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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창세기 : 벤자민(Benjamin, 베냐민), 2인자의 비애

by R.H. 2009. 8. 15.
벤자민은 제이콥(야곱) 이 가장 사랑한 여자 레이첼에게서 얻은 두 아들 가운데 하나다. (다른 한명은 조셉) 그런데 창세기에서 조셉의 일대기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반면, 벤자민에 대한 기록들은 지극히 단편적인 것 뿐이다. 그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말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따라서 이 인물에 대한 이 포스트는 전적으로 나의 상상으로 만들어졌음을 미리 밝힌다. (물론 이전 포스트들 역시 나의 상상이 듬뿍 가미된 내 멋대로의 글들이지만.)

창세기에서 벤자민이 주인공인 사건은 없다. 그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성격이 드러나는 단어 또한 찾기 어렵다. 그런데 왜 이 존재감없는 인물에 대한 포스트를 쓰려 하는가? 그것은 바로 벤자민이라는 인물을 관통하는 단어가 경쟁, 라이벌 의식, 질투라는 지옥같은 감정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느끼는 이 감정들을 느낄 수가 있다. 존재감 없는 이 남자, 그의 내면은 지옥을 맛보고 있다.

일인자가 사라지다.

제이콥의 조셉 편애는 유명하다. 단순히 레이첼의 아들이어서만은 아니다. 벤자민도 레이첼의 아들이다. 더욱이 벤자민은 세상의 모든 귀염을 독차지한다는 막둥이다. 그런데도 제이콥은 조셉을 가장 아꼈다. 제이콥이 조셉을 각별히 아낀 이유는 조셉의 "잘남" 에서 찾아야 한다. 조셉은 분명 영특하기 이를 데없는 인물이었다. 지나치게 똑똑한 것을 본인도 알고, 주위 사람들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건방졌고, 이 때문에 고생길로 접어든다.) 또한 조셉은 용모까지 수려했다.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없는, 요즘말로 엄친아다.

그런데 이런 잘난 형 조셉이 어느날 갑자기 죽었단다. 이 소식을 들은 벤자민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당연히 놀라고, 비통함에 빠졌을 것이다. 친형이 죽었다는데, 뒷간에서 웃을 동생이 세상에 어디있단 말인가. 악마가 아닌 이상에야.

그런데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제이콥은 조셉에게 주었던 애정을 벤자민에게 쏟기 시작한다. 제이콥은 벤자민의 눈에서 조셉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래 이름이 벤오니(나를 고통스럽게 한 아들)였던 이 아들을 벤자민(나의 오른편에 있는 아들)이라 개명해 주었을 것이다. 이를 볼 때, 제이콥은 벤자민을 후계자로 염두에 두었던 모양이다. 이제 벤자민은 느끼기 시작한다. 잘난 형 조셉이 사라지고 자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말이다. 형을 잃은 슬픔과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기쁨이 뒤섞이면서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슬픔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어쨌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는가.
 
기근에 이집트로 다른 형제들을 모두 내려보낼 때도 제이콥은 벤자민만은 자신 곁에 둔다. 벤자민이 혹시라도 해를 입을까 걱정해서다. 게다가 시므온이 인질로 이집트에 잡혀있는 상황에도 벤자민을 내려 보내려 하지 않았다. 조셉이 사라진 후 제이콥의 벤자민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은 거짓인가 보다. 둘째 아들 시므온은 죽거나 말거나 벤자민만 안전하면 된다고 생각한 제이콥을 보면 말이다.)

잘난 형이 살아돌아 오다.

그런데 조셉. 제이콥이 색동옷까지 특별히 맞춰 입힐 정도로 사랑하던 아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 그것도 전보다 더 똑똑하고, 더 훤칠해져서. 게다가 선진국 이집트를 호령하는 권력자로 대성해서 나타났다. 조셉과 벤자민, 이 두 형제는 극적인 이산가족 상봉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Then he threw his arms around his brother Benjamin and wept, and Benjamin embraced him, weeping.
[그(조셉)는 동생 벤자민을 껴안고 울었고, 벤자민도 그를 부둥켜 안고 울었다.] -창세기 45장 14절

