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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드리뷰

신데렐라 언니 : 쓰다듬기에 중독된 아이

by R.H. 2010. 5. 4.


집안의 외동 꼬맹이들은 부모에게 동생을 만들어 달라고 졸라대곤 한다. 그리고 동생이 생기면 좋아 죽는다. 조막손으로 기저기도 갈아주고, 이유식도 떠 먹여 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에게만 집중되었던 부모의 관심은 분산되기 시작하고, 이전에 혼자 독차지하던 것들을 동생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더더욱 견디기 어려워지는 시기는 사춘기 때다.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비교당하면서, 이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형제 자매간의 싸움은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 이들 관계는 그 누구보다 끈끈해지기도 한다. 서로 싸울 때는 죽이기라도 할 듯 덤벼들지만, 막상 내 형제가 밖에서 맞고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발끈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죽일 듯이 눈 부라리며 싸워대던 내 형제다.


효선이는 이런 과정이 남 보다 너무 늦게 일어났다. 6살에 가져야 할 자매를 16살에 가졌고, 16살에 죽일 듯이 미워하며 싸워야 하는 것을 26살에 하고 있다. 그래서 은조의 증오를 이해 못한다. 자신이 이렇게 살갑게 대하는데도 가시돋힌 말만 뱉어내는 은조를 도저히 이해 못하겠는 것이다. 효선이는 6살 어린이 마냥 언니가 생긴 게 좋아 죽겠는데 말이다. 이것은 은조가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애이기 때문이다. 자기 것은 자기가 알아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깨우친 애다. 그래서 은조 역시 효선을 이해 못한다. 효선이는 16살에는 6살 아이처럼 행동하고, 26살에는 16살 소녀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효선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쓰다듬기” 에 중독되어 있다는 점이다. 6살에 엄마를 잃어버려 생긴 일이다. 무엇보다도 부잣집 외동딸로 자라나서 타인의 이유 없는 웃음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잘 모른다. 집안에 들어오는 낯선 사람은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거나 거래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쓰다듬기는 당연히 호의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호의가 진심만은 아니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어색한 자리에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방법 중에 하나는 그 집 아이 칭찬하고 쓰다듬는 것.. 그런데 효선이는 이들의 호의를 전부 진심으로 믿는다.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이 주는 기분 좋음에 취하고, 자신을 나약함 속에 방치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효선이는 이 “쓰다듬기”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가짜 쓰다듬기를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


아버지 구대성의 죽음으로 이것이 시작되고 있다. 회사는 문닫기 일보직전의 상황이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사장님 딸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남의 집 딸 머리를 쓰다듬어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계모 강숙의 가짜 쓰다듬기 역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효선이의 머리를 진심으로 쓰다듬어 줄 사람은 죽도록 미워한 은조가 될 것 같다. 위에서 말한 대로, 지금 20대의 이들 모습은 10대 자매들의 싸움과도 같은 형국이다. 그리고 피붙이들은 싸우면서 정이 든다. 효선과 은조가 피붙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공동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종국에는 진짜 피붙이 자매와도 같은 정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