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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엘워드

엘워드 1,2 시즌 제니 : 자아 찾기

by R.H. 2009. 8. 19.

                                      



1시즌 제니 : 혼돈과 파괴   최초 작성일 2008-08-22 02:53:50

 


"한 영혼이 소형 범선이 되어 무한한 욕망의 바다 위에 버려진 채 근심과 무리의 볼모지에서 지식의 신기루 속에서, 세계의 비이성 가운데 헤매게 되었다."  - 미셜 푸코 <광기의 역사>



제니 쉑터는 대학을 막 졸업한 중서부 출신 작가 지망생이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을 출판해 주겠다는 곳은 없고, 슈퍼마켓 캐셔나 웨이트레스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간다. 제니는 경제적 생활고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글쓰기 능력에 대한 회의감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그리고 벳과 티나의 옆집으로 이사오면서 그녀들의 삶을 엿본 제니는 더욱 깊은 정신적 혼란에 빠진다. 그녀들의 삶을 엿본 순간은 바로 제니의 자아 찾기 출발점이다. 혼돈과 파괴는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그녀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파괴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녀는 무전 여행, 산에 오르기, 길 위에 혼자 떠돌기, 바다에 보트 타고 홀로 나서기 등을 통해 자아를 찾으려 한다. 제니는 자기 자신을 광기 속에 내던지고, 고립시키고, 파괴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려고 몸부림 치는 것이다.



제니는 우리의 20대 모습이다. 저렇게 반 미치광이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저렇게 주변에 피해 주고, 미움 받고, 동시에 자신도 상처 받고, 배반 당하고... 최고의 안습 캐릭터 제니는 우리 20대의 방황이다. 제니의 이기적인 성격, 주변에 폐 끼치기, 어느 날 갑자기 성공해서 오만방자 해지기. 이게 현실의 우리와 더 가깝지 않을까? 우리는 극의 사랑 받는 캐릭터들처럼 멋지고, 쿨하고, 지적이고, 위풍당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제니는 왜 저리도 똘아이 짓을 한단 말인가? 작가는 제니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듯. 뭐, 사실 그렇다. 우리가 일상에서  미치는 건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알 수 없는 공허감, 무력감, 두려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 

 


드라마 내에서도 미움받고 시청자에게도 미움받는 캐릭터. 그래도 쿨한 쉐인이 “어쨌든 넌 서바아버”라고 말해준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허무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견디라고. 그러다 보면 적어도 서바이버는 된다고. 근원을 알 수 없는 감정의 복잡에 압도될 때 미친 짓을 해서라도 그 시간들을 견뎌내라고... 고통에 몸부리치는 제니를 모습을 보면서 또라이 제니라고 놀린 게 미안할 지경이다.

  


2시즌 제니 (1) : 카니발, 카니발리즘   최초 작성일 2008-09-15 09:44:30

 


Cannibalism(카니발리즘)의 의미와 자세한 설명은 아래 링크 참조 

http://www.websters-online-dictionary.org/definition/cannibalism 


2시즌  제니의 글쓰기 장면,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장면, 독백 등에는 놀이동산이라는 명확한 공통점이 있다. 2-1 에피에서 팀이 오하이오로 떠나기 전 제니의 글쓰기 장면을 보자. 그녀의 소설 속에서 부모는 싸우고 아버지는 떠난다. 그리고 어린 소녀는 "Don't  leave.",라고 나지막이 말하는데, 그 때 떠나는 아버지의 얼굴이 드러난다. 팀이다. 그녀에게 있어 팀은 붙잡고 싶은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을까? 

 


중요한 것은 이때 나오는 배경 장면이 놀이 동산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또 다른 상상 (혹은 이야기) 속에서 놀이 동산의 군중들은 괴물의 모습을 하고 제니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군거린다. 제니는 군중을 괴물로 생각하고 있다.


 


제니가 혼자 히브리어를 웅얼거리며, 괴물 같은 모습을 한 삐에로의 입 속에 자신의 사진을 집어넣고 있다. 그리고 서커스 장막 속에는 그녀의 부모의 사진이 들어 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괴물과도 같은 타인들에 의해 잡혀 먹혔고, 그녀의 부모는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녀의 방에 붙어 있는 사진들 속에도 놀이 동산이 군데군데 보인다.

 




제니가 어린 시절 겪었던 끔직한 경험의 장소가 놀이 동산이었다는 직접적인 표현일 수도 있지다. 하지만 2시즌에서 일관되게 나오는 놀이 동산의 으스스한 모습들... 단순히 그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저렇게도 많은 장면을 삽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제니는 무엇일까?

  


놀이 동산이라는 말은 축제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다. 축제는 영어로 카니발이다. 그런데 이 카니발이라는 말은 카니발리즘에서 유래했다. 카니발리즘은 식인 풍습을 일컫는 말인데, 원시 부족 사회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거나 사람을 죽여서 먹는 행사는 일종의 부족 축제였다. 누군가를 잔인하게 희생 시키고 그 이외의 구성원들이 이를 즐기는 축제는 원시 사회만이 아니라 중세와 근대 사회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지속되었다. 이를테면 마녀를 불태워 죽이거나, 단두대에서 목을 베는 처형을 수많은 군중 앞에서 하는 것들 말이다.