조셉의 감정

그는 타국땅에 노예로 팔려와 죽을 고비 여러 번 넘기며 고생이란 고생은 모두 맛 보았다. 그리고 오랜시간 피붙이 하나없이 이 낯선 땅에서 외롭게 지냈다. (결혼도 이집트 여자와 했음) 그가 정 붙일 곳이라곤 일밖에 없었을 것이다. 언제 자신에게 등 돌릴지 모르는 이집트인들에 둘러싸여 있는 조셉. 제 아무리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조그마한 빈틈이라도 보일치면 언제 어디서 정치적 공세를 받을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누명이라도 쓴다면, 누가 그를 위해 변호해 줄 것이며, 정치적 수세에 몰린 그를 누가 구해 줄 것인가. 그가 믿을 것이라곤 그의 능력 하나 밖에 없다.

이렇게 피말리는 삶을 사는 사는 외로운 남자 조셉. 그가 유일한 친 혈육 벤자민을 상봉하여 흘린 눈물은 순도 100%의 진심이다. 그는 동생 벤자민의 눈을 통해 피붙이의 뜨거움, 가족의 안도감, 그리고 고향의 편안함을 보았다. 조셉의 감격은 말 그대로 감격 그 자체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벤자민을 각별히 대해준다. 다른 형제들보다 몇 갑절 더 많은 음식과 물품을 벤자민에게 베푼다. 그는 진심으로 벤자민을 사랑했다.
 
벤자민의 감정

그렇다면 동생 벤자민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벤자민 역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역시 순도 100%의 감격과 진심이다. 그리고 형 조셉의 각별한 배려가 고맙고 뿌듯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셉이 벤자민에게 느끼는 감격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의 감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벤자민이 나쁜 사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벤자민은 고생없이 아버지의 각별한 애정과 보호 속에 자라왔다. 원래 고생없이 자란 사람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에 비해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다. 반면에 목숨이 붙어있는게 기적이라는, 사지가 멀쩡한 것만도 크나큰 축복인 것을 경험한 사람 즉, 조셉처럼 고생의 극까지 달려 본 사람들은 작은 것에서도 감사를 느끼는 풍부한 감정의 소유자가 된다. 조셉의 입장이 되어서 그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라. 그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도 얼마나 기적으로 느꼈겠는가.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벤자민은
형(조셉)이 정말 잘났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깨달았을 것이다. 일인자가 복귀했으니 2인자는 물러서야 한다는 것을... 창세기에서 벤자민의 감정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2인자의 비애가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극심한 경쟁 상대는 바로 형제다. 인생 최대의 라이벌 형제. 형은 동생을 죽이려 하고, 동생은 형의 뒤통수를 친다. 창세기에도 반복돼서 나오는 이야기다.

Benjamin is a ravenous wolf; in the morning he devours the prey, in the evening he divides the plunder."
[벤자민은 사나운 늑대라; 아침에는 포획한 먹이를 먹을 것이고, 저녁에는 (포획한 것을) 약탈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창세기 49장 27절
                                                                                            

창세기 49장에서 제이콥의 벤자민에 대한 묘사는 조셉과의 상봉 뒤, 벤자민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 구절에서 "아침" 이라 함은 벤자민의 초년 인생, 즉 조셉이 죽은 줄 알았던 시기를 의미하고, "포획한 먹이" 는 아버지의 각별한 애정과 후계권을 의미한다. 그리고 "저녁" 이라 함은 벤자민 인생의 후반부, 즉 형 조셉이 살아서 나타난 이후를 의미하고, 약탈자는 조셉을 뜻한다. 그리고 "먹이를 나눈다" 는 것은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독차지한 사랑과 후계권을 조셉과 나누어야 했다는 의미다.

없다가 얻는 것과, 있다가 잃는 것은 천지차이다. 전자는 승리감의 극치요, 후자는 패배감의 극치이다. 벤자민은 후자였다. 벤자민. 존재감 없는 자, 넘을 수 없는 벽같은 잘난 형의 그늘 뒤에서 조용히 서 있는 자.

그러나 그의 마음은 조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격렬히 요동치는 불길 속에 있었을 것이다. 지옥에 있는 것처럼... 어쩌면 아버지 제이콥은 이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다. 잘난 형의 뒤에 말없이 서 있는 벤자민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사나운 늑대의 눈빛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벤자민을 일컬어 사나운 늑대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