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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엘워드

엘워드 3-11 Last Dance : 죽음은 철학을 하게 한다.

by R.H. 2009. 8. 14.

 


이번 에피는 데이나를 추억하는 에피다. 그러다 보니 감각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은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들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다 한다. 크게는 정치적인 발언과 철학적인 발언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정치적 발언 : 차별에 대해 

  


1.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데이나의 장례식을 집도하는 목사는 데이나가 삶의 동반자인 남편을 만나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강조해서 발언한다. 데이나는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유명 인사다. 목사가 그걸 몰랐을까? 듣다 못한 알리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데이나의 죽음이 안타까운 건 사실이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행복했다. 

  

기득권에서 보는 그녀들의 삶은 목사의 발언처럼 불행이다. 혹은 아예 그녀들의 삶의 방식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어차피 장례식은 1시간이면 끝나는 것. 알리스가 깽 판치고 일어설 이유는 없다. 그 한 시간 못 참을까. 제작진은 알리스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거다. 니들 이러는 거 짜증난다고. 

 


2. 혼혈아(인종차별) 문제를 언급하다. 

  


벳과 티나는 이제 법적 결별 수순을 밟으려나 보다. 그런데 벳은 안젤리카 양육권을 가지려 든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분명 티나가 낳은 애인데, 어떻게 벳이 100% 양육권을 가져가겠는가? 중요한 건 양육권이 아니라 벳의 발언이다. 

  


벳은 세상의 혼혈아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자신이 잘 알기에 안젤리카를 자신이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젤리카가 티나의 새로운 가정 속에 살면 주위에는 백인 뿐이기에 안젤리카가 소외감을 가질 것이라 한다. 그리고 안젤리카는 이러한 소외감을 세상에서 차고 넘치게 겪을 것인데, 집에서조차 그런 감정을 가지게 할 수 없다고 한다. 

   


인종차별이라는 좀 더 큰 문제보다는 혼혈아라는 좀 더 세부적인 문제만을 이야기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굉장히 파격적이다. 우리가 미드 많이 보지만, 그 안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거의 없다. 마치 불문율처럼 껄끄러운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여하튼 엘워드는 이 정도 수준이라도 인종차별에 대한 언급을 살짝 건드려 줬다. 

 


3. 성 차별에 대한 이야기. 

  


모이라는 여성으로, 성소수자로 IT 회사에 취직하려 했을 때는 퇴짜 맞았다. 그런데 남성으로 그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더니 이전보다 더 좋은 직급에 더 많은 보수를 받고 취직한다. 이에 제니는 여성이 남성보다 동일한 조건에서 낮은 대우와 보수를 받는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글을 쓰겠다고 한다. 그런데 모이라는 화를 낸다. 모이라는 사회적 차별을 맞서 싸우기보다는 남성 사회에 편입하고자 한다. 모이라는 남성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철학적 발언 :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1.불교식 화장 

  


데이나의 장례는 교회에서 치러진다. 그런데 데이나를 화장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화장하는 게 흔하진 않은데... 불교 문화가 남아있는 한국에서도 화장 시키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물며 미국에서, 그것도 교회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화장을 했다. 그렇다고 데이나가 생전에 불교 신자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의도된 것인가? 지난 포스트에서 적었듯이, 작가가 생각하는 죽음은 불교 사상과 맞닿아 있다. 죽음은 없고, 변화만이 있다고 발언한다. 이것은 환생의 개념이다. 



2. 탈레스 사상, 물 

  


또, 눈 여겨 볼 점은 데이나의 재 가루를 계곡에 가서 뿌린다는 설정이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물의 모습을 강조해서 보여준다. 물. 서양인이 생각하는 물은 어떤 의미일까? 서양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가 최초로 물에 대해 이야기 한 사람이다. 그가 말한 명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둘째, 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 철학자 탈레스에 대한 백과사전의 설명 참조. 

  


탈레스는 변화하는 만물에 일치하는 본질적인 것을 물의 특성에서 보았다. 지나가 버리는 시간과 덧없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 뭐냐는 질문. 이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은..변화 속에 영원함이 있다. 만물의 겉모습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근본은 변함없이 영원하다. 


  

3.에너지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는 파괴 될 수도 창조 될 수도 없고 형태의 변화만이 가능하다. 우주에서 천지창조가 되었을 때 생겨난 에너지의 양이 지금의 양과 동일하다. 우리의 영혼이 불멸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육체는 영원하다. 이 뭔 말? 나도 과학은 잘 모른다. 책에 적힌 바로는 물질은 에너지의 다른 형태이고, 우리의 육체 역시도 에너지의 다른 모습이란다. 즉, 우리의 육체가 죽으면 썩어 문드러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환된다. 이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작가는 이전 에피들에서부터 꾸준히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죽음은 없고, 변화할 뿐이라고 노래 가사로도 들려주고, 대사로도 들려주고, 영상으로도(흐르는 물의 모습 장면들)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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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라의 남성 기득권 편입에 대한 모습 

  

개인적으로  모이라의 배신 장면은 제작진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는 트랜스에 대한 거부감이 아닌 남성 기득권에 올라타는 모습에 대한 비난이라고 봅니다. 현재 우리나라 여권의 여성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모이라의 행동을 연상 시킵니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현실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이네요. 겉모습만 여성의 모습을 하고 남성 기득권에 편입돼서 이익을 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여성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성이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무기처럼 보일 정도니까요. 

  

누가 자신을 비판하기라도 하면 그때는 자신의 여성성을 내세우면서 당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자기가 필요할 때만 여자라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남성 기득권층에 들러 붙어 사는 모습. 우리나라 모 여성의원을 보면 울화가.  제가 보기엔 그 사람들 모습은 모이라보다 만 배 이상 비호감입니다.  

  

모이라는 여성성을 아예 포기라도 했는데, 일부 여성 정치인들은 교묘하게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남성 기득권층의 권력에 편승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