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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식스틴 블럭 (16 Blocks, 2006) : 모든 것을 바꿀 바로 이 순간

by R.H. 2009. 9. 13.

 

<스포일러 주의>


반쯤 감긴 눈꺼풀, 지친 어깨, 무거운 발걸음. 잭 모리스(브루스 윌리스) 는 피곤하다. 지난 밤 야근이 피곤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피곤하다. 경찰인 그는 만사가 귀찮다. 어쩌면 자기 자신이 귀찮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 일에 열의 따윈 눈곱만큼도 없다. 주변 사람들 역시 이런 그를 잉여 인력 취급한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 8시. 그는 법정에 증인으로 서는 에디를 오전 10시까지 호송하는 임무를 맡는다. 거리는 고작 16블락 떨어진 법원. 넉넉잡고 두어 시간이면 끝날 간단한 업무. 그러나 이 짧은 거리, 짧은 시간은 잭 모리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에디가 법정에서 증언하려는 것은 경찰 비리와 공권력 남용에 대한 것이다. 이와 관련된 비리 경찰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에디를 죽이기 위해 그들은 벌떼처럼 달려든다. 자, 이제 잭 모리스는 선택해야 한다. 잭 역시도 비리에 연루된 더러운 경찰이다. 에디가 법정에 선다면, 잭 모리스 역시 무사할 수 없다. 잭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에디의 죽음을 방관해야 한다. 프랭크 말대로, 술 병 하나 집어 들고 자신이 속한 곳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가 속한 곳이란 무료한 일상, 그러나 뭔지 모를 피곤함이 가득한 곳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한 비굴이 가득한 곳이다. 양심과 정의가 없는 곳은 바로 그런 곳이다.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비틀거리는 삶이 있는 곳.

 

Get you back to you belong. This changes everything, Jack.


하지만 잭은 프랭크가 쥐어준 술병을 내려 놓는다. 자신의 비굴함과 나약함을 외면하기 위해 그가 의지해 온 술. 그는 더 이상 양심과 진실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가 술병을 내려 놓은 그 순간은 바로 스스로를 건져내는 시작이다. 그는 에디를 구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잭 모리스는 자신이 직접 법정 증인이 되고 죗값을 치른다.

I was supposed to meet you. That was a sign. You saved my life.

 

누구에게나 변화의 순간, 변화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잭 모리스가 술에 취해 진실을 외면하고자 했듯이,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형태의 무언가에 취해 진실을 외면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진실 앞에 소환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될 것인가. 자기 기만의 비틀거리는 삶을 계속할 것인가, 자기 자신을 발가벗기는 진실을 마주할 것인가...

 

P.S  <마이클 클레이튼> 과 <16 블락> 은 비틀거리는 삶을 사는 중년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마주하게 된 “진실의 순간” 이라는 점에서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전자가 섬세하고 세련된 느낌이라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다. 특히 <16 블락> 은 주인공 모리스가 과거에 어떤 비리를 저지른 경찰이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8~10시 사이의 사건에만 집중했다. 반면에 <마이클 클레이튼>은 사건의 내용을 구구절절 모두 얘기하는데다가 사건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복잡한 감이 있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주제는 동일하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방식은 <마이클 클레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