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a fire has been kindled by my wrath,
one that burns to the realm of deathe below.
It will devour the earth and its harvests
and set afire the foundations of the mountains.
“I will heap calamities upon them
and spend my arrows against them.
I will send wasting famine against them,
consuming pestilence and deadly plague;
분노의 불이 일어남에, 지하세계를 불태우고, 땅과 그 소산을 삼키우며, 산들도 불붙게 하는 도다. 내가 그들 위에 재앙을 쌓으며, 내 활로 그들을 쏘리로다. 내가 그들에게 황폐한 굶주림을 보내리니, 역병과 독한 파멸에 삼키울 것이라.
<신명기 32장 22~23절>
신명기 32장 1~47절은 모세의 시(詩) 다. 대부분이 적들을 "저주" 하는 적나라한 표현으로 채워져 있다. 사실 저주와 분노의 시는 시편에 널려있다. 혹자는 성경의 저주시들이 거북하다고 한다. 역사적 기록이야 원래 피의 기록이니 그렇다 쳐다, 시(詩) 마저도 피를 노래하는 것은 어딘가 못 마땅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Holy Bible 에 실린 시라면 말이다.
여기서 성경과는 좀 상관없는 쓸데없는 얘기를 좀 하자면..
인간은 기쁨과 웃음을 감출 수는 있어도 분노와 슬픔은 잘 감추지 못한다. 너무 행복해도 타인에게 거슬리지 않기 위해 기쁨을 자제하는 게 인간이다. 혹은 기쁘지도 않으면서 기쁜 척을 하기도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은 만고의 진리다. 하지만, 속으로는 배알이 꼬여도 기쁜 척을 해주는 게 사람이다. 면전에 물이라도 끼얹어버리고 싶은 진상 고객 앞에서 참고 웃고, 재미 더럽게 없는 상사의 농담을 억지로 웃어 주느라 고생하는 게 우리다. 한마디로 기쁨과 웃음은 가식이 상당하다.
그런데 화가 머리 끝까지 뻣치거나 부끄러움에 몸 둘바를 몰라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얼굴 붉어지는 게 어디 인간의 의지로 참아지는 일이던가? 그리고 극한의 슬픔에 눈물이 터져 버리면, 인간은 주체를 못한다. 눈물이 제 스스로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그런 면에서 분노와 수치, 슬픔 등의 어두운 감정은 꽤 정직하다.
저주의 노래를 종교라는 관점에서 보면, 거슬리겠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마음에 드는 시다. 온화한 찬양시보다 불 같은 분노의 저주시가 더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틈나는 대로 저주를 퍼 붓는 게 잘하는 짓은 아니지만...
세상의 사악한 자들의 악다구니와 오만방자함.. 맘에 안 드는 놈은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거짓을 흘리고, 협박하며, 코너로 모는 후안무치 악당들이 설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서정시만 노래할 수 있겠는가...
교과서에 실린 일제시대 서정시인들의 시가 거슬리기 짝이 없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그런 시대에 꽃이 아름답다느니, 하늘이 푸르다느니... 우습다. 악이 설치는 세상에서는 저주시가 제격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성경의 저주시들을 볼 때면, 마치 암송해서 써 먹으라고 적어둔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미친 시대는 언제나 반복되니, 그 때에 불한당들을 향해 이 저주의 시들을 퍼부어라, 고 해 준 듯 한 느낌이다. 물론, 혼자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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