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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기타미드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 1 시즌 (Parks and Recreation) : "이게 민주주이죠."

by R.H. 2009. 8. 19.


 
레슬리는 Pawnee 라는 가상 도시의 Parks and Recreation 부서에 소속된 지자체 공무원이다. 그녀가 주민
공청회를 주관하는 임무를 맡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공청회에서 한 주민이 불만 사항을 하나 발표한다. 어떤 건축 개발 업자가 건물을 짓던 중 부도가 나서, 땅만 파놓고 버려둔 공터가 1년째 집 앞에 방치되어 있는데, 이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레슬리는 그 버려진 땅을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덜컥 약속한다.

 

우리 눈에는 사실 별거 아닌 걸로 보인다. 그러니까, 동네 공원 하나 만드는 걸로 할 얘기가 뭐가 있을까 싶다. 그 땅이 개인 소유지라면 재개발이 복잡할 것이다. 일이 복잡하다는 말은 할 이야기가 많을 거란 뜻이다. 하지만, 그 버려진 공터는 현재 시 당국 소유다. 따라서, 당장에 중장비 동원해서 파헤쳐진 땅을 메우고, 시멘트 깔고, 꽃과 나무 좀 심으면 이야기 끝이다. 우리 눈에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 보다. 공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민들과 토론하고, 상의하고, 투표하는 복잡하고 쓰잘데기 없는(우리 눈에는) 과정을 거쳐야 한단다. 이제, 레슬리는 공원 만들기를 위해 주민 토론회를 연다. 헌데, 주민들은 이 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공원 조성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도 없지만, 주민 토론회에 참가하겠다는 사람도 없다. 일이 바쁘다고, 애를 봐야 한다고, 혹은 두루뭉실 핑계 대면서.. 한마디로 귀찮다. 하기사, 선거 날 도장 하나 찍고 오는 것도 귀찮아 하는 게 요즘 사람인데, 주민 토론회가 웬 말인가. 그래도 어찌어찌 해서 몇몇 주민들이 토론회에 모였다.

 

그런데, 공청회에 온 주민들은 공원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마치 자신들의 개인적 불만을 토로하러 온 사람들 같다. 다짜고짜 공원이 들어서는 게 싫다는 둥, 옆집 음악 소리가 시끄러워서 우리 집 새가 깨어난다는 둥. 긍정적인 의견을 내는 주민은 없으며, 모두가 짜증과 불만만을 말한다. 뭐, 이런 식이다. 결국 공원 만들기를 위한 주민 토론회는 엉망진창으로 끝나 버린다. 제대로 된 성과는 커녕, 주민들의 신경질적인 반응과 짜증만 남긴 채 끝난 공개 토론회. 하지만, 주인공 레슬리는 말한다.

 

It was tough. But, you know that's Pawnee. That's democracy. There are a lot of people here that want this park. You just gotta get past the negative people. But, guess what? My subcommittee held it's first town hall meeting tonight. God, I loved it. I love every moment of it. 
[어렵네요. 하지만, 이게 포니시죠. 이게 민주주의인 겁니다. 이 공원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흘려 보내야 하죠. 근데, 그거 알아요? 오늘 나의 첫 공개 토론회가 열린 거죠. 와, 정말 좋아요. 이 모든 순간이 좋아요.]

 

레슬리는 이처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의욕적인 공무원이다. 그녀는 무사안일에 빠져있는 포니시의 여타 공무원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민주주의는 효율적이고 고상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비효율적이고 불평불만들만 오고 가는 경박한 난장판이다. 그리고 레슬리는 이런 난장판 민주주의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렇게 순진하게 즐거워하는 그녀에게 또 다른 주민은 욕설을 내뱉으며 나간다.

 

Hey, Park Lady. You suck.
[이봐, 공원 아줌마. 당신 X같애.]

 

한국 같았으면, "뭐 임마!" 이러면서 멱살 잡을 상황 아닌가? 아! 요즘은 명예 훼손이라는 조항을 이용하지.
그런데, 레슬리는 웃으면서 말한다.

 

Hear that? He called me Park Lady.
[들었어요? 나보고 공원 아줌마래요.]

 

그녀는 욕설은 흘려버리고, 그가 자신을 공원 아줌마라고 칭해준 것에 또 좋아라 한다. 자신을 공원 아줌마라고 칭한 것 자체가 이미 레슬리가 하려는 일이 뭔지 주민들이 알아 간다는 증거일 테니 말이다. 레슬리, 제대로 난장판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인물이 과연 현실에서 존재 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이런 사람이 있으면, "나댄다, 설친다." 혹은, "멍청한 거야, 순진한 거야?" 라는 식의 조롱과 비아냥을 그녀에게 쏟아 낼 테니 말이다. 음, 언제나 현실은 어렵다.

 

여하튼, 이 코미디물의 1시즌은 6회로 끝이 났다. 그런데 1시즌이 다 끝났는데, 공원이 들어서기는 커녕, 건축업자가 파헤쳐 놓은 땅에는 되려 쓰레기만 쌓여 간다. 공원 하나 만드는데, 왜 이리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가. 아니, 공원을 만들기 이전에 거쳐야 하는 이 불필요해 보이는 주민 토론, 합의의 과정은 또 뭐며, 이걸로 주민 투표도 해야 한단다. 게다가 공청회에 모인 사람들은 화만 내고, 부정적인 생각만 하고, 신경질 부리고, 급기야 공무원한테 욕설이나 해댄다. 정말 비효율의 극치다. 이 사람들은 밥 먹고 할 일 없어서 이런 쓰잘데기 없는 과정을 거친단 말인가? 아니면, 효율이 뭔지 몰라서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단 말인가?  아차차... 레슬리가 우리의 질문에 이미 레슬리가 답을 해주었지.

 
"이게 민주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