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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스노우 워커 (The Snow Walker, 2005) : 담대히 걸으라, 형제여

by R.H. 2009. 8. 18.


< 주의! 스포일러>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건방지고 자만심 가득한 백인 비행사 찰리는 북극해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 에스키모인들에게서 아픈 소녀를 병원에 데려다 줄 것을 부탁받고, 비행하던 중 사고로 추락한다. 그리고 허허벌판에서 생존하는 과정에서 에스키모 소녀 카날라와 교감을 통해 정신적 성장을 이룬다는 이야기.

 

찰리의 깡통 음식과 설탕물 음료. 이것들이 문화적 우월감에 차 있는 찰리의 우월한(?) 물건들이다.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먹는 에스키모인을 경멸하는 찰리, 그러나 그가 먹는 스팸과 콜라, 초콜릿이야 말로 경멸스러운 정크 푸드다.  또한, 초콜릿을 선심 쓰듯 건네는 그의 태도는 전형적인 북미인의 오만방자함이다.

 

 

    “네가 퇴원하면, 스테이크 식당에 데려갈게." 라는 찰리의 소박하고 따뜻한 소망은...

 

이 영화는 멜로물이 아니다. 낯선 곳. 낯선 유색인종 소녀. 여리고 착하기만 한 그녀에게 호의를 베푸는 선한 백인. 그리고 그들의 사랑. 뭐 이런 식의 뻔한 로맨스가 아니다. 반대로, 주인공 찰리는 에스키모인을 경멸하고, 소녀는 병에 걸렸지만 강하다. 소녀가 땔감을 한 무더기 들쳐 메고 오는 모습, 두더지(?)를 때려 잡는 모습, 순록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저 아가씨가 죽을 병에 걸린 게 맞나?" 싶을 정도다.

 

또한, 카닐라는 약간의 영어를 할 줄 아는데도, 영어 할 줄 아냐는 찰리의 질문에 대꾸도 안 하는 까칠함을 보인다. 누구나 영어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찰리의 태도가 맘에 안 든다는 카닐라 식 표현인 듯.

 

이 영화는 남녀간 사랑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깨닫고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남녀간의 애정이라기보다는 형제애에 가깝다. (이 영화의 기반은 Farley Mowat 의 "Walk Well My Brother" <담대히 걸으라, 형제여>라는 단편 소설이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꼭 대자연 속에서의 걸음에만 영혼의 성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 지금, 이 곳에서 만나고 스치고 헤어지는 인간들 속의 걸음에서 우리는 배우고 성장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태도를 통해 나의 영혼이 자극되는 것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나의 태도는 누군가의 영혼을 자극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성찰을 하고, 언제가 있을 나의 죽음은 누군가를 성찰하게 할 것이다. 물론, 성찰을 하려는 자에게만.

 

찰리가 타인과 교류하고, 타인의 죽음을 지켜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전쟁에도 참가했고, 살면서 여러 번 타인의 죽음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 동안 겪은 만남과 헤어짐은 그저 스쳐가는 일상에 불과했다. 그가 성찰하려는 태도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자연 속에서 비행기 추락이라는 축복을 받는다. 그의 영혼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이기에 "비행기 추락" 이라는 사고는 그에게 축복이다. 물론 받고 싶지 않은, 달갑지 않은 축복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인간은 죽음의 문턱까지, 감정의 극한까지 몰려가는 혹독한 경험을 마주하고서야, 그제서야 성찰하는 것을... 정신(영혼)의 성장이라는 문제에 있어, 우리는 정말 게을러 터진 것이다.

 

카닐라와 걷는 도중에 발견한 어느 비행기 잔해. 그 안의 해골. 찰리는 해골은 안중에도 없다. 그는 비행기 잔해 속에 남아있는 쓸모 있는 물건들의 발견이 기쁠 뿐이다. 이런 태도를 가진 찰리를 변화시킨 건 카닐라다. 그는 카닐라와 함께 그 이름 모를 비행사를 위해 무덤을 만들고, 그 비행기 잔해에서 발견한 쓸모 있는 물건들을 무덤에 넣어준다. 찰리는 카닐라를 통해 성찰의 태도를 배운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찰리의 정신적 도움자인 그녀 역시 죽는다. 이제 찰리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그녀의 무덤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제 홀로 걷는다. 이제는 혼자 힘으로 걸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본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 이 "도시에 사는 한 인간의 구도의 길" 이라면,  <스노우 워커> 는 "자연에서 한 인간의 구도의 길" 이라는 느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생기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뭉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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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 라는 말의 어원에 대한 오해가 많은데, 이에 대한 설명은 아래 위키백과 참조

http://ko.wikipedia.org/wiki/%EC%97%90%EC%8A%A4%ED%82%A4%EB%AA%A8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 "Northwest Territories" 는 캐나다의 연방주 가운데 하나. 아래 위키백과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Northwest_Terri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