  


공개 처벌의 주된 목적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경각심을 주는 것이었지만, 군중들이 그러한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즐기는 쾌감도 상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공개 처형을 보라고 강요하지 않는데도 자발적으로 앞다투어 보고자 했으니 말이다.


   

이제 제니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제니는 어린 시절 겪었던 고통의 기억이 있다. 그녀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과 이를 수수방관한 주변인들을 군중으로 묘사하고 있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거나 혹은 지켜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괴물 같은 군중 말이다. 그리고 제니는 카니발리즘(식인 풍습)의 희생자고, 그들은 카니발(축제)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2시즌에 나오는 마이클을 잠깐 보자. 그의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저질 행동이 분명하다. 모두에게 분노를 사고도 남을 만하다. 하지만 쉐인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은 마이클을 용서하는 것 같다. 그런데 유독 제니만이 오랫동안 마이클에게 강한 적개심을 표출한다. 그 이유는 마이클이 카니발리즘의 군중들처럼 제니의 고통(쉐인과 카르멘 사이에서 이용 당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이클은 남의 고통을 지켜보며 쾌락을 느끼는 군중으로, 제니는 카니발리즘의 희생물로 나타난 것이다.

 

<위의 노트에 제니가 쓰는 단어는 " MONSTROSI..." (기괴함) 인데, 옆 사진에 마이클의 티셔츠에 쓰여진 단어는 "MONSIEUR" (무슈, 영어의 미스터라는 뜻) 이다. 뜻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얼핏 보면 생긴 게 비슷해 보인다.  제니에게 있어서 마이클은 괴물 같은 잔인한 구경꾼이다>



엘워드 2시즌 제니 (2) : 자학을 통해서라도 얻고 싶은 자율성  최초 작성일 : 2008-09-15 14:41:17

 


2시즌에서 제니는 자신을 끊임없이 학대한다. 왜 그러는 걸까?



우선 그녀의 상상(글쓰기)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자. 놀이 동산에서 두 여자 아이가 선반 위의 모형물들을 향해 총을 쏘고 있다. 그런데 그 선반 위에 제니가 앉아 있다. 총을 쏘고 있는 두 소녀는 이전에 제니의 상상에 나왔던 제니 자신을 반영한 아이들이다. 왼쪽의 꼬마는 2-1 에피에서 팀이 떠날 때 제니가 했던 글쓰기 속의 제니다. 오른쪽 꼬마도 나왔는데 정확히 어느 에피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즉, 제니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총으로 쏘고 있는 것이다.



제니는 2시즌 초반부터 카르멘과 쉐인의 관계를 눈치 채고 있었다. 2시즌 6에피에서 제니는 자신의 글쓰기에 서커스단을 묘사한다. 여기서 카르멘은 유혹의 손길을 요염하게 보여주는 무희로, 쉐인은 이 무희에게 다가가는 조련사로 등장한다. 그리고 제니는 공중 곡예대에서 카르멘과 쉐인을 지켜보다가 추락한다. 이전에 인간 관계의 비유로서 공중 곡예라는 포스트를 올린 적이 있다. (1시즌 11에피 중에 공중 곡예사인 로빈의 등장) 그러니까 지금 제니는 인간 관계의 어긋남으로 인해 공중 곡예를 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봉을 잡지도 못하고, 추락하는 것이다. 즉, 그녀의 인간 관계는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몸을 던져 버린다.



 


2시즌의 13 에피에서 제니는 스트립 쇼까지 하면서 자신을 학대한다. 이를 지켜본 쉐인은 제니를 염려한다. 이제 제니의 말을 들어보자.



"왜냐면 내가 거기 있을 때 그건 나의 선택이거든. 내가 옷을 벗을 때, 내가 내 가슴을 보여주고 싶을 때, 그건 나의 선택이야. 그리고 내가 그만하면 그만 하는 거고. 그리고 그런 것들이 날 기분 좋게 만들어. 왜냐면 내가 결정하는 거니까.<I'm in charge.> 그리고 이건 어린 시절 나에게 일어났던 거지 같은 일들을 기억하는데 도움을 줘. 난 이걸 해야 해. 나한테 너무 중요한 거라고."

 


제니는 어린 시절 타인에 의해 강제로 옷이 벗겨져 자신의 몸을 드러낸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의 결정으로 옷을 벗고, 몸을 드러내는 행위를 통해 자율성을 되찾고 싶어한다. 또한, 제니의 인간 관계에 대한 기억은 수동적으로 당한 것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관계의 영역에서 자율성을 얻고 싶어한다. 그런데 쉐인, 카르멘과의 삼각 관계에서 역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번에도 역시 당할 뿐이다.



그리고 2시즌 13에피에서 결국 그녀는 스스로의 몸에 칼을 대고 만다. 이전에 상상(글쓰기) 속에서만 자신을 해치던 것과 달리 현실에서 진짜로 자신을 해한 것이다. 2시즌 전체에서 제니는 삶과 관계의 영역에서 자율성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외친다. "I need help."



누더기가 되버린 제니의 영혼, 그녀를 감싸 안아 줄 사람은 누구일까? 그녀 자신 밖에 없는 걸까? 아니면 쉐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