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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출애굽기 7장~11장 : 모세의 재앙 마법

by R.H. 2009. 8. 15.
 
1차 협상 결렬 후, 모세와 파라오는 재협상에 들어간다. 여기서 아론은 자신의 지팡이를 파라오와 신하들 앞에 던져 뱀으로 변신시킨다. 이를 본 파라오 역시 현자와 마법사들(wise men and sorcerers) 을 소환하여 똑같이 행하는데, 아론의 뱀이 이들의 뱀을 삼킨다. 이 장면은 애런과 파라오측의 열띤 토론 현장의 상징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를 아담과 하와가 먹게 꼬드긴 것이 뱀이라는 창세기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 듯이, 뱀은 본시 교활함과 지혜, 지식을 상징한다. 즉, 아론이 파라오 앞에 지팡이를 던져 뱀으로 만든 위의 이야기는 이들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오늘날로 치면, 100분 토론? 여하튼 많이 아는 놈들간에 말싸움이다. 헌데,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지팡이를 뱀으로 만든 이는 모세가 아니라, 아론이었다는 점이다. 모세는 입이 둔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는 모세가 논리적인 말하기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의 애두른 표현이다. 그래서 모세는 아론을 대변인 삼았다. 대변인은 남을 대신해서 말을 해주는 사람이다. 즉, 아론은 달변가다.
 
따라서 아론의 뱀이 파라오가 내세운 현자와 마법사의 뱀을 집어 삼켰다는 말은 이들간 논쟁에서 아론이 우위를 점했다는 뜻이다. 아론은 성경 최초의 말 싸움꾼인 듯.(주먹 싸움꾼 모세와 말 싸움꾼 아론의 결합은 찰떡 궁합인 셈) 하지만, 파라오는 승복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그 유명한 모세의 재앙 마법이다. 피로 물든 나일강, 개구리의 습격, 모기떼의 창궐, 파리떼의 창궐, 가축의 떼죽음, 피부병 발생, 우박 피해, 메뚜기떼의 습격, 3일간의 어둠, 그리고 이집트 장자들의 죽음.
 
대화로 해결하려 했던 애런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자, 모세는 재앙 마법, 즉 물리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세의 폭력 행사로 파라오는 수세에 몰리자 모세의 요구안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혼란한 상황이 안정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약속을 뒤집어 엎어버린다. 화장실 들어가지 전과 후는 언제나 다른 법. 여하튼, 파라오가 계속해서 말 바꾸기를 하자, 모세측은 극단의 방법을 쓴다. 이집트 땅의 모든 장자를 해하는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폭동을 넘어 테러와 인질극을 벌이는 행동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 여겨 볼 점은, 최초에 모세가 파라오에게 요구한 것은 3일간의 가두 행진과 행사였다. 모세가 처음부터 나라(이집트)를 전복시키려 한 것도 아니고, 이집트 상류층을 모두 끌어내려 목을 내치는 혁명을 하려 한 것도 아니다. 그가 원한 것은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 있는 하층민들의 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것, 그리고 3일간의 집회를 열겠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극단의 행동으로 치닫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 상부층이 하부층의 요구를 결단코 수용하지 않는 모습. 파라오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수세에 몰리면 듣는 척하다가 뒤돌아서면 말 바꾸는 추잡한 행동을 계속해서 보여줬다. 파라오는 모세측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들과 소통할 생각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저렇게 끔찍하다. (모세가 보여준 마법은 마법이 아니라, 모세측에서 행사한 물리력이라고 해석한다면 말이다)
 
이집트 나일강을 더럽히고, 벌레떼를 풀고, 전염병을 일으키고, 이집트인들의 장자들에게 테러를 가한 자들. 오늘날 치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폭도, 파업꾼, 테러범들이다. 그렇다면,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대중을 선동한 모세와 아론일까? 당시에 당연시 여겨지던 계급질서와 인종차별을 거부하여 폭력을 행사한 대중들의 책임일까?

답은 자명하다. 사회적 약자들의 소리 듣기를 거부한 파라오의 책임이다. 오래된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서는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답은 이처럼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문제들이 동시대에 우리 근처에서 일어 날 경우는 이상하리만치 그 답이 애매모호하다. "어쨌든 폭력은 폭력이지 않느냐." 는 논리에 대부분이 수긍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를 펴는 쪽이 바로 문제의 발단이 된 최초 '폭력' 을 사용한 측이다. 게다가 최초 폭력자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질서와 규범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  이처럼 기득권은 자신들의 폭력을 세련된 방법으로 사용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거칠고 투박한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나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냥 주저리 주저리.
 
모세의 마법을 정치적 요구를 위한 물리력 행사라는 위 같은 해석이 아닌, 마법 그 자체로 본다면 정말 흥미진진한 환타지 스토리다. 특히 오늘날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어우러져 영상화 된다면, 해리 포터 시리즈 저리 가라 할 듯. 여하튼, 모세의 마법은 이 후 수 많은 환타지 소설의 원형이 된 듯 한데... 성경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들과 이야기, 그리고 이러한 미스테리한 장면들은 그야말로 세상 모든 이야기 원형들의 집합소다. 성경이나 고대 신화들을 쭉 살펴보면 가져다 쓸 만한게 넘쳐난다는 말이다. 남의 이야기 비스꾸리하게 가져다 쓰면, 표절이네 뭐네 말이 많지만, 성경이니 신화 속 이야기를 가져다 쓰면 '차용' 이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붙여 주기 까지 한다.(아 참! 저작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공짜다.) 지금 이 짓을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이 미국 드라마 '로스트' 제작자들.(좋은 뜻으로 하는 말임) 여튼, 세상 모든 스토리는 성경과 신화에서 다 끝난 듯. 그 이후의 이야기는 등장 인물의 이름만 바뀌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나 기교가 덧붙여졌을 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