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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뱀파이어의 키스 (Vampire's Kiss, 1989) : 고독한 현대인

by R.H. 2009. 8. 18.

<스포일러 주의>

 

제목 : 낚였어요.

 

뱀파이어라는 단어를 보고 이 영화가 전형적인 뱀파이어 공포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키스라는 단어를 보고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다면 그것도 오산이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블랙 코미디? 그보다는 작가주의 독립영화 같은 느낌이다. 한마디로, 제목을 보고 이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면, 확실히 낚인 것이다. 게다가,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인 것을 보고, 그간 흥행에 성공한 그의 영화 분위기를 생각했다면, 정말 제대로 낚인 것이다.

 

주제 : 현대인의 고독


영화의 오프닝에서 보이는 무미건조하고 각박해 보이는 회색 빛 도시의 모습은 도시라는 섬에 고립된 주인공의 고독과 소외를 나타낸다. “도시 속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다.


주인공 "풀"은 이 도시에 있는 거대한 건물 사무실 속에 앉아 업무를 본다. 자세히 보자. 그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홀로 고립된 사무실에서 일하고, 그나마 그가 유일하게 대화하는 여비서를 학대하는 수준으로 못살게 군다. 이는 그가 타인과 교감하는 능력이 없으며, 사회성이 결여된 고독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의 아파트는 어떠한가. 그에게는 가족도 애인도 심지어는 애완 동물조차 없다. 물론, 그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폴은 미술관에 그녀 혼자 덜렁 내버려두고는 온다 간다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렸다. 그가 얼마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없으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툰 인간인지 보여준다.

 


그의 아파트에 걸려있는 그림은 현대인의 고독을 형상화한 에드워드 하퍼의 그림과 같은 느낌이다. 그림 속에 홀로 서 있는 남자는 그들과 함께 있으나, 그들과 함께 있지 아니하다. 현대인의 고독은 바로 이와 같다. 도시의 수많은 군중 속에 홀로 서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다.

 

그리고 어느 화창한 날, 창 밖을 내다본다. 거기에는 연인들이 키스하고 있다. 폴은 이들이 부럽다. 부럽다 못해, 저 여자와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저녁에 바에 혼자 앉아 있는 그녀를 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일이 술술 풀리고, 그녀가 폴의 아파트에까지 왔다. 그들은 사랑을 나눈다. 허나, 이런... 그녀는 뱀파이어다. 그녀에게 피를 빨린 폴은 자신도 뱀파이어가 되었다고 믿으면서, 벌레와 생 닭을 먹고, 심지어 사람의 피를 빨아 먹으려 한다. 과연 그녀는 진짜 뱀파이어일까? 진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다시 그가 그녀를 만난 바의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저녁에 바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던 지점까지는 실제로 일어난 일 같다. 영화 후반부에 그녀가 폴의 이름은 알고 있는 걸 볼 때 말이다. 하지만, 폴의 그 여자 꼬시기 작업은 실패했던 것 같다. 추측 건데, 낙심한 폴은 그녀에 대해 자기 맘대로 상상하기 시작하고, 자신과 그녀는 뱀파이어라는 같은 종족이라고 믿기 시작한 것 같다. 한마디로, 지독하게 외로운 폴은 상상 속에서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현실에서 그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데 너무도 서툴기 짝이 없기에, 그는 상상 속에서 사랑을 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다. 바에서 여자들을 잘 꼬시는 것처럼 묘사되는 그의 모습 역시도 그의 망상에 불과할 것이다.

 

<에드워드 하퍼의 "Night hawks", 1942>

                                                  

에드워드 하퍼의 그림인 '나이트혹스' 속 남자의 등 짝에는 쓸쓸함이 들러붙어있다. 그리고 그는 건너편의 연인에 무심한 듯 앉아 있다. 과연, 무심할까? 늦은 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을 바라보는 외로운 남자. 어쩌면, 그는 저 여자와 사랑을 하는 망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주인공인 폴이 그러했듯이...



