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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엘워드

엘워드 5-9 Liquid Heat

by R.H. 2009. 8. 14.

  

5시즌은 이전 시즌들에 비해 좀 늘어지는 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에피의 엘리베이터씬은 개인적으로 엘워드 전 시즌 전에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씬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그리고 이 장면이 있음으로 5시즌도 훌륭하다. 



이 장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티나는 참 미인 이시라는. 이런 아름다운 티나의 모습에 어떤 단어를 붙여줘야 하나...적절한 단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으니. 



죽음이 바짝 다가왔다는 걸 느끼는 순간, 삶을 생각한다. 


  

이번 에피에서 벳과 티나는 정전사태로 엘리베이터에 갇히는데, 왜 이런 설정을 넣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삭제된 장면 가운데 "지진으로 흔들리는 장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진 장면을 찍었다는 데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이 왔다. 



지진 같은 자연 재해를 몸소 체험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실제로 갇힌다면 어떤 느낌일까?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처럼 로맨틱한 기분은 절대 아닐 것이다. 지진, 예기치 못한 위험한 공간에 갇히는 상황. 아마도 죽음이 매우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실제로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벳은 굉장히 심리적으로 불안해 한다. 



우리는 모두 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그런데 그 사실을 항상 까먹고 산다. 그리고 마치 우리의 삶이 영원할 것 마냥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죽음이 내 옆에 바짝 다가와 있는 걸 느끼면, 그때서야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벳은 죽음이 자신을 덮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벳 자신의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본능처럼 느낀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그것은 바로 티나라는 사실을.. 그래서 조디와 티나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던 벳은 이 순간을 계기로 결심을 굳힌다.



책임과 파괴적 성향의 상관 관계



벳 :  I'm afraid that I'm destructive. If I have something good, I feel compelled to destroy it. 

<내가 파괴적인 게 두려워, 무언가 좋은 것을 갖게 되면 부셔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어>



나는 처음에 벳이 말한 "DESTRUCTIVE" 라는 단어가 내가 알고 있는 "파괴적인" 이라는 뜻 말고, 다른 의미가 있는 줄 알고, 오만 영사전을 다 뒤져봤다. 그러나 말 그대로 파괴적인 이라는 뜻이다. 다른 의미로 쓰인 게 아니다. 



왜 이해가 단박에 되지 않았냐면, 벳이 파괴적인 모습을 시청자에게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의 성격은 공격적이고, 입은 거칠지만, 비이성적인 태도나 정신줄 놓아버리는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사실, 그녀가 분노를 뿜어내고 욕 발산할 때는 시청자들이 수긍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고, 배우의 내외적 연기 내공에 파묻혀서 매력으로 착각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벳의 성격을 한번 보자. 벳을 표현하는 핵심 단어는 "RESPONSIBILITY" (책임감) 다. 벳이 비난 받는 통제 증후군은 그녀의 핵심 성격인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책임감의 부작용이 바로 파괴적인 (DESTRUCTIVE) 성격인데, 이게 일이 커지면 폭력, 자살 등으로 나타난다. 사실 벳의 폭력 성향은 여러 번 묘사되었다. 특히, 1시즌 마지막 에피에서 보여준 폭력 씬.. 그리고 2시즌에서 티나와의 관계 회복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풀장에 몸을 던지는 모습 등..



사람은 각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 그 그릇은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잘난 사람이라 해서 그 감당의 그릇이 다른 사람보다 엄청나게 큰 건 아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좀 더 많이 감당해야 한다. 무언가를 감당한다는 것,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 번거로운 일을 자진해서 나서야 한다는 것. 말처럼 간략한 일들이 아니다. 세상에서 책임감이라는 단어만큼 무겁고도 무서운 단어는 없다. 



또한 무언가를 감당하고 책임진다는 말은 인내하고 견뎌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의 인내는 분명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눌려진 감정들은 일시에 폭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벳이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파괴적" 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다. 책임이란 무엇인가, 앞장서는 게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말한 "부셔 버리고 싶은 충동" 이라는 표현에 수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