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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출애굽기 1장~4장 : 모세, 주먹은 좀 쓰는데 말빨이 좀 딸리는

by R.H. 2009. 8. 15.

출에굽기 1장

이집트 총리에 오를 정도로 출세한 아들 조셉에 의지하여, 제이콥은 식솔들을 이끌고 이집트로 가족 이민을 결행하고, 정착한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 조셉의 이름이 잊혀진 시대에 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새로운 이집트 왕은 이집트내의 소수민족인 헤브루인들을 박해한다. 박해한 정도가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헤브루인 사내 아이는 모조리 죽이라는 비인간적인 포고령까지 내린다. 사회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해지고, 포용력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외국 출신 조셉을 총리에 임명할 정도의 문명국 이집트, 왜 이리도 급작스레 정치 사회 분위기가 급속도로 경직되었을까?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당시 이집트의 정치 상황이 상당히 혼란스웠을 것이라는 추측은 할 수 있다. 권력층이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특정 집단을 겨냥하여 집단 린치를 가하는 것은 정석 중의 정석이니까. 여하튼, 당시 이집트는 인종 차별, 소수민족 차별, 사회적 약자에 대한 횡포가 횡횡한 흉흉한 시기였다
.


출애굽기 2장  이집트 주류에 속한 엘리트 모세

모세의 출생 스토리는 유명하다. 레위(Levi) 가문에서 출생한 한 사내아이를 일부러 바구니에 담아 나일강에 흘려 보냈는데 이를 본 파라오의 딸(공주)이 아이를 입양한 이야기다.

 
누가 들어도 이상하다. 강에 아기를 띄어 보낸다고 공주가 입양해 준다면, 모든 헤브루인들이 벤치마크할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세의 출생과 출신에 대한 '썰' 은 상당히 많다. 원래 모세는 이집트이었는데, 후일 유대인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 위한 정당성 확보하고자 자신이 원래는 헤브루인이라고 지어낸 이야기라는 설부터, 이집트 공주와 헤브루인 사이에 낳은 혼혈아 설과 사생아 설까지. 확인 할 길은 없다.

하지만 모세가 순수 헤브루인이었든 순수 이집트인이었든 혹은 혼혈이었든지 간에 분명한 사실은 그가 이집트 왕실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즉, 그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인물이었다. 그는 계급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속한 최상류층 엘리트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한 모세는 어느날 한 이집트인이 헤브루인을 두들겨 패는 것을 본다. 이집트인은 주류고,  헤브루인은 비주류다. 오늘날로 말하면, 인종차별의 현장이다.
 
그런데 모세는 이집트 왕가에서 편히 사는 최상류 엘리트로, 이집트 주류 가운데 주류이다. 그가 헤브루인을 편들어 줄 이유는 사실 없다. 자신 역시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에 끼어든다. 이 상황이 옳지 못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지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두들겨 맞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헌데, 모세 성격이 상당이 터프 했는지 이집트인을 말로 설득하지 못하고 두드려 패서 죽인다. 문제는 다음날이다.

다음날 그는 길에서 두 명의 헤브루인이 다툼을 벌이는 것을 보는데, 모세, 또 끼어든다. 모세, 참 오지랖 넓다. 그는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류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들 중 한명이 말한다.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한마디로 "네 까짓게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고 따져 물은 것이다. 더 나아가 모세의 약점을 들춰낸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모세는 미디안 (Midian) 지역으로 도망간다.

도망가는 도중에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고 편들어 준 자신을 되려 고발하려는 그들의 모습에 분노하고, 절망을 했을까? 이집트 왕실에서 무위도식하며 한량 생활로 세월을 보내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거늘 괜히 나서서 이 꼴이 뭐냐라고 자책했을까?
 