이 장면은 에드워드 하퍼의 '나이트 혹스' 라는 그림을 분리해 놓은 듯 하다. 사랑하는 연인과 노점상 주인, 그리고 고립된 사무실에서 그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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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쓰기로 했으면 과감해질 것

 

관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대중적인 요소에서 재미를 찾는 관객. 다른 하나는 감독이 숨겨둔 상징과 은유 따위를 찾는 데서 재미를 찾는 관객 (어떤 부류의 관객이 더 낫다는 말은 아니다. 이것은 단지 취향 차이다. )

 

여튼,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솔직히 손발이 오그라든다. 이것은 마치 감독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이거였어요." 라고 말하는 식이다. 감독은 어쩌면 친절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배우들과 미팅에서 자신이 영화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열렬히, 세심히 설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에게까지 그런 친절을 베풀 필요가 있을까?

 

영화에 상징과 은유를 집어 넣고 싶다면, 감독은 좀 뻔뻔해져야 한다. "이해할 사람은 이해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마라." 는 식의 도도함 말이다. 사실, 상징과 은유를 사용하면서 "모든 관객을 이해시키겠다", 혹은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 생각은 감독의 욕심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마지막 씬처럼, 적나라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이것은 상징이다." 라는 식으로 다 드러내 버리면, 숨은 의미 찾기에서 재미를 찾는 관객은 어디서 재미를 찾으란 말인가. 그렇다고, 이 영화가 대중적 재미를 찾는 관객 입맛에 맞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작가주의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감독이 아무리 친절히 설명해줘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주인공 폴의 망상적 행위들이 충분히 표현 되었다. 그의 목덜미에 난 상처는 뱀파이어에게 물린 것이 아닌, 면도하다 다친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더구나, 모닝 커피를 그녀에게 내미는 순간, 깔끔하게 설명되었다. 이 모든 것은 폴의 망상이라는 걸...

 

따라서, 영화 마지막에 뜬금없이 여자 주인공 등장해서  "Dream of me" 라고 독백하는 것은  군더더기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감독님, 뭔 말 하려는 지는 알겠는데, 재미가 읍써요."

 

그 외 특이 사항

 

 

1. 이 영화에서 잠시 등장하는 고전 공포 영화의 분위기가 전혀 공포스럽지 않다. ("노스페라투" 라는 고전 영화라고 어느분이 알려주셨음.) 흑백 영화 속 좀비는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인데, 니콜라스 케이지의 과장된 연기는 여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듯 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과장된 몸짓 연기는 짐 캐리가 더 잘 어울렸을 거라 생각한다.

 

2. 영화에서는 주인공 폴이 여자 친구를 떠난 것처럼 묘사되었다. 허나, 이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은 폴이 여자 친구한테 완전히 차인 거다. 그리고는 이별의 고통을 잊고자 자신이 차였다는 사실을 왜곡하고, 한 여자와 사랑하는 망상을 하는 것. 이런 추측을 하게 된 건, 폴의 여자 친구와 폴이 뱀파이어라고 생각한 여자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 폴이 심리 상담을 받는 것 역시 폴의 망상일 가능성이 크다. 그가 상담을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정신과 의사는 아직 상담 시간이 좀 더 남아 있다며 그를 다시 자리에 앉게 한다. 이때 폴은 창문 밖의 시계를 본다. 시간은 4시가 다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 사무실에서 자신의 시계를 보고 있는 거다. 상담 시간이 약간 더 남은 게 아니라, 퇴근하기까지 시간이 약간 더 남은 것 아닐까?

 

4. 혹시나 해서 다시 말하는데, 이 영화 정말 재미 읍써요. 볼만하니까, 포스트를 장황하게 썼겠지 라고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하지는 않으시길. 포스트를 장황하게 쓴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심심풀이.