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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엘워드

엘워드 4-12 Long Time Coming

by R.H. 2009. 8. 14.

 


"I never should have let you go. I would do anything for another chance. I'm not afraid to make a fool out of myself. Sleep well." <널 보내는 게 아니었어. 다시 기회를 얻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겠어. 내 스스로가 바보처럼 보이는 것도 두렵지 않아. 잘자>



마음을 듣다 .


 

지금 새로운 삶의 동반자(조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 뉴욕으로 가고 있는 벳은, 그 길의 한 가운데서, 티나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한다. 훔쳐온 간판을 조디에게 주면서 뭐라고 하면 좋을까, 라고... 벳이 굳이 티나에게 야밤에 전화 걸어 조언을 구할 필요도 없거니와 티나의 저 표현은 티나 자신의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엘워드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지난 3시즌에서 벳이 산중에 야밤에 전화기를 붙잡고 자신의 삶을 돌려받고 싶다고 울부짖는 장면과 이번 에피의 티나의 전화 장면이다. 마음의 진실이 들려서 이런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상대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대화에서는 상대의 표정과 반응에 어느 정도 맞춰서 발언 수위가 조절되곤 한다. 상대의 표정이 시원찮으면 할 말도 못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상대의 표정을 보지 못하는 전화를 통해서는 좀 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 할 수 있을지도.

 

  

벳, 눈치깟다. 그런데 왜? 

  


티나가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벳도 분명 알아차렸다. 아무리 벳이 눈치 없기로서니 누가 들어도 명확한 표현을 못 알아 먹을까. 그런데 죠디에게로 향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지난 11에피에서 보여준 티나의 엉거주춤하는 감정 때문에 망설이는 걸까? 

                          


티나 : 너는 네 일이 다른 사람의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건 관계를 정말 어렵게 만들어. 너의 일, 너의 생각이 항상 옳고, 네가 더 많이 알고... 그래도 지금 내가 만나는 안락 하지만 지겨운 남자하고 그것들을 맞바꾸겠어. 

벳 : 그럴래? 

티나  : 넌 강적을 만난 거야.   <4-11에피 중>


  

티나, 참 생뚱맞은 동문서답이다. 그녀는 벳의 질문을 회피하고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돌려 버린다. 티나도, 벳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었다. 그런데 밍기적거린다. 게다가 벳은 티나의 마음을 알면서도 조디에게 향하고 있다. 벳은 이전의 관계 회복과 (티나) 새로운 관계 형성 (조디) 사이의 갈림길에서 지금 후자를 선택했다. 왜? 

  


과거의 상처 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은 자신에게 일어나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을 더욱 깊이, 오랜 기간 기억하기 때문이다. 

  


벳과 티나 사이에는 행복했던 기억들이 불행했던 기억들보다 압도적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종말에 이르렀을 때 서로에게 보여준 모습들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들은 수많은 행복한 기억보다 마지막 한 순간의 잔인함을 더욱 깊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보여준 서로에 대한 잔인함은 무기이기도 하다. 그들이 관계를 회복한 후에도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는 일들이 생길 때면, 지나간 상처들을 들춰내고 파헤칠 것이다. 이때 지난 불행의 기억은 감정의 칼부림으로 사용될 게 뻔하다. 인간은 원래 그렀다..

  


그녀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다. 자신들이 설령 지금 재결합 할지라도 그들이 사소한 다툼이라도 일어날 경우 서로에게 어떤 독한 말을 뱉어낼지 말이다.

 

  

겉으로는 쿨한 척 하지만 실상은 감정에 구질하게 구는 쪼다인게 인간 

  


과거의 상처들을 뒤로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의 변신? 이게 쉽다고 생각한다면, 세상을 좀 더 겪어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와 경제, 외교와 같은 이익이 오가는 분야에서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간의 관계는 이성과 합리보다는 감정적 요인에 의해 시작되고 종말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다. 성인 군자가 아니다. 쿨한 척, 대인배인 척, 젠틀하고 나이스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감정 얽매여 구질구질하게 구는 소인배요, 쪼다이며, 자신에게 생채기를 낸 사람에게는 끝없는 악의를 품는 게 인간인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좋은 게 뭐냐는?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현실에서 극복 불가능한 트라우마가 극복되고, 현실에서 쪼다스러운 인간의 심성이 극복 가능한 것이다. 그나저나 제니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는 극복한 거 같은데 도대체 왜 그러냐는. 4시즌을 제니의 시선으로 다시 보면 이해가 될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