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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출애굽기 32장 : 원칙을 지켜라

by R.H. 2009. 9. 15.
"This is what you are to say to the house of Jacob and what you are to tell the people of Israel: 'You yourselves have seen what I did to Egypt, and how I carried you on eagles' wings and brought you to myself. Now if you obey me fully and keep my covenant, then out of all nations you will be my treasured possession. Although the whole earth is mine, you will be for me a kingdom of priests and a holy nation.' These are the words you are to speak to the Israelites."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말을 전하라 : ‘내가 이집트에서 행한 일과 독수리의 날개로 너희를 이끌어 낸 것을 너희가 직접 보았다. 너희가 나와의 약속에 복종하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인 즉, 너희는 사제의 왕국, 신성한 나라가 될 것이다.”       출애굽기 19:4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이집트에서 나온 지 3개월 만에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이른다. 그들은 이곳에 캠프를 치는데, 아마도 그간 고난의 행군에 쌓인 피로도 풀고, 재정비의 필요성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모세는 여기서 산에 올라가 신의 계약(맨 위의 인용구절) 을 받아  하산하여, 장로들을 소집하고는 이 계약을 전한다. 그리고 그들은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세 단독으로 신과 언약을 맺은 것도 아니고, 신이 일방적으로 “나에게 복종하라. 안 그러면 너희 모두 가만두지 않겠다.” 라는 식으로 윽박지른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신과 이스라엘 백성들간 계약은 나름 민주적 절차를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계약은 물론 “야훼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 국가” 건설이다. (이것이 옳다 그르다는 식의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들이 이러한 원칙에 동의하고 계약을 맺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 계약론을 끄집어 내는 것은 좀 비약인 것 같고.. 여튼 신(종교 국가)과 백성(국민)들간에 일종의 계약을 맺은 것은 분명하다.

 

위에서의 계약이 일종의 구두 계약이라면, 십계명은 그 계약을 문서로 구체화한 것이다. 그리고 모세(혹은 리더 그룹) 는 좀 더 세부적인 사회적 약속 조항, 즉 구체적인 법과 규례 등을 만들어 낸다. 이는 출애굽기 21장에서 31장에 걸쳐 상세히 나와 있다.

 

이러한 원칙을 상호간에 계약한 뒤, 모세는 산에 더 머물렀던 모양이다. 그리고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사람들은 애론에게 몰려가 요구한다.

 

"Come, make us gods who will go before us. As for this fellow Moses who brought us up out of Egypt, we don't know what has happened to him."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시오. 이집트에서 우리를 이 곳으로 데려온 모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출애굽기 32:1

 

이에 애런은 금붙이를 모아오라 하고는 이를 녹여 금송아지를 만들고, 제단을 쌓기까지 한다. 여기서도 애런의 성격이 잘 나타나다. 중재의 역할을 잘 하는 사람으로 타협에 능통한 사람이라는 점 말이다. 하지만 모세는 다르다. 모세는 참을성 강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원칙을 고수하는 고집불통이고, 성격도 상당히 터프하다.

 

산에서 내려 온 모세가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이들을 보고 노발대발 한 것은 이러한 모세의 성격에 기인한다. 그런데 모세는 노발대발 한 것만이 아니라, 3천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도륙하기까지 한다. 이 점은 좀 이상하지 아니한가?

 

모세가 어떤 사람인가? 그는 휴머니스트다. 불합리한 공권력에 두드려 맞는 하층민을 위해 나선 사람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대중들의 오만 욕설과 불평 불만도 모두 참고 이해해 준 사람이다. 이스라엘 민중들은 무슨 일이 꼬이기만 하면, 모세 탓을 해댔다. '네가 괜히 우리를 이집트에서 나가자고 꼬드겨서 죽게 생겼다.' 물이 없으면, 물이 없는 것도 모세 탓. 음식이 없으면, 음식이 없는 것도 모세 탓. 적들에 포위되면, 이것도 다 모세 탓. 심지어는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고 까지 했다. (출애굽기 17장)

 

하지만 단 한 순간도 모세는 이런 민중들을 향해 욕을 하거나, 칼을 빼어 드는 짓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해결책을 마련해서 내 놓았다. 이런 그다. 그런데 금송아지 하나 만든 것 가지고 무려 3천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살육했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바로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야훼로 대동단결” 이것이 바로 그들의 제 1 원칙이다. 십계명의 1~3 조항은 바로 야훼로 대동단결이라는 원칙을 기록한 것이다. 여호와 이외의 신은 섬기지 않고, 우상은 만들지 않는다는 조항 말이다.

 

요즘 말로 하면, 헌법 1조 1항 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헌법에서 규정하는 민주국가 원리,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을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것은 바로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민주국가라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원칙은 바로 십계명의 1~3 조항이다. 해서, 모세는 이를 방관할 수 없다. 다른 건 다 이해하고 참을 수 있어도, 이것만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양보해서도 안된다. 원칙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니까.

  

모세는 분명 휴머니스트다. 민중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오만 욕과 불평 불만을 쏟아내는 대중을 끌어 안는 사람이다. 하지만, 원칙을 깨뜨리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 정도쯤이야” 하고 그냥 넘어간다면, 그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은 삽시간이다. 그가 3천명을 죽이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면, 3만 명의 목숨이 죽는 일을 겪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칙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유랑극단의 이야기를 다룬 카니발이라는 미국 드라마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We got a code here. If we break the code, we got nothing left.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규칙이라는 게 있어. 그걸 깨뜨리면,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냐>

 

길을 떠돌며 사는 유랑극단에게도 지켜야 하는 그들 만의 Code 라는 것이 있다. 하물며, 나라에 있어서는 두말해서 뭣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