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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춘몽(2016) : 액자 속의 그녀, 거울 속의 그녀

by R.H. 2016. 12. 17.



<결말포함된 스포일러>

영화를 보면서 막심 고리키의 소설 <26명의 기계와 한 소녀>가 떠올랐다. 뭐 비슷한 걸 말하지 싶었다. 회색빛 공장에서 회색빛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한 소녀를 사랑한다. 그 소녀가 특출나서도, 좋은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그 자리에, 그 순간에, 그녀 아닌 다른 여자가 있었다면, 그들은 그 다른 여자를 사랑했을 것이다. 눅눅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사랑을 받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아닌, 사랑을 "주고" 싶다. 그저 사랑을 주고 싶다. 그 누가 되었든.. 누군가에게 사랑을 준다는 것. 그들의 회색빛 인생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 삶을 견딜 수 있으니까. 


춘몽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거니하고 맥놓고 보고 있었다. 근데 뭔가. 이 자다가 봉창뚜드리는 결말은?? 화면이 칼라로 바뀌면서 휠체어를 탄 아버지가 ㅇㅇ 했을 땐, 이건 뭐 공포물인가. 미스테리물인가 싶고.. 아 이거 뭐지하며 답을 끼워맞추려는데, 맞춰지지 않고. 잠깐 헷갈려했는데.. 아, 이 영화 제목이 춘몽이었지, 참.




그렇다. 꿈이다. 꿈. 그들의 꿈이다. 예리는 죽은 게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실재하지 않은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들 마음 속에 있던 여인이고, 욕망이고, 고향이고, 책이며, 시였다. 휠체어를 탄 아버지 역시 실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몸을 가누지 못해도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보살펴 줄 딸이 곁에 있길 바라는 욕망의 대변자일 뿐이다. 


이 영화는 거울 속에 비친 정범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유난히도 거울 장면이 많다. 그들 모두는 거울 속에 있었다. 특히 거울 속에 비친 예리는 정확히 액자 속의 그녀, 모니터 속의 그녀다. 누구나 가슴 속에 액자 속의 그녀, 모니터 속의 그녀는 한명쯤 있지 않은가. 심지어 예리도 스마트폰 화면 속에 이상형 남자를 간직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관념 속의 그녀(혹은 그)와 연애하고 사랑하고 영화를 보고 춤도 춘다. 우리 모두가 가끔씩 멍때리고 하는 상상. 우리 모두가 꾸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