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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엘워드

엘워드 2-9 Late Later Latent : 날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by R.H. 2009. 8. 14.

 

 

벳, 이번에도 눈치가 없는 게냐? 


우여곡절 끝에 티나와 벳은 관계 회복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이번 화에서 벳은 티나의 초음파 검사에 동행하고, 티나의 아파트에 들른다. 그리고 이들은 관계를 맺는데, 티나는 벳을 부른다. "come here."  그리고 티나가 벳에게 키스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명 티나가 먼저 벳을 부르고, 먼저 키스를 했다는 점이다. 즉, 티나는 벳을 원한다. 무엇보다도 벳과의 관계 회복을 원한다는 제스쳐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벳이 돌아가는 장면에서 하는 대화. 


 
티나  " Bette, I just wanna tell you that..."
벳  " I Know. This doesn't mean that we are back together."
티나  " Let's not let it mess everything up. " 


 
티나가 말한 첫 번째 문장의 that 이하의 부분은 과연 어떤 말이었을까? 벳이 지레짐작한 "이것이 우리가 다시 함께하는 게 아니다"는 의미일까?  벳의 말에 티나는 "모든 것을 망치지 말자." 라고 모호하게만 말한다. 벳이 한 말에 '맞다' 혹은 '아니다'라는 언급은 없다. 티나가 말한 it 과 everything은 또 무엇을 지칭하는 걸까? 벳이 짐작하는 우호적 별거의 관계일까? 아니면 그들의 총체적 관계를 말하는 걸까?
  


벳의 짐작은 틀린 것 같다. 티나는 그들의 관계 자체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티나가 말하려던 that 이하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벳이 티나의 아파트를 나선 뒤, 티나의 씁쓸한 표정. 그리고 그 날 저녁 헬레나가 티나를 방문했을 때 보여준 티나의 극도의 혼란스런 태도를 지켜보면, 위의 저 대화에서 티나가 하고 싶었던 말은 벳의 말과는 다른 것이지 싶다. 이번에도 벳은 눈치가 없고, 무디다. 그들의 섹스 이전에 분명 티나가 사인을 보냈건만...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통제
 

벳이 그토록 싫어하던 정신과 상담. 그런데 이제 그녀 혼자 찾아갔다. 


 
벳 "좋았지만 슬펐어요. 난 그녀를 깨지는 유리병처럼 조심스레 대했는데, 그녀는 강해진 것 같아요."
댄 "그녀가 강해진 건 좋은 거 아닙니까?"
벳 "맞아요. 하지만 그건 더 이상 그녀가 날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소유욕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와 같다. 벳이 티나를 통제하고 소유하려 드는 이유는 티나가 자신을 떠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티나가 강해져서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떠날 가능성도 커진다고 생각한다. 벳은 티나에 대해 약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티나가 물질적  필요에 의해서 벳과 함께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티나가 물질적 필요만 생각했다면, 이전에 자신이 만나던 변호사와 결혼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었을 것이다. 물론 티나가 물질적 필요 부분을 완전히 배제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후 시즌에 돈 문제로 참 고약하게 나온다.)
  


하지만 분명한 건 티나는 벳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점이다. 벳은 티나의 이런 진심을 믿지 않는 것인가? 사실 현실적으로는 벳의 생각이 어느 정도 맞다. 안타깝게도 사랑을 묶어두는 데는 진심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서로에 대한 필요가 사랑을 묶어두는 요인 중 하나이긴 하니까.
  


벳이 어린 시절 겪었던 상실의 경험을 보자. 그녀의 엄마는 벳과 가정을 버리고 떠나버렸다. 이복 언니 킷 역시 벳과 함께한 시간이 많지 않았다. (1-2 에피에서 킷이 벳에게 하는 말 중에서  "I apologize that I didn't turn up for your 12th birthdaty party. And I apologize for disappearing from your life for so many years." 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벳은  "그들이 날 필요로 했다면 날 떠나지 않았을 거야." 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어린 시절 대부분은 바람끼 많은 아버지와 단 둘이었다. 아버지가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낸다고 생각해 볼 때, 그녀는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혼자 지냈을 것이다. 홀로 있는 집은 적적하기 이를 데 없고,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도 집안에 울려 퍼졌을 것이다. 어쩌면 TV 를 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고요가 집 안에 가득했을지도... 벳에게 상실이란 공포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자신을 떠나는 게 너무도 두려운 벳은 그 누군가를 붙잡아두기 위해 능력 있는 제공자(Provider)가 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벳이 생각하는 Relationship 은 사랑+필요 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관계에서 자신이 상대방에게 필요한 대상, 즉 제공자가 되고자 한다. (시즌1의 8에피의 상담 신에서 그녀는  "My greates fear about being a parent is that I won't be a good enough provider." 라고 말한다. 단순히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까 두렵다는 말이 아니라 뭔가를 충분히 제공해주지 못하는 부모가 되지 못할까 두렵다고 하는 것이다. 벳이 얼마나 "줄 수 있는 사람" 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벳의 어린 시절 가정 환경은 엄마와 자매의 결핍, 아버지의 바람끼 등으로 확실히 불안정하다. 이런 불안한 경험을 가진 그녀는 자신이 완벽한 통제를 하지 않으면 가정이 무너질 거라는 두려움이 있다. 반면, 티나는 어려서부터 안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듯 하다. (정확하지는 않다. 앞뒤 정황상의 추측일 뿐이다.) 즉, 가정 파괴의 불안을 겪지 않아서 그게 뭔지 잘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 에피의 소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늦은, 나중에, 숨겨져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