그가 "국민 개새끼론" 에 동조했다면, 그는 인류가 기억하는 리더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위의 예에서 보여지는 대중의 이중성과 천박함 그리고 노예 근성을 몸으로 직접 격으면서도 결단코 대중을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그 역시도 대중들의 이중성에 종종 힘들어하고 절망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대중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가 진정 강한 리더의 표본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여하튼,
 
미디안 지역에서 그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가축에게 먹이려는 아가씨들을 본다. 그런데, 이 때 다른 목동들이 이 아가씨들을 괴롭힌 모양이다. 요즘말로 하면, 동네 양아치들이 아가씨들에게 찝쩍대는 상황이다. 모세, 또 끼어든다. 그는  약자인 아가씨들을 험한 상황에서 구해주고, 그녀들이 하는 일을 팔 걷어붙이고 도와 주기까지 한다. 모세는 약자를 보면 저절로 일어나 도와주는 유형의 인간이었던 듯 하다. 또한, 목동들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껄렁대는 녀석들은 여러명이었다. 한마디로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한 것이다. 모세, 나름 싸움꾼이었던 모양이다.

헌데, 알고보니 이 아가씨들은 그 지역 제사장의 딸들이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그 딸 가운데 한명과 결혼해서 애도 낳고 그럭저럭 잘 살게 된다. 이집트 왕실에서 곱게 자라 귀티가 날 테고, 많이 배웠으니 지적일 테고, 게다가 의협심도 있는 남자 모세였으니,  나름 백마 탄 왕자다.


출애굽기 3장~4장  설득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모세

하지만 이렇게 가슴이 뜨거운 사람은 촌구석에 처박혀 양떼나 몰며 살 수 없는 팔자다. 그는 어느날 광야의 서편에 있는 호렙(Horeb) 산에서 신의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헤브루인을 이끌고 헤브루인의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면서...

그런데, 이스라엘 땅이 척박하다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나일강을 끼고 있는 이집트는 풍요의 땅이다.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는 슬로건은 구라다. 아무리 헤브루인들이 이집트 땅에서 박해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흙먼지 푸석푸석 날리는 가나안 지역보다는 이집트가 나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헤브루인들을 그 땅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는 번지르르한 슬로건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나름 이집트에 정착한 이들이 궁둥이를 쉽게 뗄리가 없다. 모세는 신에게 말한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이니다."  <
출애굽기 4장 10절>
                                                                                                                                         
신이 이집트를 떠나라면서 사람들에게 증거가 될 엄청난 마법의 능력도 주는데, 모세는 뜬금없이 '제가 말주변이 없어요.' 라고 말하고 있다. 갑자기 웬 개그란 말인가?
 
위에서 말한 바, 모세는 헤브루인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것도 오랜 이집트 생활에 익숙해진 그들을 말이다. 문명국 이집트 생활에 젖어 있는 그들을 척박한 허허벌판 땅으로 데리고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자면 설득의 과정을 거처야 한다.
 
성경에서 말한 "혀가 둔한 자" 라는 표현을 두고, 모세가 언어 장애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설득과 타협의 언어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모세의 성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계급 꼭대기에 속한 자다. 이런 사람은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명령의 언어에 익숙하다. 누구를 설득할 필요가 별로 없기에, 설득의 언어를 연습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말이다. 그가 처음에 이집트인을 두드려 패서 죽인 것도 같은 이유다. 논리의 언어로 상대를 설득하기 보다는 욱하는 성격에 주먹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해서, 그는 대변인 애론(Aaron)을 얻는다. 애론 역시 당시의 엘리트였을 것이다.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이기에 이러한 거대한 역사의 페이지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는 모세와 달리, 경제적으로 사회 중하층부에 속한 인물이었다.

또한, 정치적 영향력도 별로 없는 순수 헤브루인이었다. 이런 계층에 속한 지식인은 둘 중 하나다. 개처럼 물어뜯는 언어를 구사하거나, 상대를 감화시키는 설득의 언어를 구사하거나. 아마도 애런은 후자에 속했을 것이다. 이후에 애런이 헤브루 장로들을 말로 설복시킨 것을 봤을 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