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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드리뷰

추노 : 황철웅

by R.H. 2010. 1. 25.


양반이라 해서 다 같은 양반이 아니다. 초가삼간과 홀어머니... 애비 없는 자식,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자에게 양반이라는 타이틀은 허울뿐이다. 양반이 별 건가. 돈만 있으면, 천민도 양반 족보를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 시대에도 사람의 높고 낮음을 나누는 기준은 부와 권력인 것이다. 부도 권력도 없는 집안 출신인 그는 "그들" 과 어울릴 수 없는 처지다. 설령 그들의 어울림에 끼어든다 해도, 그들의 조롱거리일 뿐이다.

차라리 노비라면, 체념이라도 할 것을.. 양반인 그는 체념하지 못한다. 그는 "그들만의 리그" 에 들어가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출세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끈이 필요하다. 그래서 좌의정이 내민 끈을 붙잡는다. 하지만 그 끈은 그를 묶는 올가미다.

"광야를 달리는 말은 마구간을 돌아보지 않는 법이지."

그는 노비들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노비가 제 주인에게 목숨이 붙들려 있듯, 그 역시 좌의정에게 목숨이 담보 잡혀 있다. 야생마 같은 그는 단 한 번도 광야를 달려보지 못 했다. 아니, 광야를 마음껏 달리고 싶어 몸부림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몸부림치면, 칠 수록 그를 옭아매고 있는 끈은 그를 더욱 죄인다. 피부는 벗겨지고, 상처는 깊어진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세상을 노려보고 있는 야생마다.

추노에 나오는 인물 모두는 분노한다. 자신의 집을 불 태운 노비에 대한 분노, 맞수에 대한 열등감, 양반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그들 모두는 이 엉망진창인 세상에 분노한다. 하지만, 그들이 겨누는 칼 끝은 제 각각이다. 황철웅이 겨누어야 하는 칼의 방향은 불의한 세상이건만, 그는 불의한 세상에 분노하면서도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진 않는다. 그는 단지 그 불의한 세상에서 힘을 누리는 자가 되고 싶어할 뿐이다. 이런 어리석음을 가진 자가 그 뿐이겠느냐 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