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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엘워드

엘워드 3~6 시즌 제니 : 상처, 그리고 자기합리화와 파멸

by R.H. 2009. 8. 19.

최초 작성일 2009-03-10 16:56:17

 

3, 4 시즌 제니 : 상처의 마약에 빠지다.   

 


제니 : 나는 왜 부유한 집에 태어나지 못한 걸까?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책상에 앉아 글 쓰는 것 뿐인데.
친구 : 왜냐면, 부자들은 글을 쓸 만큼 고통스럽지 않으니까.                    1-8에피소드 중에서

 


제니가 얼마나 많은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왔는지 우리는 안다. 팀, 카르멘, 쉐인, 니키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부모와의 관계 역시 뒤틀려 있다. 또한 그녀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그녀는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는다. 팀, 마리나와의 관계가 무너지면서 낯선 대도시에서 그녀는 경제적 자립을 해야했다. 정신적 상처에 더해진, 경제적 고통. 그녀는 친구에게 자신의 곤궁함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이때 그녀의 친구가 하는 말을 뒤집어 보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말이다. 제니에게 있어서 '상처' 와 '고통' 이라는 단어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녀는 작가다.

 


그리고 그녀는 성공한다. 그녀의 책은 유명 출판사에서 출판되고, 영화화가 되면서 너도나도 판권을 구입하고 싶어할 지경이다. 상처와 고통은 그녀에게 작가로서의 성공과 부를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자신을 비판하고, 충고하는 편집자에게 F**k you 라는 욕지거리를 하고 나가는 제니퍼 쉑터.]

  

편집자 : 제니, 당신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어요.
제니 :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난 피해자였어요. 왜 내가 그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편집자 : 당신이 그 책에서 빠뜨린 건 당신의 '강인함', '결연함' 그리고 '강화된 자각' 이에요.
제니 : 난 살아 남았어요.
편집자 : 맞아요. 그리고 내가 관심 있는 건 단순히 살아 남은 게 아니라, 성취한 것이에요.  '피해자' 의 위치를 포기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것은 편하고, 안락하니까.         
                                                                                                   3-8 에피소드 중에서

 


제니의 책이 처음 출판되기 직전, 그녀의 책을 편집하기로 한 담당자는 제니에게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것을 충고한다. 그 편집자는 매우 유능한 사람으로 보인다. 아마도 제니의 책이 대박 날 것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제니의 책 내용을 비판하고, 대대적으로 수정할 것을 충고한다. 하지만 제니가 수정하지 않을 것을 고집 부리자, 끝내 제니의 책을 맡지 않는다. 그 편집자 역시 제니와 유사한 고통의 기억이 있는 사람이다. 작가에게 "상처와 고통" 은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그 편집자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 선배로서 제니에게 상처와 고통을 받는 피해자 역할에서 벗어나길 충고하는 것이다.

 


또한, 여러 차례 잡지사 기자들이 그녀의 책에 대해 혹평을 하는데, 제니는 그 어느 것 하나 진중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스테이시 머킨이라는 기자를 골탕먹일 생각 뿐이다.

 


제니는 피해의식에서 빠져 나오라는 주변의 모든 충고와 비판에 귀를 막아 버린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훌훌 털어내지 못한다. 아니, 버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처와 고통이 제니를 작가로서 성공하게 만든 요인이니까. 상처는 감정을 자극하고, 자극된 감정은 글을 남긴이다. 이제 제니에게 있어서 상처는 마약이 되었다.

 


마약을 하면 창작이 잘된다는 일부 예술가들이 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술은 더 잘 될지 모르지만, 삶을 망가트리는 것 아니겠는가. 제니에게 상처는 멋진 글 쓰기를 하게 만드는 일종의 마약인 것이다. 동시에 이것이 그녀의 삶을 갉아 먹기 시작한다.

 

 

[자신을 혹평한 기자의 집에 새벽 4시에 찾아가 고함 지르는 제니.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고, 귀를 막고 있다. 자신을 향한 모든 비판에 귀를 막는 제니의 태도.]

 

 

5, 6 시즌 제니 : 자기합리화의 끝은 결국 파멸

 


제니의 글에 대한 편집자와 기자들의 비판, 친구들의 야유에도 그녀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한다. 주위 비판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엄한 개를 안락사 시키고, 새벽 4시에 기자 집에 찾아가 난동을 부리는 해괴한 일을 벌인다. 자신의 책에 친구들을 팔아 먹었으면서도, 되려 큰소리다. 그런데 이런!! 그녀의 책이 성공한다. 게다가 영화화가 되는데, 너도나도 판권을 구입하고 싶어한다. 이제 그녀는 확신한다. "내가 옳은 거 맞잖아."

 


그녀의 상처 품기 방식이 가져온 성공과 부로 인해 제니는 자신에 대한 지나치게 확신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며, 모든 일에 자기 식의 해석을 한다. 게다가 그녀는 글 쓰는 사람인지라, 논리적이기까지 하다. 분명 그녀는 틀렸는데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틀린 게 없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

 


또한, 그녀는 피해의식에 갇혀 있기에, 자신의 뒤틀린 태도,  비성숙한 태도에 대해 관대하다. 나는 피해자니까 이렇게 해도 된다는 식의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버린 모양이다. 이런 그녀의 태도가 6시즌에 아주 잘 나와 있다. 예를 한번 보자.

 


맥스는 스스로를 남자로 규정하고 있기에 자신의 임신이 못마땅하다. 그런데 제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맥스에게 엄마가 되는 걸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느니, 가슴, 엉덩이, 곡선의 여성성이 아름답다느니의 생각 없는 말을 거리낌없이 한다. 제니의 발언이 부적절한 게 분명한데, 그녀의 말만 들어보면 타당하다.

 


제니는 알리스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부도덕한 짓을 한다. 그래 놓고는 아이디어라는 것은 모든 작가들이 함께 사용하는 우물 같은 거라나? 중요한 건, 재능을 가지고 시장에서 먹혀 들어갈 상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는 논리를 편다. 분명 제니는 도둑년인데, 그녀의 말만 들으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딜런의 몰카 폭로는 또 어떠한가. 관계를 시작할 때는 완전한 정직함에서 시작해야 한단다. 이 말만 들어보면 옳은 말이다. 그런데 제니의 행동은 분명 부적절하다.

 


제니는 벳과 캘리의 관계를 오해한다. 이에 벳은 켈리가 와서 술을 마셨고, 컵을 깨서 치웠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제니는 곧이 듣지 않는다. 자신이 잘못 봤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심도 없다. 자신은 옳고, 벳은 거짓말을 한다고 확신에 차있다. 자신이 분명 잘못 보았음에도, 자신이 본 것을 자기 맘대로 해석한다.

 


이 모든 것이 자기합리화가 습관화된 제니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걸 고칠 생각조차 않는다. 고쳐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 그녀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했고, 이로 인한 성공의 경험이 있다. 사실 세상 만사에서 고집 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동시에 그 고집이 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뭐, 명심한다고 해서, 그 덫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인들의 충고에 완전히 귀 막아버리고, 자신의 상처를 버릴 시도조차 하지 않고, 출판사 편집자의 말처럼 피해 의식의 안락함에 안주하는 제니. 그녀의 고집은 성공을 가져왔고, 성공은 자기 합리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자기합리화의 끝은 결국 파멸 뿐이다. 제니가 실제로 죽었다는 결론을 곧이곧대로 듣는다면, 그녀의 죽음은 자기합리화의 종착역을 보여주는 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