한 보듬음과 단순한 위함만 있는 그 관계.. 따뜻하고 흐뭇하고 편안하다. 반면에 부모 자식 사이의 감정은 복잡하다. 책임과 의무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할머니와 엄마, 엄마와 딸 사이에는 날선 감정이 얼핏얼핏 보이곤 했다. 



그래서 정신이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뇌가 빠르게 전환되었나 보다. 급안정 모드인 할머니로 말이다. 할머니를 찾아서, 그 단순하고 따뜻한 감정 속으로, 그 품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우리들 머릿속에 지어놓은 정신의 도피처, 영원한 휴가지.. 바로 할머니의 먼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